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부서 사역은 어떻게?<2>

베이비부머 세대가 생겨나자 장사꾼들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대들에게 유행하는 것을 만들어 팔면 엄청나게 팔리겠구나.

우리 한국의 아이들도 요즘 어떤지 아십니까? TV를 통해서 보셔서 아실 것입니다. 2-3만원짜리 터닝 메카드가 150여 종류가 있는데 애들이 이거에 정신없습니다. 또봇, 카봇, 딱지, 포켓몬 스티커 등등, 이것만 팔아도 장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행문화가, 대중문화가 처음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스타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제임스 딘입니다. 1950년대 대중문화 스타 아닙니까? 때맞춰 TV가 등장했고 라디오가 등장하면서 제임스 딘은 모든 아이들의 오빠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제임스 딘이 나오면 불에 휘발유를 뿌린 것처럼 타오르듯 반응하고 열광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떻게 하나님보다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제임스 딘을 더 좋아하니?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면 그건 우상이야!”

네, 맞습니다. 우상이 영어로 아이돌(idol)입니다. 그리고 제임스 딘 데뷔 3년 뒤인 53년에 엘비스 프레슬리도 등장했습니다. 그야말로 1950년대 첫 번째 대중문화 부흥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다 교회를 빠져나갔습니다.

당시 그 아이들이 교회 오면 무엇을 보았겠습니까? 설교자는 연세 많으신 목사님입니다. 매우 거룩한 목소리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일반 사람들과 목소리가 다르십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주의 자녀들이 이곳에 나왔습니다.”

안 들리는 설교에 아이들은 자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어머니는 옆구리를 찌르며 “자냐? 예배 시간에 자?” 설교 때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기도할 때, 깬 아이 옆에는 아버지가 보고 계십니다.

“지금 기도 시간에 눈 뜨냐? 그냥 눈알을 확!”

생각해보십시오. 안 그래도 부모와 세대차이 느끼고, 마음속에는 제임스 딘이 있는데 설교가 들어오겠습니까? 반항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게다가 교회에서 찬양은 200년 묵은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밖에서는 제임스 딘이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데, 교회에서는 200년 묵은 찬양을 부르고 있으니, 1950년대 미국교회의 아이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지금의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어떤 사역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교회에 있지 않고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농구장으로, 학교로, 길거리로 나가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일대일로 만나고 복음 전하고 기도를 가르치고 나가서 그들을 제자 삼았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청소년 기관 사역자들’이라고 부릅니다.

1950년대 CCC, 예수전도단, YFC 단체들이 다 그 시절에 생겨났습니다. 아이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다시 불러 오겠다는 이들입니다. 생긴지 10년이 되지 않아서 100개 넘게 늘어났습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복음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교회로 올까요? 안 올까요? 교회로는 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가면 거룩한 목소리의 설교자가 있지요. 200년 넘은 찬양 부르지요. 엄마가 옆구리 찌르고, 아빠가 눈알을 후벼파려고 기다리니까 교회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CCC, YFC 가면 사역자들이 어떻게 설교합니까? 자신들의 심장을 내어던지며 불을 토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변화되지 않을 아이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옆에 누가 앉아 있습니까? 오빠들, 친구들, 또래들이 있습니다.

찬양은 무엇입니까? ‘내게 강 같은 평화’ 그래도 당시 최신 CCM 이었습니다. 그래서 담임목회자들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교회는 애들이 오지 않을까? 밖에 CCC, YFC 에는 애들이 바글바글 한데…”

그러다가 어떤 목사님이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목회 형태 패러다임인 것입니다. 그것은 “한 교회에 목회자가 한 명이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바나바도 바울이 더 낫다고 하니까 그를 설교자로 세우지 않았는가?”

당시에 한 교회에 목회자 한 명이라는 생각만 했나 봅니다. 이 담임목회자는 결단합니다. “그들이 내가 싫다면 청소년 전문 사역자들을 교회로 불러서 사역하게 하면 어떨까?” 이렇게 해서 “Youth Pastor, 청소년 사역 목회자가 처음으로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 아이들을 따로 맡겼습니다.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그들만이 모일 수 있도록 그들만의 설교, 메시지, 그들만의 찬양, 그들만의 모임을 만들게 해 준 것입니다. 한 지붕 두 교회, 세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1960년대 부서사역입니다. 부서라는 개념이 그 전까지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부서는 이 때 생긴 것입니다. 역사가 짧습니다. 지난 2천년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 생긴 것입니다. 중등부, 고등부가 바로 짝귀 미키마우스인 것입니다. 전체 공동체 마을이 가족이고, 가족이 마을이던 공동체에서 짝귀가 생긴 것입니다.

교회 안에 주일학교가 생기고 교회 안에 부서가 생기면서 한 지붕 안에 두 개의 교회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에 빼앗겼던 아이들을 교회로 데려오게 했던 놀라운 사역의 전환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목사님이 또 다른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 부서를 만들면 어떨까?” 당시 애들은 교회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부모들과 함께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애들이 따로 예배드릴 수 있을까? 무슨 코흘리개가 예배를 드릴까?” 그래서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고민하다가 허락하게 됩니다. 아이들 반응이 어떠했을까요? 엄청나게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역자들이 아이들 눈높이로 설교하고 찬양하고, 융판 붙여가며 다윗 물매돌 던지고 골리앗 넘어가니 애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옆에는 친구들이 앉아있고, 찬양은 입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로 하는 것입니다. 분반공부도 애들 수준에 맞게 하고, 게임하고 교육하니 더없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들이 어린이 부서들을 신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7살 아이들도 요청합니다. “목사님, 우리도요.” 목사님이 말합니다. “너희가 뭘 알어?” 아이들이 말합니다. “우리도 예배할 수 있어요!” 그래서 유치부가 생깁니다. 부흥도 합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자 애들이 기분 나빠졌습니다. 세대차이 난다는 것입니다. 저 어린 것들이랑 우리를 어떻게 똑같이 대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유아부가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애네들도 기분 나쁜 것입니다. “어떻게 저 누워있는 애들이랑 우리랑 같습니까?” 그래서 ‘누운 부서’와 ‘기는 부서’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운 부서를 영아부라고 하고, 기는 부서를 유아부(Toddler)라고 하고, 선 부서는 유치부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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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재
총신대학교 목회학 석사, 싸우스웨스턴 신학교 MATh (성경언어, 성경신학), 뉴질랜드 광명교회 담임. “건강한 교회, 성경적 사역”에 가치를 두는 목회자로 다음 세대 신앙 교육에 대해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