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둘째 주 찬송/3월 셋째 주 찬송

3월 둘째 주 찬송/22장(통26장) 만유의 주 앞에

도레미파솔라시도 상행하여 보좌에 오르는 예배 찬송
책을 즐기는 사람은 행간(行間)을 읽습니다. 글의 줄과 줄 사이, 행과 행 사이를 읽는다는 말인데, 글에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은 숨은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요. 교회음악의 연주법에 대해 언급한 사도바울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마음으로” 부르라고 이릅니다.(엡5;19, 골3;16)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

어떻게 하면 마음으로 부를 수 있을까요? 가사의 뜻을 생각하며 부르라는 것으로 쉽게 생각되지만 수준 높은 음악을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의 음악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음악에는 음의 그림(音畵, tone painting)이란 것이 있습니다. 글에서 행간을 읽어 그 속뜻을 알 수 있듯이 노래 역시 음 가운데 숨어있는 비밀을 알면 그 즐거움이 큽니다. 찬송가에 숨겨진 비밀. 찬송가에 표현된 음악적 이미지를 소개하려 하는데 이번 회엔 먼저 시각적인 이미지만을 살펴보려 합니다.

영어나 독일어 같은 서양 찬송가를 노래하다 보면 하나님이라던가 하늘이라던가 하는 단어는 거의 음이 높고, 땅이나 지옥 같은 단어는 음이 낮습니다.


‘거룩 거룩 거룩’(8장)은 ‘도도 미미 솔솔’하며 주님 앞으로 계단을 오르는 것 같은 이미지가 숨어있으며, ‘기쁘다 구주 오셨네’(115장)는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도시라솔파미레도’하며 이 땅에 내려오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음악적 수준이 높은 찬송일수록 비밀도 많습니다.
이 찬송에서 보면 처음 “만유의 주 앞에”(Rejoice the Lord is King)에서 제일 높은 음은 ‘에’(도)인데 영어찬송에선 ‘King’(왕)입니다.

6마디 “찬송을 부르세”(And triumph evermore)에서도 제일 높은 음은 ‘triumph’(승리)입니다. “네 맘 열어”(Lift up your heart)에선 ‘솔라시도’로 상승하여 마음이 열리는 것 같고, “한소리로 기뻐 주를 찬양하라”에서는 ‘도레미파솔라시도’로 순차 상행하여 “찬양하라”에서 마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러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찬송 시는 영국의 감리교 창시자인 죤 웨슬리의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1707-1788)가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시 44;4)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는 말씀을 주제로 6절로 지었습니다.


1746년은 이 시가 실린 ‘주님의 부활을 위한 찬송’(Hymns for our Lord’s Resurrection)이 출판된 해입니다.

곡명 DARWALL은 역시 영국 다월(John Darwall, 1731-1788) 목사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1770년 출판된 윌리암스(Aaron Williams)의 시편가집(New Universal Psalmist)에 시편 148편의 곡으로 작곡하였습니다.

3월 셋째 주 찬송/358장(통400장)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

왕의 깃발 휘날리며 행진하는 십자가 군사들의 군가
‘음의 그림’(音畵, Tone Painting)이란 음악으로 그림의 인상을 주는 것인데, 표제음악의 일종으로 근대음악에 현저하여 관현악을 위해 쓰이는 일이 많습니다. 지난 회에 이어 이번 회에선 청각적인 이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가대에서 자주 연주하는 에번스(H. R. Evans)의 ‘축복’ 중 “나 인하여 모욕을 당하고”에 붙은 스타카토는 창으로 찔린 핏방울이 연상됩니다. 이어 반주에 나타나는 차임은 하늘의 종소리로 들립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주께 영광’에서도 처음엔 mp로, 다음엔 mf, 나중에 f로 차츰차츰 세어지는 것도 천사들의 찬양 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이 다가오는 원근감을 느끼게 합니다.

찬송가에서도 ‘허락하신 새 땅에’(347장)에서 “허락하신 새 땅에”(도도도솔미솔도도도) 부분은 여호수아 장군의 명령에 따라 부는 진격의 신호나팔 소리 아닐까요. “예수 나를 위하여”(144장)에서 후렴구인 “예수님! 예수님! 나의 죄 인하여”는 1905년 김인식(1885-1963)이 읊은 나라 잃은 슬픔의 통곡 소리요, 그완 반대로 ‘예수 부활 했으니’(164장)의 “할-렐루야”는 “하하하하하” 웃는 기쁨의 소리입니다.

찬송 시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There’s royal banner)는 미국의 부흥사 휘틀(Daniel Webster Whittle, 1840-1901) 목사가 지었습니다. 찬송가에 따라 작사자명이 엘 나단(El Nathan)으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휘틀 목사의 필명입니다. 휫틀 목사의 찬송은 우리 찬송가에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407장)를 비롯하여 세 편이 실려 있습니다.

곡명 ROYAL BANNER은 맥그라나한(McGranahan, 1840-1907)이 작곡했습니다. 맥그라나한은 휘틀 목사의 부흥 집회 음악동역자입니다.
우리 찬송가에 실린 그가 작곡한 6곡 중 이 찬송과 ‘아 하나님의 은혜로’(310장)는 이들 콤비가 작사 작곡하여 만든 명작이지요.

이 찬송은 1887년, 생키(L.D.Sankey), 스테빈스(G.C.Stebins), 맥그라나한 세 사람이 공저로 펴낸 찬송가(Gospel Hymns No.5)에 처음 실렸습니다.
원래 작사자가 처음부터 밝힌 관련 성구는 시편 60편 4절이고, 찬송 제목은 ‘십자가의 군기’(The Banner of Cross)입니다.

이 찬송을 부르노라면 ‘왕의 깃발’(십자가 군기)을 앞세워 밴드에 맞춰 승전가를 부르며 행진하는 군인들이 연상됩니다. 이 군가는 4째 마디와 8째 마디에 작은 음표로 표시된 트럼펫 사운드가 울려 더더욱 사기를 돋웁니다.

위 글은 필자가 진행하는 유튜브 ‘김명엽의 찬송교실’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