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맛나

지금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직업을 잃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확진자의 증가는 생산과 공급의 차질을 가져와 생활에 불편을 주고 있다. 자유와 인권보다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고 있다.

교회에서 예배와 모임도 제한을 받는다. 기독교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급하게 찾아온 코로나 팬데믹은 위기 상황이 되었다. 인간의 오만과 교만으로 재난이 더욱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기후 변화와 전염병 가운데에서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은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우면 먹기 위해 사는지, 아니면 살기 위해 먹는지가 뒤섞여질 때가 있다. 그럼 나는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다. 삶에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땀을 흘리지 않고 거저먹으려는 사람도 있다.

쉽고 편하게 벌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남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돈을 착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돈을 버는 것만 생각하지 제대로 쓰는 것은 모른다. 자기를 위해 쓰는 돈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남을 위해 쓰는 것은 어리석다고 여긴다.

성경에는 자신을 지켜준 다윗에게 일용할 양식을 나누어 주기를 거절하고 죽은 나발이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매달려 있을 때 왼쪽의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죽는 순간까지“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했지만, 구원받지 못하고 죽었다.

사람은 죽는다고 하지만, 나는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시대이다. 죄로 인한 죽음 앞에 사람은 누구나 서게 된다. 도망가거나 피해 갈 수도 없다. 죄와 죽음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를 나의 구원자인 그리스도로 믿을 때 온전한 생명과 영생을 얻는다.

“이것이 무엇인가?”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에 이르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난생 처음으로 맛본 만나를 보고 한 말이다. 만나는 밤에 내린 이슬이 마른 후에 생기는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가늘다.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만나는 햇볕을 뜨겁게 쬐면 스러진다. 만나는 거저 먹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햇볕에 들기 전에 거두어야 하는 노동이 필요하다.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 만나를 거두는 수고를 해야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다.

광야의 만나는 많이 거둔 사람도 남음이 없고 작게 거둔 사람도 부족함이 없었다. 일용할 양식만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었다.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때 함께 나누고 누리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반드시 지나간다. 다만,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도태하게 될지 아니면 극복하여 새로운 기독교의 구원과 생명의 가치로 도래하는 계기가 될지 그리스도인의 행동하는 믿음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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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크리스천라이프발행인.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담임목사. 저서로는 '하나님의 아가', '예수님의 아가' 시집이 있으며 단편소설 '마른 강' 외 다수 와 공저로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