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부르심을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1년 동안 예배학교에서 공부 후 사우스웨스턴 신학교에 기독교 교육으로 입학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우스웨스턴 신학교가 기독교 교육으로 얼마나 대단한 학교인지 몰랐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까 미국 최대의 신학교이자 그 중에서도 기독교 교육으로 정평이 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 안에는 한인 학생들 중심으로 기독교 교육 모임과 기독교 학교 교육 모임이 있었다.
기독교 교육 과목은 많은 신학교에 전공으로 있지만, 기독교 학교 교육 전공을 보유한 신학교는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기독교 학교 교육 박사 과정까지 개설하여 교육하는 학교였으니 이 분야에서는 앞서가는 학교임에 틀림없었다. 그 정도로 학교는 기독교 교육에 진심이었다.
‘기독교 교육’ 하면 일반적으로 교육 전도사, 교육 목사, 교회 학교 등을 떠올리곤 한다. 소위 주일학교(Sunday School)를 생각한다. 그래서 갖게 되는 선입견과 전제가 있다. 주일에만 교육을 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교육, 교회 교육은 주일 하루만을 염두해서 교육을 기획하지 않는다. 또한 기독교 교육은 주일학교 아이들만 대상으로 하는 학문도 아니다.
보통은 교회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주일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첫 부서인 유아부 혹은 유아유치부를 다니고, 나이가 되면 상급 부서로 이동하게 된다. 그렇게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를 졸업하면 청년부에 올라가게 되고, 청년부에서는 특별한 졸업식이 없이 결혼과 동시에 장년부로 이동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주일학교 교육의 기간은 보통 고등부까지 혹은 청년부까지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 교육은 태어나면서부터 자라나 청년이 되고 결혼하여 장년과 노년이 되고 결국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길 때까지, 전 인생을 대상으로 한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중요한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교회와 교회학교가 어느 연령대까지를 대상으로 하여 교회학교 커리큘럼을 만들어 두었는가 하는 것이다.
교육 과정이 없는 기간은 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실제로 교육이 이뤄지지도 않을 것이다. 필자가 기독교 교육을 접하고 나서 받은 첫 번째 충격은 바로 이것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사역했던 지난 9년여 시간 동안 한 번도 이같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교육 부서하면 항상 장년부를 빼고 생각했고, 청년부도 어른 부서에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 정도만 고민했고, 만약 청년부를 장년부에 편입시킨다면, 그것은 곧 장년부 사역에 동원할 구실을 마련하는 개념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 정도가 필자가 당시 이해한 교육부서와 기독교 교육 개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기독교 교육은 전 세대를 대상으로 해야 하고, 전 세대의 기간 동안을 염두에 두고 기획해야 하는 것이었다.
성경은 전 세대를 대상으로 말씀하고 있으며, 말씀을 듣고 지키고 가르치고 전수하는 기간도 우리 전 생애를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역하는 당사자인 목회자와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교회는 고등부 졸업식과 동시에 마치 교육이 끝난 듯하게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와 사역이 어떠한 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교육 전도사, 교육 목사하면 어떤 사역자들이 생각 나는가? 아마도 교육 전도사하면 아직 신학 공부하는 신학도를 생각하고, 교육 목사하면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그 교육과 사역의 대상이 주일학교 아이들에 한정하여 이해할 때 사용하는 용어일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모든 목회자는 모두가 교육 목회자이다(에베소서4:11, 목사 곧 교사).
즉, 전 세대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하며 지킬 때까지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은 담임목회자가 기독교 교육에 총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학교를 유아부에서부터 고등부 혹은 청년부까지로만 생각하거나, 그 일들을 사역의 연차가 상대적으로 적은 파트 타임 사역자, 전도사에게만 맡겨 두면 안 될 것이다.
교회 교육의 총괄 책임자는 이름과 직함으로서만 교회학교 교장인 담임목회자가 아니라, 진심과 진정으로 기독교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실제적인 지원과 자기주도적 사역을 이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에 다시 다루게 될 것이다.
또한 이같은 고민은 교회 차원에서만 이뤄지면 안된다. 그동안 기독교 교육에서 소외되었던 대상인 장년 성도들 차원에서도 새롭게 고민해 봐야 한다. 즉 결혼한 장년부에서도 스스로를 바라볼 때 자신들이 여전히 기독교 교육의 대상임을 인지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 갈때까지 계속하여 배우고 지키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 할 존재로서 자기를 인식해야 한다.
행여나 자신을 기독교 교육 대상으로 보지 못하여, 그런 교육들은 애들이나 주일학교에서 받아야 하는 것 정도로 치부하면 안 될 것이다.
사실 기독교 교육의 주안점은 기간적으로 볼 때 성인이 된 이후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장년들에게 포커스 되어야 한다. 물론 교육 시기적 측면으로 본다면 교육의 황금기인 유초등부, 청소년부 시절에 집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간적 측면으로 볼 때는 비교도 안 되는 오랜 시간을 20살, 30살 이후부터 7-80대까지 살아가게 되기에 기간적 중요성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나중에 더 살펴보겠지만 결국 신앙 교육의 주체가 부모라는 성경의 준엄한 명령과 전제 앞에서 장년으로 살아가는 시간은 교육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하기에 교회에서 그들을 향한 특별한 관심과 교육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뉴질랜드는 관광의 나라이면서 동시에 교육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이민 혹은 유학을 오는 나라이다. 필자도 와서 보니 아이들 키우기 좋은 나라인 것이 사실이었다. 떠나온 고국인 한국에서 누릴 수 없는 교육적 기회와 환경들을 갖추고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세상 모든 한인 공동체의 특성인 “일단 이민 오면 교회부터 가라”는 명제는 미국에서도, 여기 뉴질랜드에서도, 또한 동료 목회자들이 사역하고 살고 있는 여러 나라에서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그렇기에 한인 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가장 좋은 환경 속에 있다. 일단 교회로 와서 도움을 받을까 기웃거리는 모습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민 혹은 유학을 온 가정들의 부모와 아이들에게 교회는 기독교 복음과 기독교 교육을 전수할 기회와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리까지 한꺼번에 손에 쥐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사역할 때 영아부 교역자의 안타까운 외침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영아부는 탁아소가 아닙니다. 엄연한 기독교 교육 기관입니다.” 이 말은 다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 장년부는 교회 학교 감찰 기관이 아닙니다. 또한 기독교 교육 소비 기관도 아닙니다. 엄연한 기독교 교육 기관이며 교육의 주체이면서도 교육의 대상입니다.”
앞으로 연재할 글들을 통하여 기독교 교육에 대한 단상들을 나누려고 한다. 6대 독자로서, 3남매 홈스쿨 경험자로서, 기독교 교육으로 입학했다가 돌연 신학 석사로 전공을 변경하게 되고, 그러나 여전히 기독교 교육에 진심인 한 지역 교회 담임목회자로서 소소하고도 고민 어린 이야기들로 함께 지면을 통해 호흡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