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지 거르기

집에서 로스팅한다. 에티오피아 시다모 g2 커피생두를 200g 수망에 올려 직화로 볶기 위해 준비한다. 특별한 장비 없이 간편하게 로스팅한다. 고급 커피는 아니기 때문에 실수해도 뭐, 크게 부담이 없다. 하지만 입에 들어간 커피가 불쾌한 쓴맛을 낸다면 스스로를 탓하기 전에 유통과 원산지 및 커피를 수확한 농장을 나무랄 것이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씁쓸해하고 말 것이긴 하다. 뭐 그저 내가 볶은 커피니까. 하지만 나의 실수로 검게 그슬리고 타버린 커피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스스로를 연신 탓하며 과정을 복기하고 찬찬히 살펴볼 것이다.

연하게 볶은 커피 사이에 아주 검은, 한 면만 타버린 원두를 발견했다. 둥근 면은 아주 멀쩡하게 연한 갈색을 하고 있었지만 반대면은 그슬린 정도가 아니었다. 갈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검게 타버린 반대 면을 발견했을 때, 한 청년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품고 기도하며 어렵게 세운 공동체를 단기간에 박살 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라지’였다.

해수면처럼 넓고 끝도 없이 다양한 청년들을 만나자면 어찌 아름다운 이들만 만나 행복한 사역만 하겠는가. 민기와 리암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와 같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차마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가라지’ 같은 이들도 만나야 한다. 심지어 꼭 만나게 되어있다.

그 ‘가라지’가 들어와서 모임을 흔들어버렸을 땐 내가 뭔가를 잘못했는가 싶었다. 마치 썩은 원두가 들어가 본디 맛을 잃어버린 커피가 내 실수인 것 같았다. 커피 테이블에 대접하기 심히 부끄러울 정도로 말이다.

어쩌다 그 가라지가 들어왔는지 모든 것을 복기해봤지만 한밤중에 누군가 뿌리고 간 것처럼 알곡들 사이에서 자라고 있었다. 다른 날은 ‘누룩’ 가득 들어있는 빵처럼 급하고 이상하게 부풀기 시작했다. 곧 빠르게 썩어 먹지 못하게 되어버려서 이 모임은 실패라는 결론을 내려야 했다. 먹지 못할 커피처럼 쏟아버려야만 한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리더들을 모아 우린 실패했다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인정해야 한다고 알렸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다음이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돌아보니 알곡들이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가가 피부 속, 뼛속 세포들 하나하나에까지 새겨졌다. 농부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사야서 5장의 농부는 분명 하나님이시다. 6장은 5장과 상관없는 말씀이거나 새로운 네러티브와 함께 플롯이 아주 바뀐 줄 알았다.

서사의 배경이 바뀐 것은 맞지만 관통하는 하나의 맥이 있다. 그것은 황폐하고 무너진 도시이다. 그날의 도시와 오늘 우리가 걷고 있는 이 땅의 길들이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하다면 더욱 확실한 한 가지가 있다. 들포도가 맺힌 그곳에 하나님께서 여전히 일할 사람을 찾고 계시는 것이다.

결국 가라지들이 송두리째 뽑히고 들포도나무가 잘려 나가면 하나님의 계절에 새로운 연한 가지가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라 6장 말미에 말씀하고 계시니 말이다. 그때까지 주인의 농장을 잘 돌볼 일꾼으로 사는 것 그것이 나의 기쁨이다.

맛을 잃은 커피는 쏟아버리고 집에서 로스팅할 생두를 찾는다. 썩고 상한 결점두는 고르고 그 모든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성실히 일한 농장의 농부에게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받아와서 상큼하고 화사한 열대 과일 향이 나는 스페샬티 커피를 손님에게 정성스럽게 대접하기 위함이다.

그 손님이 우리 주님이시라면 난 아름다운 커피가 가득한 따뜻한 핸드드립으로 추운 가을 아침 대접해드리고 싶다.

“주님 이 모든 과정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