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실수할 특권을 주라

어느 40대 초반의 주부가 나에게 남편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바른 생활 사나이’인 남편은 아이에게 입버릇처럼 실수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는 것이다. 어느 주말 아침, 아이와 남편이 어항의 물을 갈아주고 있었는데 낑낑거리며 대야에 물을 담아 걸어오는 아이에게 남편은 “흘리지 말고 잘 갖고 와~.”라고 했단다. 자주 듣는 남편의 말투긴 했지만 그날따라 못마땅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우리도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실수하지 말고 잘해.”, “흘리지 말고 먹어.”, “쏟지 않게 조심해.” 우리 자신에게도 다음과 같은 강박이 있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해. 아이에게 화내면 안 돼.”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바르게 커 온 착한 남편이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남편도 아빠 되기가 처음이지요. 아이에게 실수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은 것처럼, 남편의 실수도 넉넉하게 이해해 주세요. 기회가 될 때 이 부분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 좋겠어요.”

대화 전에 아이가 좋아하는 물고기 어항의 물을 같이 갈아주는 자상함을 먼저 칭찬해주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 후로도 남편은 종종 같은 실수를 했지만 아차 하는 순간에는 꼭 아이를 안심시키는 멘트를 빠뜨리지 않는 재치를 발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수를 거듭하며 당근 깎기의 달인으로

착한 아이로 키울까 ‘잡스’ 같은 아이로 키울까
실수라는 말은 부정적이고 특권이라는 말은 긍정적이다. 아이의 실수는 부모의 태도에 따라 특권이 될 수 있다. 이는 착한 아이가 아닌 당당한 아이로 커 가기 위해 아이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권리이다.

엄격한 양육태도를 가진, 은율이와 같은 개월 수의 둘째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집에서 엄격하게 큰 아이들은 밖에서 사고를 안 치더라고요. 저녁 아홉시에 회초리를 들고 ‘맴매’라고 하면 바로 잠자리에 누워요.”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날마다 읽고 싶은 책을 끝없이 가져와 실컷 보고 잠드는 은율이의 삶과는 대조적이었다. 이것저것 탐험하며 지내야 할 시기에 과연 그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그녀가 뿌듯해하는 ‘번호대로 가지런히 꽂힌 전집’이 26개월 아이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어진 말은 또 나를 놀라게 했다. 첫째 딸이 엄마 앞에서는 무척 얌전하지만, 엄마의 시야에서 벗어나 유치원으로 향하자마자 태도가 완전히 바뀐다는 것이다. 훨씬 활발하고 말이 많아진다며 엄마 옆에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며 ‘자신이 너무 엄격한 걸까?’라는 고민을 내비쳤다. 또한, 언어 발달이 느린 둘째가 걱정된다는 말도 했다. 많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실수는 배우고 발전하는 아이의 특권이다
같은 26개월이던 은율이는 이미 우리말을 유창하게 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제 나이보다 한 살 이상 많게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서툴지만 영어 단어도 조합해 말하기도 했다. 은율이는 책과 놀이가 뒤섞인 시기를 보냈다. 물감은 쏟기 일쑤고, 책은 죄다 꺼내 놓고 읽었다. 놀다가도 바닥에 털썩 앉아 그림책을 들여다보곤 했다.

낑낑대며 바지를 입는 19개월

책이 아이의 삶 속에 자연스레 파고들기를 바라며 번호대로 정리하는 대신, 좋아하는 책이나 아이가 읽었으면 하는 책을 일부러 바닥에 펼쳐 놓았다. 다양한 실수도 해보아야 한다. 전날 늦게 자서 다음 날 공연을 보러 가지 못하거나 신발을 바꿔 신었다가 불편함을 느끼고, 철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나갔다가 집에 다시 들어오는 경험들 말이다. 바로 지적하지 말고 기다려주면 아이는 스스로 깨닫는다.

내 양육의 기초는 존중이다.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주는 것이 바로 나의 존중의 방식이다. 27개월의 은율이가 “엄마! 나 혼자 신발 신었어!”라고 소리치던 장면이 생생하다. 문밖 세상으로 나서며 아이가 혼자 그 준비를 마쳤던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신발을 신으며 뿌듯해하는 이제 다섯 살이 된 은율이에게도 “오른쪽 왼쪽이 바뀌었잖아” 같은 맥 빠진 정답 놀이는 하지 않는다.

마흔이 넘어 운전을 배울 때 나는 “우와! 차가 간다! 간다!” 하며 신기해했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만 타다가 직접 운전석에 앉아보니 참 떨리고 설레었다. 브레이크를 밟지만 않으면 저절로 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버튼들도 눈에 들어왔다.

어느 친한 여자 집사님께 운전 연수를 받기로 했다. 온유하지만 대범하고 씩씩한 분으로 베스트 운전 선생님이었다. “괜찮아. 실수하면 ‘죄송합니다’ 하고 다시 정신 차리면 돼요.” 그분 덕에 나는 마흔이 넘어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깰 수 있었다. 같이 긴장하며 잔소리만 하는 선생님이었다면 장롱면허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처음 신발을 신어보고 혼자 지퍼를 채워보는 것은 아이에게 있어 역사적인 순간이다. 19개월부터 혼자 바지를 입기 시작하던 은율이는 바지 한 짝에 다리 두 개를 쑤셔 넣고 울기 일쑤였다. 아이에게는 바지 하나 입는 것도 얼마나 큰 도전인가!

생수병이 아닌 컵을 잡아주자
세 돌 무렵, 은율이는 2리터짜리 생수병을 들어 컵에 따르려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한 일이 있었다. 갑자기 들기도 힘든 큰 물병을 주방에서 가지고 와서는 거실 한가운데 앉아 조그만 컵에 물을 따르려는 것이었다. 물바다를 상상하며 긴장했지만, 나는 숨죽이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이제라도 말릴까? 같이 잡고 따를까? 아니지, 이것이 은율이에게는 코페르니쿠스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1리터도 아니고 그냥 둘 수는 없는데?’
짧은 순간 고민한 나는 생수병 대신 컵을 잡아주었다. 거의 쏟지 않고 컵에 따랐다. “꺄!” 하며 나는 아이를 꽉 안아주었다. 그날 마신 물은 아마도 은율이 네 살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물이었을 것이다.

사고 안 치는 ‘착한 아이’가 아니라 세상을 놀라게 할 ‘잡스’ 같은 아이는 바로 이런 사소하고도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아이가 자랄수록 내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친구 관계를 고민할 때, 학업으로 힘든 순간에, 첫 사회생활과 결혼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말이다. 언젠가는 은율이 곁을 떠나야만 하는 순간도 올 것이다. 나는 은율이가 정답에 맞추며 사느라 갈대처럼 흔들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새로움을 맛보며 하나씩 성취해가던 어릴 적 엄마와의 순간을 기억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면 좋겠다.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길 바란다. 아직도 쏟거나 흘리기 대장인 나는 일부러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어른인데도 이렇게 실수하고 쏟네~”

그러면 은율이는 이렇게 말해 준다.
“괜찮아,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