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교회 교육의 현장 속으로

목사님과 통화를 끝내고 몇 차례 카톡을 나누면서 우리는 화요일 저녁 8시에 줌에서 만나기로 했다. 목사님은 일단 3개월 정도 같이 고민하자고 하시면서 과제를 내주셨다. 역시 선생님이셨다.

이번 주 과제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하나님은 어떤 교사를 바라실까?’와 ‘나는 어떤 일을 하는 교사가 되고 싶나?’였다. 두 가지 질문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묵상했다. 신기하게도 두 가지 질문이 한 주간 내내 마음을 맴돌았다. 역시 질문의 매력은 엉킨 실타래를 풀어준다.

I: 안녕하세요 목사님! 한 주간 잘 지내셨어요?
P: 그럼. 난 이번 주에 주님이 은혜를 쏟아부어 주셔서 너무 감사해. 자넨 어떤가?

I: 저도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내 주신 과제가 한 주간 내내 제 머리를 맴돌았어요.
P: 와우. 이미 주님을 향한 자네의 열정이 시작된 것 같네. 자네 혹시 열정이란 영어 단어 아는가?

I: 예 enthusiasm이죠?.
P: 맞네. 그 enthusiasm 이란 단어가 헬라어의 ‘엔 크리스토스’에 나왔다네. 영어로 하면 ‘in Christ’ 즉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이 진짜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거지. 한 주간 자네가 계속 생각하고 있다는 자체가 주님 안에서의 열정이 시작된걸세. 지난주에 자네가 생각한 걸 얘기해줄 수 있나?

I: 하나님이 바라시는 교사에 대해 묵상하다가 (1) 거듭남의 확신과 뜨거움, (2) 충성, (3) 정직, (4) 좋은 성품, (5) 늘 배우려는 자세 등 다섯 가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P: 정말 잘 정리했네. 자네는 왜 거듭남의 확신과 뜨거움을 첫 번째 요소로 생각했는가?

I: 제 생각에 성경은 누구나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신자나 또는 타 종교인도 말이죠. 그런데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지식으로 예수님을 가르칠 수 있지만, 영혼 구원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아요.
P: 맞네. 아무리 높은 지식과 좋은 성품을 갖고 있어도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사람들에게 좋은 교사라는 칭찬을 듣겠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교사는 될 수 없네. 그럼 ‘무엇 하는 교사’는 어떻게 정리했는가?

I: 솔직히 두 번째 질문은 힘들었습니다. ‘어떤 교사’하면 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일을 하는 교사’하면 추상적인 것 같고 뭔가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낑낑댔어요.
P: 쉽게 찾은 답은 쉽게 잊어버리는 법이지. 낑낑댄 만큼 기대가 되네.

I: 저는 어린 시절 교회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교회에 다녔는데, 전도사님의 설교와 선생님들의 공과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요. 솔직히 어떤 땐 너무 지루한 기억만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의 격한 ‘환대’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선생님들은 교회 마당에서 계시다가 우리가 나타나면 뛰어오셔서 우리를 안아 주시고, 손잡고 교회로 같이 들어가셨어요. 아직도 선생님의 환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푸근해져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환대하는 교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P: 하하하하. 자넨 충분히 ‘환대하는 교사’가 될 걸세. 환대의 뿌리는 사랑이지.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환대할 수 있다네. 그런데 오늘날 가정과 교회교육 현장속으로 들어가 보세. 얼마나 좋은 교육자료와 교구들이 즐비하고, 탁월한 교육 방법론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정말 진심으로 환대하는 가정과 교회를 찾아보기 힘들어. 사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사랑과 환대를 먹으며 성장 한다네.

I: 예전에 교실에서 교육을 농사 짓는 것에 비유하신 게 생각납니다.
P: 내가 한 말은 아니지만, 정말 좋은 비유야. 옛날 어른들은 ‘곡식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라고 했지. ‘쌀미(米)’라는 글자가 八+十+八 이 합쳐져서 만들어졌다고 하지. 쌀 한 톨이 있기까지 농부의 88번의 발걸음이 있었다는 거야. 아이들은 곡식이고 교사는 농부일세. 자네가 말한 환대와 사랑을 가진 교육 농부들의 발걸음이 우리 아이들을 믿음 안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지.

I: 그런데 왜 우리 교육 현장에서 열매들이 잘 안 보일까요?
P: 좋은 질문일세. 가정신앙교육이나 교회 교육의 목적이 결국은 ‘변화’아닌가?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구원받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제자로 헌신하고, 목적 없이 살던 인생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하는 것 아닌가?

I: 가정이나 교회에서 신앙교육은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P: 맞네. 그런데 오늘날 교육 현장을 보세. 먼저 학교 교실을 보면 21세기 학생을 20세기 교사가 19세기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네. 그래서 공부하고, 외우고, 시험 보고, 잊어버리지. 앨빈 토플러가 2006년 한국에 왔을 때 한국 학생들이 미래에 있지도 않을 지식을 위해 하루에 15시간 이상씩 공부하고 있다고 꼬집은 적이 있지. 그래서 학교는 입시기관으로, 대학은 취업 기관으로 전락했다네. 그런데 문제는 교회 교육이나 가정신앙교육이 학교 교육을 닮아서 사랑하고 묵상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요소들이 빠졌다네. 게다가 교회 교육은 한 주일 168시간 중 겨우 한 시간밖에 제공하지 않잖나.

I: 어떤 점들이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P: 어른들은 학교 교사처럼 성경이라는 지식을 아이들 머리에 그냥 집어넣으면 된다고 생각해. 그래서 열심히 가르치지. 그런데 성경은 집어넣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세 단계를 더 거쳐서 되새김질이 필요하다네.

I: 세 단계가 무엇입니까?
P: 자네는 뭐라고 생각하나?

I: 묵상과 적용은 알겠는데, 하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P: 맞네. 그 사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네. 그것은 하나님일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 마음이 어떤지를 알아보지 않으면 여전히 나 중심적인 적용으로 빠지고, 진정한 지혜를 배우기 어려워. 어이쿠 벌써 한 시간이 훌쩍 넘었군. 아무래도 오늘 여기서 멈춰야 할 것 같네.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줄 수 있겠나?

I: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의 확신과 열정 있는 교사라는 것과 저는 ‘환대를 마음으로 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교육은 농사짓는 것이고 특히 농부의 88번의 발걸음이 생각납니다. 또 신앙교육은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지식을 넣어 주기보다, 생각하게 하고, 그 가운데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며 적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P: 역시 정리의 달인일세. 본래 귀(ear)가 열리면 듣기(hear)가 되고 잘 들으면 마음(heart)이 열리는 법이지. 믿음이 들음에서 나는 것처럼 말일세. 오늘 수고 많았네. 다음 주는 ‘소통’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하네. 다음 주에 자네가 생각하는 소통이 무엇이고, 왜 오늘날 가정과 교회에서 소통이 필요한지와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 할 수 있는지 생각해오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