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를 지나며”

원천희선교사<바누아투 산토섬>

2007년 11월 말에 남태평양 바누아투 산토섬에 내렸다. 열정으로 시작한 부족 선교의 첫걸음은 열대지방의 고온 다습한 날씨로 인해 바로 벽에 부닥치고 말았다. 이렇게 시작한 선교는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의심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능력으로 2021년 11월, 14년이 지나고 있다.

2014년 첫 번째 안식년을 보내고, 지금은 두 번째 안식년으로 오클랜드에 머물고 있다. 안식년에는 뉴질랜드, 호주, 한국, 미국 등을 방문하여 후원자들과 교회들을 방문하며 바쁘게 지낼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오히려 쉼을 가지며 하나님의 다른 계획을 보게 된다.

산속 부족을 방문하기 위해서 산을 계속해서 올라갔다. 동서남북으로 거의 모든 산, 계곡, 강을 넘으면서 100개가 넘는 부족 마을을 땀 흘리며 찾아 다녔다.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동역자들과 힘들게 올라갔지만 쫓겨나기도, 거절당하기도, 협박받기도, 주술에 걸리기도, 태풍으로 홍수 난 강물에 쓸려가기도, 말라리아를 포함한 온갖 질병들에 걸렸고, 다리에서 빼낸 피고름들… 선교하면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한 join with me in suffering, 복음과 고난은 하나라는 말씀이 정말 마음에 다가왔다.

선교지에 도착했을 때 사역만 하면 시간이 문제이지, 다 될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말았다. 사역과 일 중심이었던 내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선교가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선교를 하기 원하셨다. 이를 위해 나에게 죄를 보여주시면서 자백하게 하셨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선교지가 광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고, 성령 충만할수록 내가 서 있는 곳이, 산토섬의 깊은 정글 숲에서도 내가 광야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다윗은 요나단과 눈물 흘리며 헤어지고, 그의 생명을 지키는 칼도 없이 광야로 도망쳐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얼마 동안,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집에서 막내, 양치기 십 대 소년으로 있다가 골리앗을 죽이고 사울보다 유명한 사람이 되었지만 젊은 다윗은 모든 것을, 가족조차도, 꿈, 희망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가기 싫어하는 버려진 땅, 마실 물과 먹을 것이 없는 곳,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으로 다윗을 내밀었고, 다윗은 이유를 몰랐지만 순종하며 나아갔다.

그곳 광야에서 다윗은 무엇을 가장 많이 했을까? 말씀에 보면 그것은 예배였다. 그래서 다윗은 광야에서 새로워졌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고, 없었던 리더십도 개발되었다. 그는 소년에서 남자로, 그리고 광야에서 장군이 되어 있었다.

광야, 그곳은 다윗을 새롭게 한 기회와 생명의 땅이었다. 하나님을 만나 경험한 곳이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누가 예상하고 예측했을까? 주변과 세상을 둘러보면 마치 광야 같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들을 많이 들었다. “작년 한 해가 통째로 날아갔어요”, “한 해를 낭비했네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집에만 있었어요”, “계획한 것을 하나도 못했어요” 등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하실 것 같은데, 이 코로나는 해결하지 못하실 것 같은 표현을 많이 들었다. 정말 그것이 맞는 생각일까? 다윗이 광야로 쫓겨 나갔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년 3월에 비자를 받기 위해 잠시 나와 있는 사이에 코로나로 국경이 닫히게 되었고, 4월에는 산토 섬 역사상 가장 큰 태풍이 불어 선교 시설을 포함하여 섬 전체가 전에 본 적이 없는 큰 피해를 입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이때 일어나고 있나요?

작년에 선교지를 떠난 해외 선교사들 중에 바누아투로 다시 돌아간 선교사가 아직 없는 것 같다. 1-2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선교사들의 사역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나도 그 중의 한 선교사이다.

정말 부족 선교가 이렇게 끝이 나야 하나? 선교가 10년이 지나가면서 바누아투 선교사들의 리더십을 세우며, 그들로 하여금 선교를 진행될 수 있도록 몇 년간 계획을 세워놓았다. 그런데, 이번 태풍과 코로나로 인해서 이 계획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앞당겨진 것을 보게 되었다.

선교, 재정, 계획, 운영 등 몇 가지 부분에 있어서는 나만 할 수 있다고 교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현지 선교사들이 이 사역을 하기에는 경험, 능력, 지혜가 부족하다는 나만의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들어가지 못한 상황에서도 태풍 피해 지역을 복구해야 했고, 부족 선교는 진행돼야만 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선택의 여지없이 기도하며 내 생각을 내려놓고 선교사들을 믿고 재정을 보내고, 그들로 하여금 선교 계획을 세우고 운영을 하도록 부탁하였다. 이로 인해서 바누아투 선교사들의 리더십 개발이 3-4년 정도 앞당겨지게 되었다.

지금 잠깐 생각을 해 보아도 내가 바누아투에 있었으면 선교사들의 리더십이 이렇게 개발될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하면서 혹시 내가 사역의 ‘거침돌’이 되지 않았나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게 너무 집중된 리더십, 재정, 결정권, 운영, 그리고 나를 의지했던 선교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바누아투 선교사들은 광야같이 어려운 때에 더욱더 기도하게 되었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더 찾게 되었다.

또 하나 배운 것은 태풍과 코로나로 인해서 14년간 진행해온 부족 선교가 모든 부분에서 검증받고 테스트를 받는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선교사님이 없는데 괜찮을까요?” 처음에는 나도 자신 있게 답을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교사 한 명 없다고 선교를 멈추시는 분이 아니심을 가르치셨다. 위기 속에서도 성령은 뜨겁게 역사하시며 하나님의 선교는 계속된다. 코로나가 마치고 선교가 다시 시작되면 부족 선교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옛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성령의 바람을 기대한다.

안식년을 보내면서 위로받은 찬양이 하나 있다. 가사가 광야 같은 선교지와 세상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히즈 윌의 <광야를 지나며>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내 자아가 산산이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