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브루타를 잘하기 위해 채울 것과 비울 것

I:목사님! 지금까지 성경하브루타가 왜 가정과 교회에서 필요한지, 성경하브루타가 무엇이고, 교회와 가정과 학교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았잖아요. 오늘은 어떤 말씀을 해주실 건가요?
P: 오늘은 성경하브루타를 잘하기 위해 채울 것과 비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하네.

I: 보통은 비울 것과 채울 것으로 이야기하는데, 목사님은 채울 것과 비울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논리적으로 뭔가 안 맞는 듯한 느낌인데요.
P: 역시, 하브루타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하는군. 하브루타는 어떤 눈에 보이는 물건이 아닐세. 그래서 먼저 채워야 할 것들을 채우고 난 후에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면 된다네. 먼저 채워야 할 것들이란? 왜 하브루타를 하는지에 대한 목적과 목표, 원칙들이라고 할 수 있어. 그리고 하브루타를 방해하는 것들은 버려야겠지? 먼저 채워야 할 것들을 이야기해 보세. 김군은 우리가 성경하브루타를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I: 지난번에 유대인의 하브루타와 성경하브루타의 차이에 대해 목사님이 말씀해 주셨던 게 생각나네요. 유대인들이‘나-너’의 만남을 통해 본문에 반응하며 새로운 인식으로 나가는 역삼각형 구조라면 성경하브루타는 ‘나-너’의 만남을 통해 본문에서 얻은 새로운 앎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한다는 십자가 구조 아닌가요?
P: 그럼, 자네는 성경하브루타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I: 저는 세 가지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성경하브루타를 통해 말씀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시고 우리를 향해 어떤 뜻을 갖고 계신가를 찾는 것이죠. 둘째는 그 말씀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성경 하브루타는 단지 지적 깨달음이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잖아요. 셋째는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의 변화된 모습이 세상에선 예수님의 빛을 비추는 것이어야 하죠.
P: 맞네. 우리가 하려는 일이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항복하는 것이라네. C.S. 루이스가 그런 말을 했지? “예술을 대하는 임무는 항복하는 것”이라고 난 그 말이 참 좋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듣고 받아들여서 항복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나?

I: 그럼 그것이 목사님이 계속 강조하신 “앎이 삶이 되는 것”입니까?
P: 그렇지. 하지만 앎이 삶이라는 행동으로 연결되기까지 여러 과정들이 필요해.

I: 그냥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면 될 것 같은데, 여러 과정이 필요하다구요? 왜 그런 지와 단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P: 인간은 죄성과 연약함 때문에 이해하고 안다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특성이 있어. 자 그러면 앎에서 행동까지 어떤 단계들이 있을까? 먼저 무지의 단계가 있지, 그런데 무지가 학습이나 경험을 통해 두 번째 단계인 앎의 단계로 나아가. 그런데 앎의 단계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경향이 있어. 의도적 실천과 반복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습관의 단계로 나아가는 걸세. 그리고 습관을 보통 우리는 ‘무의식의 앎’이라고 말해.

I: 무의식적인 앎의 단계인 습관으로 나가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네요. 또 채워야 할 것들이 있나요?
P: 내 생각엔 의도적 실천과 훈련만큼 마음가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리라는 보물을 마음껏 캐고, 그것을 통해 변화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 말일세. 작가 스티브(Steve C. Scheer)는 이런 말을 했어. “책을 잘 읽는 훌륭한 독자는 읽은 대로 변화하지만 책을 잘 못 읽은 어설픈 독자는 원래 모습 그대로 남는다. 훌륭한 독자는 다른 사람을 향해 사랑하지만 어설픈 독자는 자기만 사랑한다”고 말일세.

I: 성경 하브루타가 더 멋지게 변화된 자신을 기대할 수도 있겠는데요?
P: 당연하지. 유대인들의 ‘티쿤올람’ 정신도 같은 맥락이라네. ‘티쿤올람’이 세상을 더 멋지게 변화시킨다는 것인데,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말씀밖에 없다네. 그래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암송하는 거야. 단순히 많이 외우기 위한 암송이 아니라 그들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이 차고 넘치게 하기 위한 암송이야. 정통파 유대인들은 태아시기엔 어머니의 모세오경 암송 소리를 듣고, 어렸을 때부터 계속 암송하고, 14살이 되면 모세오경을 거의 암송하지. 레위지파들은 이사야서까지 암송하는 경우도 많다지.

I: 저는 암송을 후진적인 교육방법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주 중요한 것이네요.
P: 그럼. 하나님의 말씀은 입술로 읊조리면서 암송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말씀이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야. 그리고 말씀을 읊조리며 암송하는 아이가 죄에 대해 어떻게 분별력 있게 판단하고 행동할까?

I: 아무래도 죄를 멀리하겠죠. 말씀이 마음에 박혀 있으니까요.
P: 맞네.

I: 그러면 이제 비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P: 욕심일세.

I: 구체적으로 어떤 욕심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P: 정답을 꼭 찾고야 말겠다는 욕심, 완벽해야 한다는 욕심, 가르치고 싶은 욕심, 성경 하브루타의 목적에 반하는 엉뚱한 욕심들일세. 예를 들면, 부모들은 아이들이 성경하브루타를 통해 갑자기 천재가 되는 환상을 가져. 물론 성경하브루타를 하면 아이들이 확실하게 지혜롭게 돼.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노벨상 받게 하는 것이 우리 목적이 아니야.

I: 그런데 목사님! 친구와 짝이 되어 성경으로 하브루타를 할 때, 친구나 저나 이해의 수준이 낮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죠? 아이들끼리 뭔가 말씀을 잘 아는 것이 아니잖아요. 뭔가 정답이나 기준이 있어야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삶에서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P: 좋은 질문일세. 성경하브루타를 하다 보면 서로 성경에 대해 잘 몰라서 더 깊은 수준으로 나가지 못할 때도 있어. 그런데 성경 하브루타는 어떤 진도를 나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야.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내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을 함께 나누는 거야. 그러면서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찾고, 삶에서 말씀으로 나를 찾는 것이지. 그러니까 때로는 한 단어를 갖고도 성경하브루타를 할 수도 있어.
보통 학자들은 여섯 가지의 유형으로 성경을 분류했어. 가능성, 예언, 명령, 비교, 평가, 선언으로 말이야. 그래서 성경을 보고 어떤 유형인지 찾아보고, 말씀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하고 토론하면서 자기 생각들을 나누면 어떤 결론이나 결말이 없더라도 즐겁게 말씀 안으로 들어가게 돼 그러면, 말씀이 마음 안에서 춤추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춤추는 말씀들이 삶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고. 달라스 윌라드는 <하나님의 음성>이란 책에서 “옛날에 기록된 말씀이 현재 삶에서 경험되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다.”라고 말했지.

I: 그럼 종종 교회에서 경험하는 것인데요, 시간 때문에 중간에 멈춰야 하는 경우엔 어떻게 하죠?
P: 가르침의 현장은 꼭 교회에 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교회 마당도, 들판도, 운동장도, 선생님 집도 그 어디나 성경하브루타의 현장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오늘 목사님의 말씀은 하브루타를 잘하기 위해 채워야 할 것을 먼저 채우고, 비워야 할 것은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워야 할 것은 성경하브루타의 목적과 목표, 그리고 말씀으로 날마다 변화된다는 마음가짐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는 것이다.

그리고 비워야 할 것은 끊고 맺음 같이 뭔가 완전한 것, 정답, 가르치고 싶은 욕심들이다. 이제 아이들을 대할 때 정답을 가르치려는 욕심 대신 아이들에게 더 많이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