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람데오 신학대학원 2023년 집중강좌-교회를 아는 지식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회와 직분<고신대 우병훈 교수>

지난 1월 23일부터 26일까지 코람데오 신학대학원(고신해외)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회와 직분]이라는 주제로 집중강좌가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교회에 대한 고찰이 더욱 필요한 시대에 고신대 우병훈 교수님의 말대로 “기억 상실증에 걸린 공주처럼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우리들의 현재 모습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 강의는 교회공동체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성부 성자 성령 곧 삼위 하나님과 교회를 연결하여” 성경에서 알려주는 분명한 방향을 따라가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기준이 모호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분명 성경은 참된 교회와 참된 직분에 대하여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의 기준을 제시해 줍니다. 감사하게도 그 지혜로운 하나님의 기준에 대한 3박 4일간의 강의 내용을 이 글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고신대 우병훈 교수

먼저, 교회를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나온 교회에 대한 비유와 상징들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양 떼,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신부, 그리스도의 몸, 선한 목자의 양 떼, 성령님 안에서 성령님의 전, 진리의 기둥과 터,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다양한 표현들로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에 대한 가르침을 잘 정리한 방식이 삼위일체입니다. 그러면 삼위일체적 교회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성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밀한 예정과 그 기쁘신 뜻에 따라 세워졌으며 교회의 본질은 영원 전의 예정에 있으며 값없이 주어진 사랑에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예정)은 교회의 언약적 기초가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택하심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구원으로의 선택입니다. 곧 예정(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특별한 목적과 사명을 위해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셔서 택하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셔서 선교사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루터는 7가지 부르심의 의미를 정리했는데 구원으로의 부르심, 목회자로의 부르심, 직분자로서의 부르심, 특별한 사명으로의 부르심, 가족으로의 부르심, 직업으로의 부르심, 일상전체로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7가지를 스스로에게 적용해서 이 부르심에 충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사명을 북돋아 줄 때 우리는 어린아이 같은 신앙에서 성숙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정과 언약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영원 전에 이루어지며 하나님이 주도하시며 일방적이며 불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약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며, 공동체적이며, 쌍방적이며 유동적인 것입니다. 예정을 하신 하나님이 예정을 이루시는 길로 언약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구원은 언약공동체를 통해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매주 선포되는 설교는 하나님의 예정이 이루어지는 방편이며, 우리들의 봉사와 섬김은 예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는 일에 사람들의 활동을 이용하십니다.


성부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중요한 이미지로는 “어머니로서의 교회”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어머니로 표현합니다(갈라디아서 4:26). 또한 바울 자신도 교회를 위해 어머니처럼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말합니다(갈라디아서4:19). “어머니로서의 교회”에 대한 또다른 근거는 예수님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표현한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성도들을 어머니처럼 돌보는 것입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도 카프라리아 수도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우리를 낳았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어머니로서의 교회는 보편교회이며 “아담 때부터 시작하여 이 세상 끝날까지 있는 교회, 인종과 나이와 성별 등에 묶이지 않고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해왔던 그 유일한 참된 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머니 역할을 생각해 보면서 교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언약 안에 있는 교회는 서로 하나입니다. 곧 하나님의 한 백성인 교회는 하나(통일성)입니다. 에베소서 4:4-6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 세례, 믿음, 주, 소망, 성령, 몸이라는 일곱 겹으로 하나가 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정치적 견해나 학벌, 나이 등으로 나누어지면 안 되며 오히려 복음의 기쁨으로 하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다른 하나는 거룩성인데 거룩성은 구별됨이며 하나님과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나의 직장과 가정에서의 삶,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하나님과 가까이 있을 때 우리는 거룩해집니다.

두 번째로, 교회는 승천하신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의 승천하신 사건은 예수님이 우리를 멀리 떠나는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승천하심으로 성도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십니다. 그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해 세상을 통치하시며, 교회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그리스도의 다스림과 신자들의 지체됨입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처음 대면했을 때, 먼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신론적인 변화)을 깨달았습니다.

두 번째는 교회는 그분의 몸이라는 것(교회론적인 변화)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주님과 주님의 교회는 뗄 수 없는 몸의 관계인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교부들이 가진 중요한 사상 중에 ‘전체 그리스도 사상’이 있는데, 교회 전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전체 그리스도 사상’에 대한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온 교리는 첫 번째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함부로 잘라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모든 성도가 조화를 이룸으로 전체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체가 그리스도의 속성을 드러내어서 전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그리스도의 몸은 이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소외되고 연약한 자를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대리자와 제자로서 보냄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이번에는 언약적 직분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대해 알기 위해 에베소서 4: 7-12을 보면 직분이 그리스도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직분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직분자)을 통해서 자신의 몸을 다스리십니다(에베소서 4:12). 제일 중요한 직분인 목사직은 그 하는 일(로마서 10:17) 때문인데, 곧 목사의 설교를 통해 교회를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 가운데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은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아가고자 할 때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 기능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부는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성자는 사랑을 받는 분이시고, 성령은 사랑의 띠이시다고 말했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교제 안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인간됨의 본질이 잘 드러날 때는 이 사랑이 회복될 때입니다.

세 번째로, 교회는 성령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에는 두 군데에서 성도가 집단적으로, 또한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가르침이 나옵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교회 분열(파벌)을 경계하면서 공동체적으로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가르쳐줍니다. 교만과 분열의 죄는 공동체에서 무서운 죄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멀리 해야 합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서 우리가 성적으로 순결해야 한다는 뜻에서 개인적으로 교회가 성령의 전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음란의 죄, 혼전 성, 또는 바람피우는 것, 성은 결혼의 테두리 안에서 지키는 것 등 성적 순결의 중요성을 알려 줍니다. 또한, 교회는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성전의 역할을 합니다. 역대하 6장 12-42절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며, 인생의 길을 배우는 장소이며, 제사를 드리는 곳이며, 죄를 회개하는 곳이며, 고통을 토로하는 곳이며, 이방인을 위해 기도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전이 했던 이러한 기능을 그리스도 안에서 감당해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는 곳이며, 영적인 삶을 가르쳐 주는 곳이며, 예배가 성령충만해야 하며, 예수를 선포하는 곳이며, 죄를 회개하는 곳이며, 선교가 교회의 본질인 곳으로 회복해 가야 합니다.

교회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더욱 깊이 깨닫게 돼

성령님께서 교회에서 하시는 사역은 말씀 사역과 성화 사역과 교제 사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성령의 말씀 사역은 성경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사역이 절대적인데 이것을 성령님의 내적 증거라고 말합니다. 성령님께서 진리의 영으로서 각 개인에게 임재하시는 것은 무엇보다 교회를 통해서입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와 연결되는 교회의 언약적 성화 사역을 하십니다.

둘째로, 종교개혁자들은 성령의 성화 사역과 교제 사역은 같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공동체의 성도들의 교제를 통하여 성화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립된 섬으로서가 아니라 교회의 교제 안에서 교회의 지체로서 거룩에 참여합니다. 이렇게 말씀, 성화, 교제를 통해서 우리가 준비가 되면 세상에 파송하십니다. 세상과의 분리만 강조하는 이원론적인 신앙관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을 향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팔을 내민 것처럼 우리 팔을 내밀어 그들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직분을 통해서 어떻게 삼위일체적 교회론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들에게 땅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을 때 그들을 왕으로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타락했고 그렇게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아담과 하와가 망각하였던 세 직분, 왕직, 선지자직, 제사장직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로서 말씀 자체이신 분이지만 말씀에 순종하셨고, 제사장이신 분이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으며, 온 우주의 왕이신 분이 종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사셨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그를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말씀의 순종자로, 세상의 죄에 대하여 기도의 제물이 되며 섬김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조직과 제도와 기구를 위해 성령님은 직분도 주시지만 더 탁월한 것은 은사를 같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사가 성품(성령의 열매)과 같이 사용되어질 때 가장 좋은 직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성도가 교회의 직분에 대해 배워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한 몸이고, 직분자들의 봉사를 통해서 성화와 교제가 증진되며, 투표를 통해서 직분자를 선출하며, 직분자의 자격에 대한 가르침이 일반 성도들의 영적 성장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직분자들의 자격과 역할을 잘 알아야 그들을 잘 도와서 교회를 세워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고신 뉴질랜드 목회자와 신학생 대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회와 직분]이라는 주제로 집중 강의한 우 교수와 강의 후에 기념 사진

성령님께서 세우시는 교회의 직분 첫 번째로 목사직
목사직은 말씀과 기도의 직분입니다. 교회는 학교로서 그의 학생인 성도들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사역자와 성례의 집례자를 통해 일하시며, 은혜의 방편인 말씀과 성례(세례와 성찬)를 통해 언약을 새롭게 갱신하십니다. 장로나 집사나 권사가 없는 교회는 있을 수 있지만, 목사가 없는 교회는 있을 수 없습니다.

칼빈은 성도들을 사랑으로 올바르게 양육하는 중요한 끈이 바로 목사라고 하였습니다(기독교강요 4.3.1). 설교를 통해서 사람이 변화되고 교회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영적인 성숙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거만한 태도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그릇’에 선물을 담아 주십니다. 목사는 비록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그것에 순종하는 여부를 두고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 사역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의 복종을 철저히 검토하십니다.(기독교강요 4.1.5). 그리고 설교가 이만큼 중요하다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설교를 준비하고 선포하는 목사들의 책임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목사직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직분이므로 그만큼 큰 책임이 요구됩니다. 그렇기에 성도들과 목사는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섬겨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세우시는 직분 두 번째로 장로직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 공적 직분을 주셨습니다. 장로직은 “목양과 감독의 직분”(베드로전서 2:25)입니다. 목회란 담임목사가 목회 철학을 가지고 교회를 이끌어 가는 것이고, 목양이란 영혼을 돌보는 것으로 목회와 목양의 두 개념을 잘 구분할 때 교회를 온전히 섬길 수 있습니다.

장로직은 구약에서부터 있었던 직분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백성의 선출을 통하여 임직(신명기 1:13-16)되었으며, 정치적인 면과 영적인 면에서 장로들이 동역자(보조자) 역할을 했습니다. 장로의 나이에 대한 규정은 없으나 나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지혜였습니다. 구약에서 장로의 어떤 역할이 신약에서는 폐기되기도 하면서 발전하였습니다.

바울은 장로의 세 가지 직무(사도행전 20:28-35)를 강조합니다. 첫째, 장로들은 교회를 유혹하는 자들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진리를 사수해야 합니다. 둘째, 장로들은 말씀에 의탁함으로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야 합니다. 셋째, 장로들은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 합니다. 더 나아가 언약 공동체의 파수꾼으로서의 장로들은 성도들을 두루 심방하여 영적인 상태와 말씀 적용 수준을 체크하고 실제적인 상담과 권면과 위로를 베풀어 줍니다.

장로가 갖추어야 할 일곱 가지 덕목을 살펴보겠습니다. 개인적인 덕목으로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없으며 부부사이에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성숙도에 있어서 자기관리를 잘하며 지혜로우며 칭찬과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직무에 대한 덕목으로 다른 사람들을 잘 대접하며 성경적으로 가르치기를 잘해야 합니다.

또한 피해야 할 일곱 가지 주의사항으로는 다른 이와 관련한 덕목으로 술에 중독되지 아니하며 폭력이나 싸움을 하지 아니하며 오직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며 행동이나 언어로 다투지 않아야 합니다. 경제생활에 있어서 돈을 사랑하지 아니해야 합니다. 가정생활에서는 자기 집을 잘 돌보고 자녀들이 온전한 경건과 거룩함으로 부모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는 자라야 합니다.

신앙 경력으로 볼 때 새로 입교한 자는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 경력이 얼마 안 되는 사람이 장로가 되면 겸손해지기보다는 교만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점검 사항으로는 교회 밖에서도 선한 평가를 받는 자여야 신앙인으로서 위선적이기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세우시는 교회의 직분 세 번째로 집사
집사직은 “자비와 자유의 직분”입니다. 왜냐하면 자유의 사역을 통해서 자유를 주는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집사직의 역사와 역할을 살피기 전에 장로직과 집사직의 차이를 보겠습니다. 장로와 집사, 이 두 직분은 상호 보완 관계에 있으나 하나는 목양의 직임이라면 다른 하나는 가난한 자들과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실질적인 면에서 돕는 직임입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가난한 자들”이란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심리적으로 약한 사람들, 신체적으로 병약한 사람들, 사회적으로 괴롭힘과 억압을 받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신약성경에서의 집사직이 공식적으로 처음 시작된 곳은 헬라파 과부를 돕기 위한 것(사도행전 6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여주신 자비와 자유의 직분인 집사의 자격(디모데전서 3장 8-13절)은 신앙적인 자격보다 도덕적인 자격이 먼저 나오는 것은 다른 직분과 마찬가지로 성품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도덕적인 자격으로는 존경할 만하며, 언행이 일치하여 신뢰할 만하며, 술에 중독적이지 않으며, 돈 문제가 깨끗한 것을 말합니다. 신앙적 자격으로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깨끗하며, 복음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적 자격으로는 가장 가까운 자에게 잘하는 한 아내의 남편이며, 자녀를 성경적 원리로 양육하며, 집 전체를 잘 돌보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께서 세우시는 교회의 직분 권사
권사직은 “권면과 돌봄의 직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사직은 사실 성경에 직접적으로 언급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디모데전서 3장에 나오는 “여인들”에 대한 규정이나 디모데전서 5장이나 디도서 2장의 “젊은 여자와 늙은 여자, 과부에 대한 규정들”을 근거로 하여 교회사적인 필요에 의해 세워진 직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사에서 권사직은 기도에 힘쓰고 가난한, 병든, 환란 당한 자를 돌보는 직분이었고, 여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음 전파, 세례 교육을 맡는 직분이었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시험에 든 자나 연약한 자를 심방하여 권면하는 직분입니다.

권사직은 성숙한 여 성도의 직분으로서 거룩한 행실의 모범이 되며 모든 면에서 완전하여 귀감이 되며, 가정과 교회를 잘 돌보는 직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사는 집사직의 일부인 가난한 자를 돌보는 일과 장로직의 일부인 이해하고 격려하는 일인 권면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권사직의 자격(디모데전서 3:11)은 개인적 인품에 대한 것으로 존경할 만하며, 험담하거나 편 가르거나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며, 술을 절제하고 말을 절제하며, 어려운 자를 보살펴주는 모든 일에 충성된 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권사직의 일을 예수님께서 모범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병훈 교수의 교회와 직분에 대한 강의를 통해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직분이 얼마나 교회를 세워가는데 기둥 같은 역할을 하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세워진 교회와 직분이 성경적으로 바르게 세워지고 만물을 충만케 하는 교회가 되길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글/ 송인경 사모<웰링턴 그리스도의편지교회>

1997년에 뉴질랜드로 이민을 와서 레이드로우 신학교에서 상담학을 공부하고 뉴질랜드 성경적상담협회(NZBCA) 정회원으로 성경적 상담학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상담사역을 하고 있으며 또한 웰링턴 그리스도의편지교회 사모로 교회공동체를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