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넷째 주 찬송/3월 첫째 주 찬송

2월 넷째 주 찬송/500장(통258장) 물 위에 생명줄 던지어라

회중석은 한 공동체가 하나님과 공적으로 만나는 구원선

흔히 교회를 구원선이라 합니다. 중국 한자에 하나님의 역사가 담겨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배라는 ‘선(船)’자는 배 ‘주(舟)’에 여덟 ‘팔(八)’자와 사람을 나타내는 입 ‘구(口)’자로 모아져 노아의 방주에 8식구가 탄 것을 암시한답니다.

교회 입구에서부터 성단까지의 넓은 공간, 즉 회중석이있습니다. 이 회중석을 영어로 ‘네이브(nave)’라 하는데, 라틴어 ‘배’란 뜻의 ‘나비스(navis)’에서 왔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교회를 인생을 항해하는 방주라고 생각하여 배 모양으로 지을 것을 지시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페니키아(Phoemicia)인들의 옛 교회 모양은 배를 뒤집어놓은 것 같지요.

예배당 공간은 기독교적인 구원관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구별된 곳이며, 한 공동체가 하나님을 공적으로 만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세상의 구원을 주제로 한 예배무대에 성단, 설교단, 성찬상, 성가대석, 회중석이 있고, 거기에서 구원의 축제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회중석은 정방형이든 팔각형이든 장방형이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공동체를 나타내는 신학에 기초합니다.

곡명 LIFELINE의 찬송 시와 곡조는 모두 어퍼드(Edward Smith Ufford, 1851-1929) 목사가 지었습니다. 어퍼드 목사는 보스턴 부근의 작은 마을 웨스트우드(Westwood)의 침례교 목사로 시무할 당시인 1886년 어느 날, 낸터키트(Nantucket) 해변에서 ‘해난 구조 본부’ 요원들이 난파선의 선객들을 구조선으로 구출하는 장면을 보고 나서 지었다고 합니다.

“생명줄을 던져라!”며 높이 소리 지르는 구조대원들의 외침을 그대로 찬송 시에 담은 것이지요. 매절 첫 마디와 후렴의 “생명줄 던져”(Throw out the life line!)가 그것입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 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잠언 24:11-12)

1935년에 편찬된 ‘신편찬송가’에 이 찬송을 처음 실을 때, 우리말로 번역한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는 그 처음을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고 했습니다.
이번 찬송에서 “물 위에 생명줄 던지어라”고 수정하였는데, 사실은 이광수의 번역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어퍼드 목사가 체험한 ‘생명줄’은 고래사냥을 하는 로프가 달린 작살과 같은 원리로 만든 라일건(lyle gun)으로, 구원선이 암초에 걸린 조난 선박을 향해 쏜 생명줄이었기 때문입니다.

작곡자 옆에 표기된 1888년은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425장) 등 많은 복음찬송을 작곡한 스테빈스(G. C. Stebbins, 1846-1945)가 남성곡으로 편곡해 ‘남성 합창곡집에 발표한 해입니다.

3월 첫째 주 찬송/518장(통252장) 기쁜 소리 들리니

양측으로 나뉜 강단, 십자가로 거침없이 나가기 위한 것

중세까진 예배가 성찬 중심이었으므로 성찬 상만 성단 중앙에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말씀 중심 예배로 바뀌면서 설교대가 나타났지요. 루터는 성찬 상을 그대로 둔 채 왼편에 설교대를 설치하였고, 칼뱅은 설교단을 회중 가까이 쭉 뽑아 높이 설치하였는가 하면, 츠빙글리와 재세례파는 중앙의 성찬 상을 없애고 가운데 설교대만 두었습니다.

강단 중앙에 성찬 상, 왼쪽에 ‘설교대’(pulpit), 오른쪽에 ‘봉독대’(lectern)가 있는 오늘날의 내부 모습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예배 회복 운동과 더불어 생긴 것입니다. 이러한 강단은 오른쪽을 ‘서신 측’, 왼쪽을 ‘복음 측’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어둡고 황량한 북쪽의 세계에 복음의 빛을 전한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북쪽은 이방 민족을 뜻했으니까요.

강단은 위치에 따라 그 기능이 다릅니다. 예배순서를 맡은 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설교대에 서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되는데 설교대는 설교만 하는 곳이라 거기에서 설교 이외의 다른 순서는 가지지 않습니다. 축도는 성단 중앙에서 하며, 봉독대에선 성경 봉독, 기도 등의 순서가 진행됩니다. 강단이 양편에 나뉘어 있는 이유는 회중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거침없이 나아간다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찬송 시 ‘기쁜 소리 들리니’는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미혼으로 고향에서 평생을 유니온스퀘어(Union Square) 감리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섬긴 오웬스(Priscilla Jane Owens, 1829-1907)가 지었습니다. 그녀는 많은 어린이 찬송 시를 지었는데 이 시는 교회 선교기념일을 위하여 지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마이어베르(G. Meyerbeer)의 5막 오페라 ‘위그노 교도’(Les Huguenots)에 나오는 합창곡 ‘국왕 만세(Vive le Roi)’에 맞추어 불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름난 복음찬송작곡가인 커크패트릭의 이 곡에 붙여지면서 유명해졌습니다.

관련 성구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라 할 요절인 사도행전 16장의 말씀입니다. 너무 잘 아는 본문이지요.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찬송할 때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졸다가 깨어난 간수가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자결을 하려다가 말리는 바울과 실라를 보고 감동하여 나눈 대화 중의 한 대목이지요.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사도행전 16:30-32)

곡명 JESUS SAVES는 커크패트릭(William Kirkpatrick, 1838-1921)이 이 시에 맞게 작곡한 것으로 1882년 출판한 복음찬송집 ‘구속의 사랑 찬송’(Songs of Redeeming Love)에 처음 실었습니다.

성경 본문 말씀이 “주 예수를 믿으라”라는 전반부와 “구원을 얻으리라”는 후반부로 나뉘듯이 노래도 둘로 나뉩니다. 메기고 받는 꼴이 우리 정서에 꼭 맞습니다. 히브리 시편 창법과도 같아 여성과 남성이 번갈아 부르면 좋겠습니다.

예컨대 여성이 “기쁜 소리 들리니”하고 메기면 다 함께 “예수 구원하신다”하고 받는 것이지요. 중간의 “주님 명령하시니 산을 넘고 물 건너”는 다 함께 부르고, 다시 여성이 “온 세상에 전하라” 메기면 모두가 “예수 구원하신다”로 응창(應唱)으로 받는 것입니다.

위 글은 필자가 진행하는 유튜브 ‘김명엽의 찬송교실’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전 기사이민학 스케치
다음 기사한국인에게 친밀한 베트남
김명엽
연세대 성악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서울시합창단 단장 겸 상임지휘자. 1960년부터 전국을 무대로 광범위하게 교회음악 활동을 하면서 김명엽의 찬송교실1-5을 예솔에서 출판했다. 이번 25회 연재를 통해 교회력에 맞추어 미리 2주씩 찬송가 두 곡씩을 편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