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지팡이로 세상을 더듬어가면서도”

“그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됐을까?”
“조금만 도와줬다면 얼마나 수월했을까?”
“조금만 협력해 줬다면 그때 내가 그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국경선도, 38선도,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없는
제4세계인 ‘장애인의 세계’에 살던 시각장애인이
험악하게 걸어왔던 지나온 세월을 더듬어보며

세상을 향해,
사람을 향해,
우리를 향해,
바로, 나를 향해 하는 말입니다.

코로나와 함께 2021년을 훌쩍 보내고
또 코로나와 함께 시작해야 하는
2022년을 새로이 맞이하며
새해 첫 번째 읽을 책으로 손에 쥔 것은

세계밀알 장애인 선교단체 총재이자
현 총신대학교 총장인 시각장애인 이재서 목사의
<내게 남은 1%의 가치>라는 책입니다.

“엄마, 아빠랑 휴가 다녀오셔요. 거기 아주 좋아요.
엄마아빠가 꼭 그곳에 함께 다녀오셨으면 좋겠어요.”

텐트와 에어 침대, 부르스타와 아이스박스 하나 싣고
캠핑을 다녀온 딸아이가 자꾸 밀어냅니다.

휴가는커녕 바닷가도 나가지 않는 엄마아빠가
답답해 보인 건지 불쌍해 보인 건지…

“그래? 네가 좋다고 하니까 한번 가볼까!?”

빈말처럼 했던 말이 바로 다음날 아침,
딸아이 차에 있던 캠핑 도구 그대로 옮겨 싣고
4시간 25분을 달려 뉴플리머스 근처
타라나키 산이 바라다 보이는 캠핑장에 텐트를 쳤습니다.
내 생애 두 번째 캠핑입니다.

첫 번째 캠핑에서는 텐트에서 못 자고 차에서
쪼그리고 잤던 터라 한밤중이라도 집에 가자 하면
짐을 싸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까 하여
최소한의 짐만 푸는 남편을 독촉해서
한 오백 년 살 모양새로 가져간 많지 않은 짐들을
다 풀어 헤쳐놓습니다

“오늘 내가 여긴 온 것은 내가 쉬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내 오른손을 좀 쉬게 하려고 온 거니까 이제부터 밥이랑 설거지는 당신이 다해야 해요. 난 손이 아파 못해~!”
엄살이 아니라 두서너 달 전부터 오른손목 인대가 늘어나 손을 잘 못 쓰고 있던 터라 손이 좀 쉬긴 해야 했습니다.

침을 맞으면 금방 낫는다고 하는데 침을 맞자니 무섭고,
병원 가자니 주사가 겁나고…
그냥저냥 손을 잘 달래가며 조심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4박 5일 동안 해다 주는 밥먹고 아무것도 안 하면
손이 확! 나을 거 같은 확신이 서요!”

남편에게 다 떠밀어 놓고 들고 간 책들을
나무 그늘에서, 텐트에서, 비치 의자에서,
시원한 곳이면 어디에서든 펼쳐듭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내게 남은 1%의 가치> 책은
많은 도전과 용기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캄캄한 암흑 속에서도 해처럼 밝게
전 생애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절망과 좌절 가운데서도 사람이 아닌
하나님 은혜로 이기고 견디어 온 삶을
생생하게 나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하얀 지팡이로 세상을 더듬어가면서도 곧게 걷는 그는
오늘, 두 눈을 부릅뜨고 살아가고 있는 나를 향해
조심해서 가라고,
넘어지지 말고 가라고,
똑바로 곧게 걸어가라고…

“누군가가 조금만 도와줬다면…
누군가가 조금만 협력해 줬다면…”

그 외침을 외면하지 말라고…
그 손길을 뿌리치지 말라고…

이리치고 저리치어 깨지고 터진 하얀 지팡이의 아픔을
새해를 살아가는 나에게,
아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간절하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앞이 안 보이는 캄캄한 세상이라고 합니다.
온통 눈뜬 장님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온통 눈뜬 장님만 있는 것 같은 세상에서
눈뜬 장님이 아니라 아름답게 뜬 눈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며,
똑바로 곧게 걸어가는
새해 나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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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애
크리스천라이프 대표,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사모, 협동 목사. 라이프에세이를 통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잔잔한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 와 '은밀히 거래된 나의 인생 그 길을 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