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추억
사람들에게 내가 양봉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 첫 질문은 “목사님이 어쩌다 양봉을 하십니까?”라고 묻는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어쩌다 양봉?”이라고 붙여봤다.
내가 양봉을 하기로 결정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고통을 투자한 셈이다. 이유인즉, 나는 벌독 알레르기가 굉장히 심했고 지금도 그러한 편이다.
어린 시절 부친께서는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하셨고, 시골교회의 적은 사례비에 보탬이 되고자 양봉을 하셨다. 내 기억으로, 벌통 30여 통을 교회 뒷마당에 두었고, 벌들이 잘 있는지 내검(벌통내부검사)을 할 때에는 어머니나 내가 옆에서 사나운 벌들을 달래기 위해서 훈연기로 연기를 피우는 일을 돕곤 했다.
지금이야 벌에 쏘이는 것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입는 방충복이 다양하게 나와서 원하는 것을 사서 입으면 되지만 그 시절 방충복이라고는 양파 망처럼 생긴 큰 자루를 뒤집어쓰고 얼굴만 보호하는 정도였다.
그것도 벌들이 죽기 살기로 덤벼들면 속수무책이었고, 한번 내검을 할 때에는 여기저기 쏘이는 건 당연지사였다.
늘 호기심이 많은 나는 조용한 벌통에 다가가 입구에 나뭇가지를 쑤셔 넣고 장난치다가 벌에 쏘이기도 했다.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벌도 벌침에는 여전히 독이 있기 때문에 죽은 벌을 갖고 놀다가 벌침에 쏘인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벌 독 알레르기가 심한 나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구토를 하고 다음날은 학교를 못 갈 정도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렇게 벌에 쏘여 아파서 울기도 하고 고생도 했지만, 꿀을 뜨는 날엔 잔칫집과 같았다. 벌통에서 꿀장(꿀이 저장된 집)을 모아서 가져오면, 채밀기(원심력을 이용한 꿀 짜는 기계)에 꿀장을 넣고 형과 나는 교대로 채밀기를 돌려서 꿀을 받았다.
커다란 대야에 금방 받은 꿀에 가래떡을 찍어서 먹으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꿀을 다 채밀한 다음에 병에 소분을 해서 담아 놓고 나면 남은 꿀 찌꺼기를 형과 나는 주걱으로 긁어서 먹곤 꿀에 취해 자느라 다음날 학교를 못 간 적도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마지막으로 벌을 쏘였던 경험은 그야말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 교회에서 가을 소풍을 산으로 갔다. 줄을 맞추어서 산을 두 시간쯤 오르고 있었을 때 땅벌 떼가 나에게 덤벼들었다.
땅벌의 공격은 꿀벌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사나 왔다. 벌들은 기는 습성도 있어서 바지 밑으로도 기어서 들어오고, 배 밑으로도 들어오고, 신발 속으로도 들어와서 쏘아 댔다. 얼굴은 물론 머리도 쏘였다.
무서워서 나는 난리를 쳤는데, 벌은 더 사나운 채로 덤벼들었다. 정말 그때는 죽을 힘을 다해서 산 밑으로 울며 내려갔다. 어찌나 빨리 뛰어내려갔는지 두 시간 걸음을 10분도 안 돼서 내려간 듯 느꼈다.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께서 나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집으로 데려갔다.
어머니는 팬티만 입힌 채로 벌에 쏘인 부분을 입으로 빨아내서 벌 독을 제거했고, 간호대학교에 다녔던 교회 선생님은 약국에서 해독 주사와 암모니아를 사 와서 주사를 놓고 암모니아를 발라 주셨다.
어머니께서 내가 쏘인 곳을 세어봤는데 100방은 족히 쏘인 것 같다고 하셨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장 선생님 왈 “그래도 목사님 아들이 쏘여서 다행입니다.”
뉴질랜드에서의 양봉 입문
땅벌 떼의 습격 이후로 나는 윙윙거리는 벌 소리만 들어도 온몸이 움츠려 들곤 했다. 그 사건 이후로 30여 년 동안 벌에 쏘인 기억이 없다.
하루는 가드닝을 하면서 마른 풀을 뜯어내는데 손가락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끔하더니 욱신거렸다. 장갑을 벗어보니 손가락 주변에 벌침이 여러 개 박혀 있었다. 며칠 동안 손가락이 살짝 부은 상태로 간지러운 것 빼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거나 심하게 붓지는 않았다.
“어? 웬일이지?”하며 아내에게 과거에 있었던 땅벌 떼의 습격을 얘기해 주며, “그때 많이 쏘여서 면역력이 생겼나 봐!”하고 웃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에 주위에서 양봉을 하는 분들을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되었고, 뉴질랜드에서 양봉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취미로 일단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2019년 9월 워레이 벌통이라고 하는 취미용 벌통 반 통을 사서 집 마당에 놓았다.
그런데, 봄부터는 벌통 안의 벌 식구들이 늘어나는 숫자가 일주일 단위로 눈에 띄게 달라 보였다. 여왕벌은 산란을 할 수 있는 자리에는 모두 산란을 했고 새로 태어난 벌들은 보송보송한 솜털이 나 있었다.
반 통짜리 벌이 한 달 정도 되자 한 통이 되었고 꿀물이 들어오는 게 눈으로 보였다.
11-12월 사이에는 벌통을 놔둔 주변에 꽃이 만발해서 꿀 박스를 3단까지 올렸다. 성탄절 즈음에 내가 처음으로 시작한 벌통에서 채밀을 했다. 채밀이라고 해봐야 칼로 꿀장을 도려내어 벌집꿀 채로 솥단지에 담아 놓은 게 전부였는데 그래도 20kg 정도는 채밀을 했다.
벌집꿀 상태로 입에 넣는 순간 다양한 꽃에서 나온 꿀이 섞여서 그런지 여러 가지 향과 맛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생애 처음, 내 손으로 벌을 키워 꿀을 따는 순간은 너무나도 신기하고 행복 자체였다.
<Tip>
인류와 꿀벌
아인슈타인은 전 세계에 꿀벌이 존재하지 않으면 4년 이내에 인류도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이는 우리가 먹는 식량의 30%가 꿀벌에 의해 수정되며 100대 농작물의 70프로가 꿀벌이 수정 매개체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아몬드는 거의 100프로 꿀벌이 수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이토록 아주 작은 꿀벌은 인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이다.
벌의 공격
혹시라도 벌이 덤벼드는 일이 있다면, 얼굴과 목을 손으로 가리고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 만약 벌을 쫓기 위해 팔을 휘젓거나 동작을 크게 하면 더 사납게 덤벼든다. 벌은 검정색에는 더 공격적이기 때문에 벌통 주변을 다니거나 할 때에는 검정색 옷을 피하는 것이 좋다.
벌에 쏘였을 경우에는 항히스타민 약을 먹으면 붓기와 가려움이 가라앉고 알레르기가 아주 심한 경우에는 의사 처방을 받는 것이 좋다.
봉독
꿀벌 독인 봉독(Bee venom)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성분을 제거하면 아주 좋은 천연 항생제로 쓰인다. 봉독의 유익한 점은 면역기능 조절, 신경장애 개선, 혈액순환을 개선, 염증세포 제거 및 호르몬 분비 촉진이 있다.
그래서 봉독을 화장품 및 의료와 천연 항생제로 사용하는 기술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양봉농가의 주요 수입원이기 되기도 한다. 다만 봉침(벌침)을 맞는 것은 개인의 체질에 따라서 위험할 수 있기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