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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넷째 주 찬송 337장(통일 363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교회음악의 변화화음은 신앙의 신비로움 느끼게 해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라 일컫는 교향곡 제9번 d단조, ‘환희에 붙임’ 제4악장은 언제 들어도 감동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천사가 서있다”며 “하나님 앞”(vor Gott)을 세 번 외치는 장면에서 맨 마지막 ‘하나님’(Gott)의 변화화음(變化和音, Altered chords)인 F화음의 긴 페르마타. 그야말로 천상을 보는 듯 신비롭고 환상적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구노(C. Gounod)의 ‘체칠리아 미사’라 일컫는 장엄미사 중 ‘신앙고백’(Credo)은 모든 신앙고백 중 최고의 작품이죠. 마지막에 “영생을 믿습니다.”에서 하프가 분산화음으로 펼쳐지는 변화화음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하늘나라 광경을 보여주지요.

나는 이곳을 연습할 적마다 하늘나라 모습이 너무나 상상을 초월한 장면이어서 변화화음이 바뀌는 장면 장면마다 “어↝” “어↝” 하며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설명하곤 합니다.

변화화음은 선율을 변화시키거나 화음의 색채를 바꾸기 위하여 화성중의 음을 반음계적(半音階的)으로 변화시켜서 생기는 화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반음계화음(Chromatic chords)이라고도 하지요.

변화화음은 그 성질에 따라 이태리 6도 화음(Italian 6th), 독일 6도 화음(German 6th), 프랑스 6도 화음(Franch 6th), 나폴리 6도 화음(Neapolitan 6th), 증5도 화음(Augmented 5th), 감5도 화음(Diminished 5th), 감7도 화음(Diminished 7th) 등 여덟 종류가 있습니다.

찬송가에서 살펴보자면 이미 제2권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는 나의 힘이요’(93장)에서 “위로하고”에서의 ‘고’(Fb) 화음, ‘주님의 명령 전할 사자여’(504장)에서 “그 소식 널리 전파하여서”의 ‘널리’(Gb화음) 같은 것을 말하죠.

찬송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오르위그스버그 태생으로 복음찬송 작가인 호프만(Elisha Albright Hoffman, 1839-1929)목사가 작사 작곡하였습니다. 그래서 곡명도 그의 고향인 ORWIGSBURG이지요. 그는 고향에 가까이에 있는 레바논(Lebanon)교회에서 빈민들을 위해 목회를 하면서 틈틈이 많은 찬송을 지었습니다. 교인들을 돌보면서 어려운 삶의 현장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면서 그들에게 언제나 간절히 주님께 아뢸 것을 권하곤 하였는데요,

이 찬송도 1894년 어느 날 너무나도 사정이 딱하고 어려운 교우를 심방한 후 “나는 예수께 아뢰어야 한다”(I must tell Jesus)는 시상이 떠올라 지었다고 합니다. 영어찬송에서 이 말을 찾아 세어보니 여덟 번이나 반복되더군요. 우리말 번역엔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리”(I must tell Jesus! I must tell Jesus!)로 되어있지만요.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를 노래하다 보니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야’ 중에 ‘그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벼워’란 곡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무거운 짐과 멍에를 벗겨주시고 주님께서 대신 메어주신 ‘멍에’(yoke)가 너무 가볍고 날아갈 것 같아 ‘쉽고’(easy)의 멜리스마에서 “쉬히히히히∼∼∼입고”(이히히히∼∼∼지) 라며 웃음소리를 내어 날뛰면서 좋아 어쩔 줄 모릅니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질 땐 견디기가 힘겨웠는데 주님께서 그 짐의 뜻을 일러주신 후부턴 그 짐이 가벼워지고 오히려 즐거워진 거죠.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Jesus can help me, Jesus alone.)에서 “은혜의”(Jesus can)의 Bb화음이 변화화음입니다. 이 Bb화음이 무엇일까요. 그야말로 신앙의 신비요 주님 주신 변화 아닐까요?

4월 다섯째 주 찬송 145장(통일 145장) 오 거룩하신 주님

페르마타는 정거장이란 뜻. 코랄에선 숨만 쉬고 불러
이탈리아 거리를 거닐다 보면 버스가 그려진 둥그런 현판에 ‘페르마타’(fermata)란 글씨를 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페르마타’는 정류소, 역이란 뜻이거든요. 서는 것, 멈추는 것, 정지, 휴지의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음악교과서엔 페르마타가 음을 길게 늘인다 하여 ‘늘임표’라고 되어있고, 친절하게도 2-3배 길게 하라며 그 길이까지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대부분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늘임표’란 말 자체가 잘못되었지요. 굳이 고쳐 붙이자면 ‘멈춤표’ 혹은 ‘섬표’가 더 적당할 것 같아요. 영어론 포즈(pause), 독일어로도 파우제(pause)라 하니 말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 잠시 포즈를 취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독일의 찬송가인 코랄(Chorale)엔 페르마타가 많이 붙어 있습니다. 페르마타의 용법 중 코랄에 있어서의 페르마타는 숨표의 뜻이며, 음을 길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 찬송가에서 페르마타가 많이 붙은 코랄로는 ‘다 함께 주를 경배하세’(12장), ‘다 감사드리세’(66장), ‘이새의 뿌리에서’(101장), ‘오 거룩하신 주님’(14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585장) 등입니다.

코랄에 페르마타가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루터가 이끄는 종교개혁의 이슈 중 만인 제사직 사상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서 성경을 번역하는 일과 회중찬송을 만들어 펴내는 일은 매우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16C는 교회에서 다성음악(多聲音樂)이 최고로 발달한 시기입니다.

교회에서 다성음악의 성가는 신성하고 아름다우나 회중들이 직접 참여하기에는 멜로디가 길고 어려워 특별히 훈련된 전문가가 아니면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찬송으로 하나님께 응답하게 하기 위해선 일반인들을 위한 쉬운 찬송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찬송이 코랄인데요, ‘내 주는 강한 성이요’처럼 새로이 작사 작곡한 코랄도 많이 있지만 많은 곡을 작곡하기엔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여러 방법을 써서 코랄을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찬트처럼 전문가들만 부를 수 있는 어려운 음악을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도록 개조하기도 하고, 세속곡으로 불리는 멜로디까지 고쳐 만들었습니다.

회중들이 쉽게 부르려면 멜로디 길이가 짧아야 합니다. 숨을 자주 쉬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숨 쉬라는 표시로 페르마타를 붙인 것이죠. 예컨대 “오 거룩하신 주님”에서 ‘님’을 비롯한 모든 페르마타는 박자대로 숨만 쉬면됩니다(연주자에 따라 더러 길게 끌기도 합니다).

찬송 시 ‘오 거룩하신 주님’은 클레아보의 베르나르도(Bernard of Clairvaux, 1091-1153)가 지었습니다. 이 시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신체를 일곱 부분으로 자세히 묘사한 ‘십자가상의 주님’(Salve, Caput Cruentatum)이란 350행의 장시인데요, 그 중 머리 부분만 50행의 시로 읊었습니다.
관련 성구는 군병들이 예수님을 희롱하는 장면인 마태복음 27장입니다.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 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마 27;29-30)

곡명 PASSION CHORALE은 레오 핫슬러(Hans Leo Hassler, 1564-1612)가 작곡한 멜로디입니다. 그가 연가(戀歌)로 작곡한 ‘내 마음은(그 소녀 때문에) 괴로워한다’(Mein G’müt ist verwirret)는 작품의 멜로디입니다. 이렇게 기존의 멜로디에 가사를 붙이는 방법을 콘트라팍툼(contrafactum)이라 합니다.

이 글은 필자가 진행하는 유튜브‘김명엽의 찬송교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