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배급처소 된 조선족 교회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 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느헤미야 5:5절)

1998년 국제난민기구(Mercy corp International)가 미국 정부와 유엔의 지원과 미 존스 홉킨스 대학(Johns Hopkins University)의 협력으로 중국의 길림성 조선족자치주 연변의 교회(정부로부터 허가 받은/한국적 명칭 3자 교회)를 북한에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난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처소로 지정하였습니다.

북한에도 과연 교회와 성도가 있는가? 할 때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과연 선교의 주체가 되신 주님께서 강권적으로 행하시고 준비하신 복음의 전진 기지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0년도 후반부터 그렇게도 북한의 동족과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던 한국의 교회들이 시들해지면서 “북한에도 과연 교회가 있는가?” 회의할 때에 하나님께서 저 북한의 철옹성 같았던 김일성 체제의 빗장을 그의 죽음(1994년)과 함께 열어 주셨습니다.

사실 북한의 직접적인 타격은 1989년 러시아의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부터 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1970년 이전에 벌써 집단농장까지 기계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공업용 중유가 끊어지면서부터 농장의 트랙터(뜨렉또르)와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는 것은 물론 어선까지도 기름이 없어서 출항을 못하였으며 그 영향이 식량 생산과 수산자원의 어획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어 인민/국민 생활의 틀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는 군사 전투용 비행기의 기름을 사용해서 어선을 가동하기까지 비상사태가 발생했으며, 그러다 동분서주 하던 태양신 김일성이 사망하고부터 자연재난인 홍수와 기근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오직 당과 수령이 주는 양식인 배급으로 살아가던 체제가 무너지게 되었고 , 3백만의 아사자가 1994-2000년의 불과 5년여 사이에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북한에도 교회가 있는가? 하던 때에 하나님께서 저 동토의 땅을 여시고 식량과 함께 다시 복음이 북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믿음과 교회를 지키다 순교한 피의 응답입니다
필자는 처음으로 두만강 유역의 조선족교회(월청교회/나중에 미국의 여 기자들이 잡혀간 곳)에서 북한 난민들을 만났을 때 “아!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교회의 기도를 들어주셨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마는 그보다 먼저 “저 핍박의 땅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교회와 믿음을 지키다 순교한 당신의 백성들과 그 종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다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되었습니다.

사역자가 두만강 상류인 숭선에서부터 동해가 보이는 하류인 경신과 방천에까지 식량 배급처소인 조선족교회 담임 목회자(당시는 전도사와 다수의 전도인들)들에게 북한에서 오는 신앙인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라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단 한 사람의 믿음의 백성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기독교는 공산주의와 같이 갈 수 없다고 하여 말살시킨 것이 김일성시대의 북한의 박해였습니다. 일제시대의 그 참혹한 박해 속에서도 견디며 성장했던 북한의 교회가 불과 몇 년 만에 6.25를 전후해서 무너졌다는 사실을 지금의 더욱 우상화 된 북한의 체제를 두고 매우 큰 믿음의 경각심으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식량과 함께 성경을 가져갔습니다
“두만강 하류에 접어 들면서 경신이라는 백여 호 남짓 되는 조선족 동네가 있는데 강 건너 북한에도 같은 이름의 비슷한 숫자가 살고 있는 경신이 있다. 가까이는 이렇게 바로 강을 건너서, 그리고 멀리는 함경북도 함흥과 황해도와 심지어 평양에서도 10 여일 이상을 걸어서 식량을 구하려 왔었다. 우리의 6.25 후에 동네를 구걸하며 다니던 일명 “거지 떼”를 연상하면 비슷할 것 같다. 아니 몸이 말라서 움츠러든 모습에 누더기처럼 걸친 국방색 옷은 삶의 흔적이 지워진 죽음의 그림자 같았다.“

감사하게도 며칠을 머무는 동안 북한에서 강하게 받은 학습의 효과 덕분에 하루 세 번씩 예배에 참석해 찬송과 성경을 보며 말씀을 듣다 몸을 추스르고 돌아갈 때는 비상식량과 함께 성경을 가져갔습니다.

지금도 가슴에 눈물이 흐릅니다! 주님께서 우리 민족과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이렇게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식량과 함께 복음을 다시 저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지금의 북한 땅에서 박해당하는 30 여만의 성도들과 믿음을 부인하지 않아 죽음의 골짜기 수용소에서 갇혀서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바라보며 “나라와 민족의 구원을 위해 죽기까지 기도하는 영적인 군사 10 여만 명”이 김정일 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신 환란을 통하여 출생하였으며, 아직도 끝나지 않는 78년의 고난 가운데 지금은 절대 존엄이라 불리는 김정은의 혹독한 시대를 지내고 있습니다.

북녘 땅 주의 백성들을 생각하며 느헤미야의 기도를 드립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느5:1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