영적 훈련소 장학관 20채

어려운 목회자 자녀들과 기독 청년들을 위한 선교·영어 장학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아이들의 숙식 문제였다. 

아무리 장학금을 줘도 홈스테이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특별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목회자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었다. 하루속히 아이들이 최소 비용으로 체류할 수 있는 장학관을 세우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뉴질랜드에 있는 많은 한인 교회 목회자들도 유학 온 어려운 청년들에게 숙소로 제공할 집을 하나 가지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교회들 중에 이런 숙소를 가진 교회는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규모가 있는 교회라도 집을 한 채 살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도 최근에 집값이 올라 작은 집도 다 10억이 넘는다. 

아이들이 묵을 장학관을 설립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가장 시급했던 것은 특별히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아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 주는 것이고 둘째는 신앙 훈련을 위해서였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아이들도 청년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쉽게 탈선하는 것이 유학생들의 현실이다. 많은 청년들이 경비를 절약한답시고 남녀가 한방에 동거를 하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우리가 어려운 청년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영어 연수를 시키는 목적은 단지 영어 능력을 향상시켜 주기 위함이 아니라 이들을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영적 훈련소로의 장학관이 필요했다. 최소한 방이 5개 이상 되는 대저택이어야 했다. 장학관 역시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 

처음 하나로 시작했던 장학관이 이제는 20여 채나 된다. 한 집에 10명씩 거주하며 철저한 신앙 훈련을 받고 있다. 매일 아침 예배로 시작하여 예배로 마친다. 그리고 6개월 과정 동안 성경 일독과 금식 훈련, 유학생 선교사로서 철저한 훈련을 받고 영적 전사로서 외국 영혼들을 구원시키는 놀라운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아이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 장학관 생활이다. 처음에는 군대보다 힘들다고 불평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이곳을 통하여 수많은 목회자, 선교사,사모들이 배출되었다. 더 감사한 것은 이곳을 통하여 많은 믿음의 부부가 탄생했다. 이들은 지금도 카톡 단체방을 통하여 서로 마음을 나누며 한국에서 어려운 독거노인들과 노숙자들을 돕는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언제나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여 역사하신다. 매번 새로운 장학관을 주실 때마다 기적을 보여 주셨다. 

항상 우리에게 가장 합당한 집으로 준비해 주셨다. 한 장학관 안에는 200명 이상이 동시에 예배드릴 수 있는 예배당도 세워 주셨다. 

여러 통역방이 있어 외국 학생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한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볼 때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신령한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가장 아름다운 젊음의 시간에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이곳이야말로 이 땅의 진정한 천국이 아닐까?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하시니라”(대하 1:12)

뉴질랜드 최대 선교센터
하나님으로부터 11층 유리빌딩을 받은 후에 가장 급하고 간절했던 것은 하루속히 이곳에 선교센터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어떤 선교단체와도 연결되지 않았고, 선교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빌딩을 주셨기에 마음은 간절했으나 어떻게 선교센터를 세워야 할지 막막했다. 최대한 많은 목회자분들에게 내 뜻을 알리고 선교단체들을 초청하려고 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큰 선교단체들은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분명했던 사실은 많은 선교단체들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소 선교단체들은 집의 차고를 사무실로 개조하거나 창고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사역을 하곤 했다. 

나는 어떤 선교단체이든 선교만 한다면 모두 환영했다. 사무실을 무상으로 쓰도록 할 뿐 아니라 관리 비용까지 전액 우리가 부담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하나둘 선교단체들을 보내 주셨다. 중소 선교단체들뿐 아니라 위클리프선교회(성경 번역) 뉴질랜드 본부도 옮겨 주시고, 성서공회(Bible Society), 항공 선교, 중동 선교, 중국 선교, Precept 선교회 등 국제 선교기관 17개를 보내주셨다. 선교기관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기도하며 협력하여 풍성한 선교 열매를 맺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뉴질랜드 최대 선교센터를 세워 주셨다. 많은 선교사들이 이야기한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여러 선교단체가 함께 일하는 선교센터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매년 선교센터에 지원되는 금액만도 2억이 넘는다. 나는 선교센터를 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모른다. 그분들은 늘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하지만 사실 나는 선교기관들에게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선교센터가 있는 빌딩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20여 년 동안 빌딩에 여러 번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기적처럼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었다. 

선교센터가 자리를 잡은 뒤 오프닝 예배가 있었다. 세계 선교 기관장들을 초청하여 성대히 준비를 했다. 오프닝이 있기 며칠 전 선교센터 디렉터가 나를 찾아와서 조용히 귀띔을 해주었다. 오프닝 행사에 나를 위한 큰 서프라이즈(surprise)가 있으니 기대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뒤부터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영광 돌려야 할 시간에 나를 위한 특별 시간을 마련했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디렉터는 이 말을 전하면서 그날 반드시 우리 부부가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 마음은 불편함을 넘어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 참석을 하면 하나님에게 온전히 돌아가야 할 감사가 나에게 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급히 서둘러 호주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우리 매니저에게 부탁을 했다. 나 대신 참석해서 축하해 달라고, 그리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내가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고 양해를 구하게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선교센터에서는 난리가 났다. 꼭 참석해야만 한다고 몇 차례 더 연락이 왔지만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오직 하나님 한분에게만 영광을 올리고 싶었다. 호주에서 돌아온 뒤 선교센터에서는 아름다운 감사패를 보내왔다. 선교센터를 세워 주신 하나님께 눈물의 감사를 드렸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시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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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태
뉴질랜드 Assembly of God Bible College 졸업. 오클랜드 인터내셔날처치 담임목사. AEC 및 다니엘캠프장 이사장. 저서로는 ‘이른 비의 기적’과 ‘늦은 비의 기적’을 통해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절대 불변의 물질의 법칙’을 알려 주는 재물이야기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