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맨날 뭐가 그렇게 재밌니?”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신이 나 있는 은율이를 보며 남편이 하는 말이다. 은율이는 밝다. 생기발랄함 자체이다. 유머 감각도 수준급이다. 은율이가 만든 유행어를 온 가족이 사용할 정도이니 말이다. 말도 재잘재잘 많다. “엄마 내가 재밌는 이야기해줄까?” 하며 매일같이 나를 웃겨준다.
쾌활함은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 어른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과거에 대한 후회가 많아 현재를 잘 즐기지 못하는 반면, 아이들은 현재를 온전히 누린다. 나는 그런 은율이가 부러울 때가 많다. 밝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다는 뜻이고 그 행복이 밝음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유머 감각인데, 유머라는 것이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데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은 비극도 코미디로 승화시킬 줄 아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육아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육아가 ‘행복해서 미치고, 힘들어서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육아의 시간을 통과하게 해준 것이 바로 웃음과 쾌활함이다.
모든 아이는 엄마를 닮고 싶어한다
나는 은율이가 인생의 어떤 순간에도 밝음을 잃지 않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랐다. 부정적으로 태어나는 아이는 없다. 왜냐하면, 아이는 세상을 탐험하고 즐기도록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세상이 신기하고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기고 앉고 일어서고 걷고 마침내 뛴다. 또한 무조건 부모를 믿고 사랑하기에 부모의 언어를 흉내 내어 말하기 시작한다.
삶에 대한 태도로 말하자면 그들에게 불가능은 없으며 자신이 최고라 여긴다. 옆집 다른 아이 이야기를 하면서 칭찬 비슷한 것이라도 하면 “내가 더 잘해!”라고 한다. “걔가 그림을 참 잘 그리더라.” 하면 “내가 더 잘 그려!” 하기도 한다.
은율이가 네 살 때 남편이 은율이와 도서관에 갔는데 어떤 언니와 “내가 더 잘해.” 경쟁이 붙었단다. 급기야 그 언니가 “내 머리가 더 커!”라고 해서 박장대소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은율이도 다섯 살이 되자 놀이터에서 친구를 향해 “내 머리가 더 커!”라고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이러한 것이 아이들의 특징이기에 아이들에게 밝음이야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이런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아이들에게서 부모의 모습이 비친다.
한 번은 놀이터에서 다정한 남자 아이 둘을 만났다.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오빠라며 은율이를 잘 챙겨주었다. 한참을 놀고 있는데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역시나 그 엄마는 성품이 좋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배움, 돌봄, 예술, 인간관계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자
내가 밝은 성향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매일 기쁠 수가 있겠는가? 특히 육아를 하다 보면 수면과 식사가 불규칙하기에 우울감이 오기 쉽다. 그래서 나의 정서상태가 아이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해, 은율이가 늘 쾌활함을 유지하도록 의지적인 노력을 했다.
마음이 지칠 때는 기필코 이 시간을 즐겁게 보내리라 마음먹기도 했다. 그러지 않으면 육아라는 것은 어느새 부정적인 생각들로 채워질 수 있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내가 신경 썼던 부분은 다섯 가지였다.
첫째,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이다. 아침에 아이가 깨면 늘 딱따구리 뽀뽀를 하며 말해준다. “은율아~일어났어? 정말 예뻐. 은율이가 태어나서 엄마는 기뻐.” 그러면 잠에서 막 깨어 따뜻하고 발그스레한 뺨을 한 아이는 배시시 웃는다. 가장 깨끗한 마음상태일 때 사랑의 메시지를 듬뿍 받으면 긍정적인 자아상이 스펀지처럼 흡수된다고 생각한다.
둘째, 배움의 즐거움이다. 배움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를 알게 하려고 섣불리 교육기관을 접하게 하지 않았다. 우선 내 품에서 행복하게 배우기를 원했다. 남과 비교해서 우월감이나 모른다는 수치심을 가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주로 책을 통해 자연스럽고 즐겁게 세상에 대한 지식을 쌓게 했다. 거리에 나가면 온갖 것이 배움을 준다. 개미를 관찰하면서도 즐거운 것이 아이다.
셋째, 생명을 돌봄으로써 얻는 즐거움이다. 육아를 하며 강아지를 기른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강아지 입양을 결정했다. 은율이는 엄마가 자신을 돌보는 것을 흉내 내어 강아지를 돌본다. 내가 강아지를 훈련시키느라 엄하게 하면 막아 서고 강아지를 달래주기도 한다. 사슴벌레, 새, 물고기도 키우고 있는데 먹이 주는 일은 은율이가 도맡는다. 새끼를 밴 구피를 관찰하고 잘 보이지 않는 치어를 발견해 분리해 주기도 한다. 꿈이 사육사일 정도로 동물과 곤충을 좋아하는 은율이는 생명을 돌보며 행복해한다. 상상력과 감성이 폭발하는 시기라 동물과 곤충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
넷째, 예술의 즐거움이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있어 예술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 음악과 미술은 어린아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은율이가 네 살 때 교회 집사님께서 젊을 때 갖고 계시던 클래식 엘피판을 중고 사이트에 팔아 달라고 부탁하셨다. 훑어보니 흘륭한 음반들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내가 사기로 했다. 잔잔한 음악부터 웅장한 곡까지 골고루 들려주었다. 그 중 은율이는 네 살이 되던 해 크리스마스에 이모와 보러 간 호두까기 인형의 연주곡을 가장 좋아한다.
다섯째, 인간관계의 즐거움이다. 모든 즐거움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도 중요한 것은 관계의 즐거움이다. 그 중 부모와의 관계가 주는 행복을 충분히 느껴야 한다. 나는 직장에 있는 남편에게 은율이의 발달사항이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실시간으로 전달해주었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딸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은율이가 아빠를 많이 찾은 날이나 아빠를 보고 싶어 하다가 잠든 날은 꼭 “아빠 찾다가 잠들었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임신 기간을 포함해 출산 후에도 친정에 혼자 내려가지 않았다. 7개월 즈음 되어서야 처음으로 아이와 친정에 갔다. 아빠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 덕분인지 은율이는 아빠와의 관계가 긴밀하다. 아빠와 관계가 좋으면 아이들의 사회성이나 자존감 면에서 도움이 많이 된다.
엄마들도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단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사회생활을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강해서 아빠와 관계가 돈독하면 사회생활에 자신감을 갖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잠을 몇 시간밖에 못 자며 책을 쓰지만 무척 기쁘다.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기쁨, 즉 밝은 면을 보기 때문이다. 아이는 지금 내가 책을 쓰는 동안에도 등과 목에 매달려 까르르 웃으며 장난칠 정도로 밝다.
원고 여기저기에 토끼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한다. 아이 때문에 글을 못 쓰겠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을 준 것이 바로 이 밝은 빛, 은율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밝은 얼굴은 아이가 비추는 빛 때문이다.
엄마가 그저 그 아 이의 빛을 반사해주기만 하면 아이는 그 빛으로 다시 세상을 밝히는 존재로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