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브루타가 뭐예요?”

유대인 교육법으로 알려진 하브루타에 대한 자료를 찾으면서 나는 새로운 지식 세계를 탐험하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유대인들은 하브루타로 탈무드를 배운다.

교사인 랍비의 역할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져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게 하고 학생들이 토론한 내용을 정리하고 확인한다.

그래서 “마따오 쉐프(네 생각은 뭐야?)”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유대인 가정은 하브루타를 매개로 일상이 교육현장이 되고 삶이 학습과 신앙교육의 마당이다.

특히 질문과 대답과 토론은 사고를 자극하고 생각을 정리하게 하며 표현을 논리적으로 하도록 이끌기 때문에 현대 교육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교육수단이다.

P: 하브루타에 대해 알아보니 어떤가?

I: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육의 뿌리를 찾는 느낌이랄까요?

P: 그랬군. 하브루타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겠나?

I: 하브루타는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할 때 서로 짝을 지어 공부하는 것에서 시작되었고, 넓은 의미에서 하브루타는 상담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대화라고도 볼 수 있더라구요.

P: 잘 정리했네. 현재 우리나라에 하브루타를 배우려는 분들이 많아. 하브루타라는 이름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알아보았나?

I: 하브루타라는 이름은 아람어와 히브리어에서 ‘친구’라는 의미를 가진 ‘하베르’에서 나왔습니다. 아람어와 히브리어는 단어와 글자가 유사하죠. 친구와 함께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대답하고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공부한다고 해서 하브루타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전통교육도 하브루타가 아닌가요?

P: 맞네. 가까운 조선시대로 가볼까? 서당이라는 학교가 있고. 거기엔 가르치는 훈장님과 배우는 학생들이 있지. 학생들은 천자문, 명심보감, 격몽요결 등 각자 수준에 맞는 책을 가져와서 공부를 해. ‘수준별 학습’ 또는 ‘수월성 교육’이랄까? 훈장님이 전체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기주도학습을 했어.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글자나 뜻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고, 때로는 선생님이 학생에게 질문하면서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이지.

I: 그렇게 보면 모든 원시문화의 소통 방식도 하브루타였네요?

P: 그렇지. 글이 없던 시절 부족들은 공동체를 결속시키기 위해 저녁마다 마을 한가운데 모여서 구전으로 문화를 전승하곤 했지. 지도자나 어른들은 공동체의 비전이나 개인의 역할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을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나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것들을 질문하고 함께 대화하는 방식이었지.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뛰어나고 그들의 학습방법이 주목받으면서 ‘하브루타’라는 이름이 알려졌을 뿐, 질문하고 대답하고 토론하는 것은 모든 문화가 취한 문화 전승 방법이었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문화가 발전하면서 학습자 개인의 사고와 창의성을 확장시켜줘야 할 교육이 퇴보해서 전체주의적인 획일화, 교수자 중심, 교과 중심이 된 것이지.

I: 그럼 하브루타 형식이 모든 문화에 존재했었고, 문화의 발전 산업화 등이 오히려 교육의 본래 목적과 의미를 훼손시킨 것이네요?

P: 정확히 보았네.

I: 현재 한국 교육은 학교 중심, 교사 중심, 교과 중심이잖아요. 시험이 중요한 평가의 도구가 되어서 학생들은 시험 노이로제가 걸렸구요.

P: 학생들의 실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측정할 수 있는 도구는 필요하다고 보네. 하지만 일반적으로 지식, 기술 향상, 태도 등의 다면적인 평가보다는 지식에 지나치게 편중되었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네.

I: 그건 교회 교육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저도 아이들에게 성경을 많이 가르치기만 하면 아이들 스스로 뭔가를 깨닫고 배우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식에 대한 교사의 욕심이 아이들을 더 어렵고 지루하고 만드는 것 같아요.

P: 아무리 많은 지식을 배우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지혜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지. 유대인들은 그런 사람을 ‘책을 수레에 가득 싣고 가는 당나귀’로 비유하네. 지식이란 지혜를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과 같은 걸세.

그래서 화이트 헤드는 “단순 박식한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이다. 활용되지도 않고 검증되지도 않는 생기 없는 관념을 머리에 주입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했네. 그는 교육 부패를 예방하기 위해 “너무 많은 과목을 가르치지 말고 가르쳐야 할 것은 철저하게 가르치라”고 말했네.

하브루타는 성경의 많은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네. 하나님의 뜻과 의도와 감정을 살피며,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들을 깊게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삶에서 실행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도록 하는 교육이라고 볼 수 있지.

I: 그럼 하브루타가 가정이나 교회, 나아가 학교생활에 어떤 유익이 있나요?

P: 좋은 질문일세. 유대인들은 하브루타를 ‘역삼각형 구조’라고 말하지만 나는 하브루타의 모형을 십자가로 표현하며 유익한 점을 말해주고 싶네. 유대인들은 ‘나-너’가 탈무드를 하브루타로 배우며 깊은 지식과 지혜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해.

그래서 역삼각형 구조로 표현했네. 하지만 우리는 가정교육이나 교회 교육을 하려는 목적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 아닌가? 그래서 역삼각형 구조를 넘어서 위로 ‘십자가를 지향하는 교육’이라고 말하는 것 일세. 즉 ‘나-너’가 성경을 매개로 하브루타 하면서 아래로는 깊은 지식과 지혜를, 위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다는 의미지.

I: 그렇군요. 그런데 일반 토론도 상대방과 어떤 주제에 대해 나누며 깊은 이해와 지식을 얻는다는 점에서 하브루타와 유사하지 않나요?

P: 잘 보았네. 형식은 유사하지만 목적과 과정과 결과가 다르네. 일반 토론의 목적은 마치 링 위에서 싸우는 선수처럼 상대를 이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논리를 구성하고, 공격적으로 질문하지.

하지만 하브루타는 지식과 지혜의 보물을 캐기 위해 ‘나-너(우리)’가 함께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을 서로 도와주는 방식일세. 그래서 일반 토론은 끝나면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 이긴 사람이나 진 사람이나 서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지.

하지만 하브루타는 친구관계를 돈독하게 해서 평생지기를 만들어 준다네. 하브루타에서의 질문은 상대를 이기고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 생각하게 하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하게 하는 도구인 셈이지.

오늘 목사님과의 대화에서 하브루타의 개념을 확실히 정리했고, 책을 수레에 가득 싣고 가는 당나귀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삼각형을 넘어 십자가를 지향하는 교육이라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또 일반 토론과 비교해서 목적과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