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반드시 심은 대로 갚아 주신다. 세상은 아무리 심어도 반드시 거둔다는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주식에, 코인에, 혹은 여러 가지 사업에 투자하지만 사실 투자한 대로 수익을 다 올리지는 못한다. 오히려 수익을 얻는 사람보다 망하는 사람이 더 많다. 세상의 모든 것은 환경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바뀌면 한순간에 망하기도 한다. 보라! 코로나로 일평생 쌓아놓은 것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심은 자는 반드시 거두게 된다. 하나님께서 환경을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칙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이루어지는 불변의 진리이다.
나는 교회 건축을 위하여 기쁨으로 결혼반지를 팔았다.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자원해서 기쁨으로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그냥 넘기지 않으셨다. 이 작은 결혼반지를 얼마나 기쁘게 받으셨는지 상상할 수 없는 복으로 갚아 주셨다.
나는 결혼 후에 조그만 바람이 있었다. 17평 아파트와 소형 중고차 하나를 가지는 것이었다. 이것만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사실 이러한 바람도 현실적인 내 경제 사정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일 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바람보다 훨씬 더 크게 갚아 주셨다.
어느 날 회사에서 한 친구가 이야기했다. 노조에서 사원 주택조합을 결성하여 아파트 분양을 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 아파트 분양은 남의 이야기로만 여겨졌다. 내가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지 한번 알아보고 싶은 강한 마음이 들어서 조합을 방문했다. 거의 마감이 되었고 몇 자리만 남아있었다.
20평 아파트를 계산해 보니 주택부금을 깨고 은행에 융자를 받고 또 처가에 조금 융통을 하면 간신히 될 것 같기도 했다.
마음이 급해서 우선 계약금 30만 원을 예치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다. 아내는 우리 형편에 어떻게 아파트를 장만하냐면서 계약금 30만 원을 날렸다고 펄쩍 뛰었다. 또 절대로 어른들에게 돈을 빌릴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밤새 아내를 설득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임이 분명한데,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우리 집을 장만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아내가 마음을 돌려 주어서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했더니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다.
20평 아파트는 지원자가 적어 취소되고 28평 아파트를 분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유일한 방법은 당첨이 되는 즉시 팔고 차액으로 작고 낡은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동호수 추첨하는 날이 되었다.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다. 좋은 층을 받아야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가장 나쁜 1층에 당첨이 되었다. 그때 그 참담함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나의 생각은 여기까지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정말 놀라웠다. 1층은 입지가 좋지 않다고 엄청난 금액을 할인해 주어 20평 금액으로 분양을 받을 수 있었다. 내 돈이라곤 주택부금 해지한 단돈 500만 원이 전부였다. 꿈에 그리던 내 집을 주셨다. 몇 년 동안 꿈 같은 삶을 살았다. 그동안 88올림픽이 진행되면서 아파트 값이 무려 4배나 폭등했다.
뉴질랜드에 유학을 오게 되어 아파트를 처분할 때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 가장 팔기 어려운 층이었으나 한 노부부가 계속 찾아 와서 우리 집만 사겠다고 했다. 가격은 원하는 대로 주겠다면서 매일 찾아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 가장 좋았던 로열층보다 비싼 1억 2,500만 원에 아파트가 팔렸다. 그 당시 우리 집 매매는 반상회의 톱 주제가 되었다. 한 이웃 아주머니가 말했다.
“저 집에는 하나님이 있잖아!”
하나님은 이 아파트를 통해서 뉴질랜드 유학 비용을 마련해 주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명기 8:18)
교회 하나 세우시오
나는 1년에 두세 차례 집회차 한국을 방문한다. 한국에 갈 때면 항상 분당에 머무른다. 우리 집 옆에는 율동공원이 있어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하곤 한다. 율동공원을 돌다 보면 늘 공원 끝자락에 나이가 드신 할머니들이 대여섯 분 모여 집에서 재배한 채소들을 늘어놓고 팔았다. 특히 한겨울에 맨땅에 앉아 채소를 파는 모습을 보면 매우 안쓰러웠다. 하루 종일 팔아도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할머니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모든 분들에게서 조금씩 구입을 했다. 돈을 그냥 드리고 싶어도 혹시 마음을 상하게 할까 염려가 되어 채소 1~2천 원씩 구입하고 만 원을 건넸다.
처음에는 이 상황을 의아해하시고 어려워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할머니들도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반가워하셨다. 그래서 율동공원을 돌고 나면 항상 내 손에는 여러 채소들이 가득했다.
구입한 채소가 많다 보니 모두 처리할 방법이 없어 이웃에 있는 처제 집에 갖다 주었다. 처음에는 반갑게 받아가던 처제가 어느 날부터는 난색을 하고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처제 역시 너무 많아 처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더 가져오면 다 버려야 하니 제발 그만 가져오라고 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채소를 아파트 경비 일을 하는 분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드렸다.
율동공원을 1년에 몇 차례 찾다 보니 할머니들이 오랜만에 만나면 반가워하며 왜 그동안 안 보였냐고 묻곤 했다. 나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목사이고 1년에 몇 차례 방문한다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 이후로는 멀리서 내가 보이면 목사님이라고 소리치곤 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채소를 구입하는데 할머니들이 이구동성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이곳에 교회 하나 세우시오. 우리가 다 갈 겁니다.”
반가운 소리였다.
나는 한국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 은행에 가서 만 원권 지폐 수백장을 준비한다. 언제 어디서나 도움을 청하는 어려운 분들에게 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매일 저녁 1시간 정도 걸어서 길에서 노점상을 하는 분들의 물건을 구입한다. 동일하게 몇 천 원어치 물건을 사고 늘 만 원을 주고 온다. 한결같이 기뻐하신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것이 나에게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어려운 이를 도울 때에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신령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나는 항상 구제의 주머니를 따로 준비한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누가복음 12:33)
특별히 외국을 방문할 때도 출국 전에 그 나라의 돈을 환전한다. 그곳에서 구걸하는 이들에게 주기 위함이다. 구제는 일회성의 행사가 아니라 삶이 되어야 한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이며, 또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지름길이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명기 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