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시간을 사는 사람

추동완 목사<크라이스트처치 로고스교회>

우리는 매년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한 살 나이를 먹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법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법칙에서 예외인 사람은 없습니다. 더 나이를 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덜 나이를 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 단지 속일 수는 있겠죠.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시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시간에 구속을 받고, 시간이라는 제한에 걸려 삽니다. 그래서 태어나면 죽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생’이라고 합니다. 인생이란 날 때와 죽을 때 사이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어나서 죽는 동안의 시간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선물로 주신 인생의 시간을 ‘나그네 길의 세월’과 ‘험악한 세월’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야곱에게 나이를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야곱은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고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의 인생을 표현할 때 뭐라고 표현하시겠습니까? 야곱처럼 험악한 세월을 보내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살아야 할 어린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나그네 길의 세월
야곱은 이 땅에서 보낸 시간을 ‘나그네 길의 세월’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나그네는 자기의 집을 떠나 여행 중에 있는 사람이라고 사전에 나옵니다. 영어로는 ‘a traveler’라고 해석합니다. 자기 집을 떠나서 여행을 한 그 세월이 130년이나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생각한 집은 어디일까요?

창세기 49장 33절에 야곱이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죽음을 ‘열조에게로 돌아간다’라고 표현했고, 이삭도 동일하게 ‘열조에게로 돌아간다’고 죽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즉 그들의 열조가 돌아간 그곳이 바로 그들의 집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성도의 죽음을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늘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고후5:8)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에게 있어서 집은 바로 본향, 영원한 하늘의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잘 살다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곳은 본향, 우리가 온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곳에 다시 가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시간을 다 보내야 합니다. 그냥 시간만 보낸다고 해서 다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삶은 시간만 때우다 적당한 때에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시간은 선물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선물입니다. 이 시간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임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땅의 시간에서 하늘의 시간을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보면 너무나 신비한 사건입니다, “어떻게 창세기 1장 1절을 믿을 수 있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소설이나 신화로 생각하는 사람이 이 세상엔 더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땅의 시간에서 하늘의 시간을 경험하는 놀라운 신비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그냥 주어진 시간이 아님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이시며, 성령께서 나의 도우심이 된다는 진리를 믿는, 그래서 이 땅의 시간 속에 살아가면서, 하늘의 시간 속을 동시에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시간에 매여 살아가지만, 구원받은 자는 영원의 시간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영원이란 시간은 무한대의 시간입니다. 끝이 없는 시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물리적 시간으로 하나님의 시간, 영원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원이란 시간 밖의 시간입니다. 어쩌면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어쩌면 시간 자체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시간을 뜻합니다. ‘영원’은 오랫동안 끝없이 살아가는 무한한 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영원이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 시간이라는 틀에서 살아가지만, 이 땅과 시간에 매여 있는 삶이 아닌, 하늘의 시간을 사는 삶,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험악한 세월
야곱은 130년이라는 시간을 살았습니다. 스스로 고백하기는 자기의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보다는 짧은 연수를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습니다. 이삭은 180세를 살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짧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130년이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야곱은 고백합니다.


그는 형 에서와의 갈등으로 집을 떠나야 했고, 삼촌 라반의 집에서 속임을 당하면서 20년간 일을 해야 했고, 그리고 외삼촌과 불화를 겪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과정에서도 에서와의 만남을 걱정하였고, 그렇게 돌아온 가나안에서 딸 디나가 세겜 자손에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이로 인해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족속을 죽이는 사건과 사랑하는 아들 요셉과 생이별을 하는 등 무수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야말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험악한 세월을 살게 된 것은 속임수 때문에 받은 고난이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속이고 속는 삶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러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피부로 느끼고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48장 15-16절입니다.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아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야곱이 고백하는 것은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입니다.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라고 고백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알았고, 그와 함께 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족에서 민족으로 세워지게 하심을 알았습니다.


바울도 이렇게 권면합니다. 에베소서 5장 17절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우리가 하늘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어가는 삶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험악한 세월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험한 일들이 남아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험한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험악한 세월 속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갈 때, 나에게 오늘 주신 이 시간을 살아가는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우리의 삶의 시간표가 달라집니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닌 정말 주를 위한 삶을 살고, 이것이 결국 내가 잘 사는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잘 사는 삶은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말합니다. 땅의 시간에서 살아가지만, 하늘의 시간에서 살아가는 것, 오늘 내가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삶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영원을 사는 삶입니다. 야곱은 이 땅의 시간 속에서 나그네 길의 세월,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가치와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하나님의 시간으로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루, 한 주, 한 해, 흐르는 땅의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과 가치, 의미를 깨닫고 하늘의 시간을 사는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