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자아상과 자존감을 가져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 부모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나 역시 은율이를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 내가 특히 중점을 둔 두 가지를 나누고 싶다.
존재를 인정받은 아이는 타인을 존중한다
첫째, 나는 은율이가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받고 인정받는 존재라고 느끼길 바랐다. 은율이가 39개월일 때였다. 남자아이들이 자동차 이름을 줄줄 외우듯이 은율이는 강아지 종류의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산책을 하다 마주치는 강아지들을 보며 웰시코기, 닥스훈트, 장모 치와와 등 그 품종을 나한테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살았던 별내 신도시는 넓고 푸른 공원에서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이 참 많았다. 그것만으로도 은율이를 행복하게 하는 동네였다.
강아지를 키우고는 싶었지만, 아직 은율이가 어렸기에 체력적으로 자신이 없었다. 남편은 개를 키우다 다치거나 죽게 되면 속상하다며 생명 들이기를 주저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펫시터였다. 펫시터는 장시간 외출하는 주인들을 대신해 반려견을 돌보아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돌보던 강아지들이 주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때면 은율이가 매번 우는 것을 보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결국 강아지를 입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도 강아지를 좋아해서 어릴 때 항상 키웠기에 은율이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 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입양을 염두에 두고 처음 만나게 된 강아지는 포메라니안이었다. 갈색 털의 예쁜 아이였는데 문제는 아이가 몹시 짖는다는 것이었다.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강아지에게 목줄을 채워 산책시키는 것이 꿈이었던 은율이는 주인이 우리에게 하루 동안 맡긴 그 녀석을 데리고 행복에 겨워 산책을 시작했다. 산책시키기 좋은 녹지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강아지는 귀가 따갑도록 쉴 새 없이 짖어 댔다.
“은율아, 너 얘가 이렇게 짖어도 좋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은율이는 대답했다. “엄마도 내가 울어도 좋지?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고는 강아지 목줄을 잡고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잠시 은율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 큰 아이처럼 말하는 것도 대견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가슴 뭉클했다. 자존감 높은 아이로 만드는 기본 토대는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가 수용된다는 믿음에 있다.
강아지들은 산책 중에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느라 지체하곤 하는데, 내가 목줄을 끌며 재촉하면 은율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강아지 기다려줘야지. 그렇게 억지로 데려가지 말고.”. 40개월밖에 안 된 아이가 하는 말 같지 않아 대견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존중받은 그대로 강아지를 대할 줄 아는 은율이의 태도에도 깊이 감동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했던 수고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의 존중을 받은 아이는 자신감이 생긴다
둘째,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었다. 강아지와 산책할 때는 같이 뛰거나 기다려 주기도 해야 하고 때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어야 한다. 나는 은율이가 스스로 그런 일들을 해낼 수 있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도와주었다. 그랬더니 은율이는 겁 많은 반려견 하트가 하수구 구멍 같은 곳을 잘 건너지 못하는 것을 미리 알고 번쩍 들어서 안아줄 만큼 강아지 케어에 익숙해졌다.
지나가던 분이 “어머! 아이가 강아지 산책을 시키네.” 하고 말해주면, 아이는 몹시 뿌듯해 한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언니나 오빠들이 강아지를 보러 오면, “만져봐도 돼. 안 물어~. 순해. 푸들은 다리가 약해서 이렇게 안으면 돼.”라며 자세한 설명도 곁들여준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방법은 많겠지만, 나는 사소한 일상에서 은율이가 뭔가를 시도해보려 할 때 “아직 어려서 안 돼.”라는 말보다는 스스로 해볼 기회를 최대한 주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은율이가 26개월이 되면서 “나도 엄마처럼 요리하고 싶어.”라는 말을 하며 요리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그때부터 은율이와 같이 아침식사를 만들었다. 30분이면 될 카레 만들기가 한 시간 넘게 걸리기도 했다. 짜장 소스가 하얀 주방 커튼에 튀고 국자나 야채 재료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야단을 치지 않아도 은율이의 표정은 살짝 어두워졌다. 어린아이에게서조차 실패나 실수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혼자서 뭔가를 시도해보려는 아이를 도우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고 위험한 순간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신경을 바짝 써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국제변호사가 되고 싶은 꿈을 무기한으로 연기하면서까지 자라는 아이와 모든 것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아닌가. 내가 아니면 누가 내 아이의 호기심 어린 도전을 지지해 줄 것인가. 엄마를 도와 만든 카레와 계란말이를 먹으며 뿌듯해하는 아이를 보며 나 역시 행복감에 젖는다.
엄마가 만들어준 것보다 스스로 만든 아침 식사를 더 맛있게 먹으며 뿌듯해하는 은율이를 보며 같이 요리하는 일이 점점 재미있어졌다. 손재주 없는 엄마이지만 베이킹을 좋아하는 은율이와 빵을 굽기도 했다. 반죽을 위해 네 살의 은율이에게 처음으로 핸드믹서를 손에 쥐어 줘 보았다.
처음에는 믹서가 반죽과 같이 돌아가기도 했고 기기 작동 소리에 은율이가 긴장해서 반죽이 여기 저기 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은율이를 격려하며 손을 잡고 같이 했다. 이제 은율이는 아주 능숙하게 핸드믹서를 돌린다.
은율이가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커갔으면 좋겠다. 짜장이 하얀 커튼에 튀었을 때 엄마가 용납해주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핸드믹서 위에서 흔들리던 자신의 손을 꼭 잡아주던 단단하고 따스한 엄마의 손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또 나는 은율이가 마음 따뜻한 도전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한 생명을 돌볼 만큼 의젓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오븐에서 갓 꺼낸 빵처럼 따뜻했던 유년시절을 추억하면서 말이다.
“아이를 잡아주던 엄마의 손처럼, 마음 따뜻한 도전자로 키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