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놈이 언제부터 나를 따라왔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고는 머리를 움켜쥐고 엎드러져 있을 때 그놈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날카로운 손톱 같은 것으로 내 목을 공격했다. 목을 두 손으로 감싸는 순간 깨달았다. 놈이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공격당했다는 것은 분명 그만큼 가깝게 있다는 말이다.
그 순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놈을 와락 끌어안고 방안으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놈이 가족들을 공격할 수 없도록 문을 걸어 잠갔다. ‘그래 이젠 죽든 살든 이 방안에는 보이지 않는 네 놈과 나뿐이다.’ 이윽고 놈은 내가 지친 틈을 타서 내 팔다리를 짓눌렀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나는 다시 일어나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어차피 보이지 않으니 이러다 한 방은 맞겠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정말 그 한 방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놈이 잠잠해진다. 더 이상 느껴지는 공격도 없는 듯하다. 다만 처절하게 싸우던 그 상처들로 내 몸과 마음이 부르르 떨릴 뿐이다.
그래도 아직은 안심이 안 된다. 놈이 또 어디에서 그 발톱을 드러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침묵이 더 무섭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한 마음에 차라리 내가 이 놈을 끌어안고 이 방에서 같이 죽는 것이 가족과 교회를 위한 일이 아닐까 라는 비장한 마음마저 든다.
며칠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다. 결국 놈을 해치운 것일까? 해가 뜨기 전부터 나는 혹시 모를 그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스프레이와 걸레로 사방을 닦아 냈다.
그리고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아직 누구의 인기척도 없는 공간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불던 바람도 멈추었다. 그리고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지난 일주일간 빼앗겼던 내 일상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문득문득 뒷목이 서늘하다. 보이지 않는 그놈이 언제 또 달려들지 모른다는 트라우마에 뒤가 찜찜하다. “쾅!” 큰 소리에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 다행히 내가 갇혀 있던 방문이 바람에 닫히는 소리였다.’ 그렇게 나는 코비드 19 자가격리를 드디어 끝마쳤다.
요즘은 웬만한 사람들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바로 코비드 19 감염과 자가격리에 대한 일이다. 실제 코비드 19에 감염되어 자가격리를 해 본 사람들이라면 그 고충을 잘 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 경험을 통해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가능하면 걸리지 마세요~”
하지만 그런 바램이 무색하게 코비드 19는 다시 확산되고 있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 확산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도 결국 이번에는 그 덫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바탕 코비드와 자가격리로 어려움을 겪고 자가격리가 해제되는 날, 하나님께서는 문뜩 내 마음에 성경구절 하나를 생각나게 해 주셨다. 바로 에베소서 6장 12절 말씀이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이 말씀은 우리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영적전쟁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밝혀 주시는 말씀이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코비드를 통해서 오늘날 교회들이 깨닫기를 원하시는 영적교훈 한 가지를 실제 경험하게 하셨는지도 모른다.
코비드가 처음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전 세계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코비드는 존재하지만 우리들의 눈에는 그 대상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바이러스를 대비해서 저마다 마스크를 쓰고 무엇을 만져야 할지, 또 무엇은 만지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그렇게 우리가 당황하는 사이에 코비드는 한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에게 점점 확산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적은 온 세상에 세력을 확장해 버렸다.
영적 싸움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우리들의 싸움의 대상이 보이는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들이 싸우는 영적싸움의 대상은 분명히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과 악한 세력이라고 말한다. 싸움의 대상이 보이지 않기에 그 적들이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 당황해한다. 그리고 성도들이 당황하는 사이에 그 보이지 않는 적은 사랑하는 성도들의 마음속을 돌아다니며 교회를 흔들어 놓고 교회를 장악해 버리고 있다.
문제는 이 싸움의 대상이 보이지 않기에 싸움의 대상을 우리가 헷갈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보이지 않는 적을 눈에 보이는 대상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것이 훨씬 쉽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쉽게 이렇게 판단한다. “이 일은 다 목사님 때문에…, 장로님 때문에…, 집사님 때문에…”라고 말이다. 뿐만 아니다. 이런 오해는 성도들의 가정 속에까지 전염되어 버렸다. 그래서 가족까지도 적으로 만들고 싸운다. “이건 다 남편 때문이야…, 아내 때문이야…, 엄마 때문이야…, 아빠 때문이야…” 이렇게 우리가 싸움의 대상을 오해하고 눈에 보이는 아군을 향해 덤벼들기 시작할 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이 영적싸움에서 점점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 우리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법을 몰라서 영적 전쟁의 대상을 보이는 성도와 가족으로 바꾸어 버렸기에 가정마다 화목이 깨어지고 교회마다 화평이 무너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지금 온 세상을 휩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적 코비드는 오히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하나님의 메신저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가 싸워야 하는 영적전쟁의 대상은 가족이 아님을, 또 성도가 아님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내 가족을 위해, 또 내 성도를 위해 그렇게 내가 보이지 않는 적과 치열하게 싸우지 않는다면 그들을 하나하나 잃어버리는 무서운 영적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코비드를 이기는 진짜 무기는 사랑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적들을 이기는 진짜 무기도 사랑이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은 그렇게 희생과 사랑으로만 이길 수 있는 영적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