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한인교회협의회(오한협)는 특별한 자랑거리가 하나 있다. 전 세계 한인교회 협의체 중에 유일하게 연합이 잘 되는 곳이다. 솔직히 다른 나라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코스타와 관련하여 섬기는 이들과 타 국가 목사들의 말을 듣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교단과 교파들이 어우러져 있는데 어떻게 큰 갈등이나 다툼이 없이 꾸준한 연합체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그 중심에는 친교의 정신이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더하여 교회의 정체성과 질서를 위해서는 영향력 있게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독특성도 가지고 있다. 본 지면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지난 10년 임원 활동 중의 관찰을 토대로 그 비결을 풀어 보려고 한다. 아울러 신임 회장으로 어떤 자세와 무슨 비전으로 연합과 친교의 장을 보다 굳건히 세울 것인가를 나누려고 한다.
오한협의 하나 됨은 아름다운 연합과 유쾌한 친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연합과 친교가 함께 어우러지면 기대되는 시너지가 있다. 개인적인 견지로 위로 속에서 격려와 새로운 힘을 공급받는 것이다. 이 에너지는 개교회에 흘러가고 차츰 영역을 넓혀서 전국으로 퍼져 나가는 것 같다. 크리스천라이프 발행인의 말에 의하면 한인교회 역사로 볼 때 올해가 39주년이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것을 기념하며 오한협을 회고하는 기회가 주어짐에 기쁜 마음으로 본 지면을 채워 보고자 한다. 연합의 중요한 비결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싶다.
서로 사랑의 실천이 있었다
지금 우리 오한협 안에 한 교회의 사모께서 뇌출혈로 고난 중에 있다. 그녀의 남편과 자녀들을 생각하면 결코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마음은 오한협에 속한 목회자와 사모들 모두의 마음일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병실에 누워있는 사모의 소식은 오한협과 사모 각각의 단톡방에 수시로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한 마음으로 생명과 의식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이런 사랑의 마음을 확신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 한 가지가 있다. 필자의 아내는 2011년 유방암, 13년 난소암, 14년 갑상선, 15년 난소암 재발, 이렇게 4번에 거쳐서 암투병이 있었다. 특별히 4번째 암은 암치병으로 바꾸는 계기가 주어졌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사랑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선배 혹은 동료 목사들의 사랑과 기도가 암을 치병으로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 어떤 부부는 본인들이 번 하루 일당에 마음을 담아 전해준 손길도 있고, 어떤 부부는 한 달 치 생활비 전부가 되는 큰 도움도 주었다. 이 나라에서 비싼 꽃을 들고 찾아온 발걸음들, 몇 차례에 걸쳐 수술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묵묵히 옆자리에서 함께 해 준 동료 목사들 등등… 환난과 역경의 시간을 넘어 7년을 넘긴 오늘 그 기억들은 주마등처럼 둥실둥실 필자의 머리 위로 떠오른다.
이런 사랑으로 인하여 빚진 자의 마음으로 오늘까지 오한협에 몸담고 있다. 가진 것이 특별히 없으니 몸으로 때우며 나름의 섬김을 표하고 있다. 돌아보니 그 사랑이 생명을 낳고 새로운 시작으로 인도하는 효과가 있음을 본 듯하다. 특별히 기억나는 선물이 하나 있다. 병상에 있는 아내에게 찾아오셔서 손잡고 기도하며 위로하셨던 사모님이 있었다.
Grace라고 새겨진 반지를 선물로 손에 꼭 쥐여 주셨다. 당시 영어 이름이었던 룻(Ruth)이 싫고 은혜(Grace)가 좋다고 아내의 이름을 바꾼 시기였다. 이런 사랑이 서로가 연약할 때, 공동체적으로 서로에게 흘러 들어가니 한 연합체가 되어진 것 같다.
서로 섬김의 기초로 되었다
서로 사랑의 기초를 파헤쳐 보니, 그 밑바닥에는 서로 섬김이 있었음을 보았다. 2012년 서기로 시작하여 선배들(증경회장들)을 통해 섬김을 배웠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을 기초로 한 섬김이었다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본 결과이다. 선배들의 리더십을 보면서, 인격을 담은 훌륭한 섬김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매년 가지고 있는 목회자 부부수련회를 통해서, 위로하고 격려하려는 마음으로 섬기는 손길을 보면 명확히 알 수가 있다.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들의 솔선한 물질적, 육체적 헌신이 보였다.
한 가지 예로, 교회에선 점잖게 가만히 있던 목사들이 섬김의 자리에 서면 기꺼이 망가지기도 하고, 유치함이나 썰렁함 혹은 창피함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유는 모인 사람들을 밝고 명랑하게 웃고 즐겁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본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섬김이 연합의 꽃으로 피어나게 하려면, 서로 섬김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본다.
10년의 임원 활동에서 경험적으로 확신한다. 일방적으로 섬김을받기만 하면 연합의 꽃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란 생각에서 그러하다. 우리들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온 문화가 있는 것 같다. 밥을 사고 커피나 티를 대접하는 섬김의 리더십이 그것이다. 양방향의 섬기는 자세가 연합에 큰 접착제가 되었다.
서로 존중이 견고하게 한다
서로 사랑하고 섬김을 콘크리트처럼 든든하게 하는 것은 존중함에 있다고 믿는다. 필자에겐 손꼽는 몇 명의 존경하는 멘토들이 있다. 개인적인 표현으로 그들을 어른이라고 통명(proper name)하고 싶다.
목댕기 맨이라고 불리는 분, 바에니 쑤웅아로 유명한 뼈만 남은 찐 멋쟁이, 나무때기라고 기꺼이 불리는 사나이, 어디를 가든 안정적인 사람으로 불리우는 남자, 속을 시원하게 달래주는 찐 형,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형님들 등등. 10개 손가락 안에 셀 수 있는 존경하는 어른이 있다. 어떤 이는 정기적으로 만나 격려를 해 주는 이도 있고, 이벤트성을 가지고 만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SNS를 통해서 온라인 상으로 소통하기도 한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존경하는 이들의 존중 속에 돌봄과 격려가 있었기에 오늘의 필자가 있을 수 있다고 고백한다.
특별히 몇 년 전부터 회장직을 감당하라고 권유해 주셨던 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명예욕에 노출된 나 자신의 마음이 확인이 되어 회장의 기회에서 기도하며 물러섰었다. 더 시간이 지나고 멘토 되시는 분의 재권유와 도전 속에서, 명예보다는 섬김의 마음으로 설 결심으로 현재 대표직을 감당하게 되었다.
오한협에 몸담으면서 크게 배운 인격의 자세 중의 하나가 존중함이다. 이 존중이 서로에게 적용이 될 때, 견고한 관계가 구축되는 것을 보았다. 그 구축 위에 연합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023년부터 회장 임기는 종전 2년에서 1년으로 줄여졌다. 주어진 한 해 동안, 받은 사랑과 섬김을 존중이란 그릇에 담아 선배와 동료, 그리고 후배들 모두와 함께 공유하기를 소원한다.
행복한 사역이 기대가 된다
목회자가 행복할 때 외쳐지는 강단에서의 복음이 기대된다. 코로나 이후 대부분의 사람은 2023년은 경제침체 속에 어려움을 앞다투며 예상하고 예견한다. 하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이해를 안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위기와 어려움이 있을 것은 동일하게 인정하지만, 관점을 달리하여 위기 속에서 소망을 가져 보자는 것이다.
매주 강단에 서는 것이 목회 10년을 넘고 나니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이 있다. 물론 거룩한 부담감이다. 결코 녹록지 못한 이민 목회의 현장이 행복한 사역이 될 수 있는 것은 함께 걷는 동료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새해에 바램은 환난 속에서 소망을 보는 행복한(Blessed) 목회와 연합이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필자가 보고 듣고 배운 리더십은 ‘성공시키는 리더십’이다. 그 중심 자세로, 연합과 친교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며 서로 존중함으로 행복한 사역을 감당하는 한 해를 소망하며 기대한다. 이러한 여정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있어진다면,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연합은 활짝 피어나는 꽃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