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조금만 힘을 빼면 행복합니다

잘하려고 하다가 일을 그르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평소대로 하면 됐을 텐데 졸업식이라며, 중요한 행사라며 진한 메이크업으로 힘을 줬던 일 같은 것 말이다. 낯설고 이상한 사진 속 모습에 속상했던 기억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있을 것이다.

‘힘’이라는 것을 욕심이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웨딩 촬영 업체를 적당한 선에서 골랐으면 됐을 텐데 더 좋은 업체를 고르고 싶은 욕심 때문에 결국 시간이 지나 사진조차 찍지 못했다. 결혼식 준비도 너무 잘하려다 보니 피곤해 과정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한다.

은율이를 키우면서도 어떻게든 잘하고 싶어 아등바등했다. 실천한 것은 별로 없으면서 머릿속으로만 그렇게 부담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을 처음 하게 될 때 뜻밖에 맞게 되는 좋은 결과를 말한다. 반대로 시간이 흐르면서 욕심이 생기고 나름의 요령을 깨우쳐 시도했을 때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원고를 쓸 때 ‘오늘은 반드시 잘 쓰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울 때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몇 장만 쓰고 들어가겠다고 하는 경우는 훨씬 많은 양의 완성도 높은 원고를 쓴다. 아마도 지나친 부담감으로부터 뇌를 자유롭게 풀어주어 잠재력을 발휘하게 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고책으로 크면 책과 친해진다
은율이를 낳기 전까지 중고 거래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대학교 때 전자기기 같은 것을 캠퍼스 내에서 학생끼리 교환한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중고 거래를 할 일이 많았다. 금방 쓰고 바꾸는 장난감 같은 것을 매번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살던 동네는 작은 신도시로 아이들이 많았고, 맘카페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육아용품을 무료로 주고받은 적도 많다.

은율이가 한밤중에 열이 올라 발을 동동 구를 때 해열제를 갖다 주고 간 사람도 있었고 접시에 부딪혀 머리가 찢겼을 때 새살 돋는 연고와 제주도에서 가져온 귤까지 챙겨준 아기엄마도 있었다. 맘카페는 유용했고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 중에서도 중고책은 은율이를 키우는 데 있어 필수 아이템이었다. 돌이 지났을 무렵 ‘책 육아’라는 것을 처음 접했다.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빠져드는 은율이를 보며 책을 사다주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은율이 고모가 백일 선물로 사준 입체북 전집과 친정엄마의 영어 그림책 전집, 그리고 남편이 사준 자연 관찰전집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고로 산 책들일 것이다.

나는 힘을 빼고 키우는 첫 번째 방법으로 중고 책을 꼽는다. 첫 아이라고 굳이 새 책을 살 필요가 없다. 남들이 보던 책이라며 싫어할 이유가 없다. 중고 사이트에서 파는 전집은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들 보다 관리 상태가 훨씬 좋다. 출판년도, 구성, 책의 상태에 따라 가격도 다양해 저렴한 가격에 새것과 다름없는 책을 구할 수 있다.

은율이는 수많은 중고 책과 함께 자랐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고 말문이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몸통만한 책을 들고 와서 내밀던 은율이는 이제 밥 먹을 때도, 차에서도, 나들이를 가고 심지어 응가를 할 때도 책을 읽어 달라고 조른다.

어디를 가든 “엄마! 책 가져왔어?”라고 묻는다. 책을 실수로 구겨도, 몇 권은 차에, 할머니 집에, 외출 가방에 두어도 맘이 편하다. 한 권이라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나 역시도 책을 읽을 때 줄을 긋고 접고 형광펜으로 칠하기 때문에 은율이도 편하게 책을 보았으면 좋겠다.

그냥 아이와 일상을 함께 하기
거창한 계획으로 하루를 채우지 않아도 된다. 그냥 아이와 심심하지 않게 하루를 보내면 된다. 친한 친구와 같이 다닌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얼마 전 은율이와 함께 했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1. 강아지 미용실 가기 2. 삼각대 조립하기 3. 자전거를 타고 장보러 가기 4. 시장에서 강아지 옷 고르기.

강아지 옷 가게를 지날 때마다 사고 싶어 했다. 작년 성탄절 때 입양한 하트의 겨울옷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정해 놓은 금액을 넘어서지 않는 이상 아이가 무언가를 사려고 할 때 크게 제재를 하지 않는 편이다. 충동 구매하는 아이로 자랄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

일흔셋의 연세에도 새벽부터 일어나 젊어서 세운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외할아버지, 매일같이 엄마를 따라 나선 시장에서 물건 하나하나를 신중히 고르는 엄마를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은율이가 스스로 소비를 해보도록 한다. ‘경제 관념을 심어주겠어.’, ‘절약을 가르치겠어.’라며 힘주지 않더라도 함께 물건을 고르며 가격을 따져보는 모습을 보이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꼭 살 필요가 없는 것은 분명하게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그럴 때 아이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보고 존중하며 대화한다. 마트도, 시장도 함께 가지만 떼쓰는 통에 곤란을 겪어본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행복하고 재미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 하나만 해도 괜찮다
다섯 살이 되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것저것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다양한 체험 시도로 체력의 한계가 오면서 책 읽어주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하지 말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읽어주기에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이어리에 이렇게 써두었다. “은율이가 잠 들 때까지 책 읽어주기”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 가장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책을 읽어주며 아이를 편안히 재우는 것이다. 은율이는 엄마가 먼저 잠드는 것을 싫어하고 잠들 때까지 엄마의 책 읽어주는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여러 선택지를 두고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보다 가장 잘하고 효과 좋은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 좋을 것이다.

육아는 언어, 외국어, 수학, 사회, 과학을 두루 잘해야 하는 입시 공부가 아니다. 1등급, 2등급의 합격선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비교와 줄 세우기는 우리네 학창시절의 공부만으로 충분하다.

육아 만큼은 힘을 빼고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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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혜진
고려대 및 한동대 국제로스쿨 졸업, 뉴질랜드 FamilyMinistries 학교수료.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어린 시절이며 육아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는 믿음으로 자발적 경단녀로서 양적 질적 시간을 꽉꽉 채운 가정양육을 하며 느낀 경이롭고 행복한 과정을 글로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인스타: miracley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