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듣는 교향곡

금년 1월 이곳 뉴질랜드의 여름은 제법 덥습니다. 한국처럼 찌는 무더위는 아니지만 맑고 투명한 대기를 뚫고 내리쬐는 햇살이 무척이나 따가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더울 때에는 바닷가에 가든지 아니면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시원한 수박이나 먹으면서 더위를 피하지 무슨 교향곡이냐고 반문하실 분들이 계실 겁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여름 저녁은 그렇게 덥지 않습니다. 으쓱하니 바다 너머로 해가 지고 나면 쾌적한 저녁이 시작됩니다.

이럴 때 식구들이 거실에 모여 편안한 자세로 들으면 수박보다 더 상큼하게 한낮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줄 교향곡이 있습니다. 바로 드보르자크의 8번 교향곡입니다.

곡이 시작하면 곧장 보헤미아의 시골 흙냄새가 물큰물큰 풍기는 목가적이면서 아름다운 선율이 어우러져 한가로운 시골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드디어 마지막 4악장에 이르러 트럼펫이 행진곡처럼 쭉쭉 뻗어 나가다 폭포처럼 시원하게 끝을 내면 여러분의 심신은 이미 상쾌하게 회복되어 있을 것입니다.

드보르자크의 8번 교향곡
보헤미아(지금의 체코 공화국의 세 지방 중 하나) 출신의 작곡가 드보르자크(Dvorak,Antonin, 1841~1904)는 모두 9개의 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이 9개의 교향곡은 체코의 교향곡의 지위를 높였을 뿐더러 19세기 국민주의적 교향곡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이 중 제일 유명한 곡은 물론 지난 호에 소개해 드렸던 9번 교향곡 ‘신세계로부터’입니다. 9번에 이어 널리 알려지고 또 사랑받는 곡이 8번 교향곡입니다.

이 곡은 9번 못지않게 뛰어난 작품이며 또한 작곡가의 민족적이며 정서적인 면모가 온전히 드러난 작품입니다.

신세계(新世界) 미국에 머물면서 9번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한 드보르자크는 신세계로 떠나기 3년 전 1884년에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했습니다. 런던에서 오라토리오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를 연주하여 성공을 거둔 그는 그 뒤 계속해서 퍼져 나갔습니다.

나이 40대 중반이 되자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되자 그는 프라하 서남쪽 고원지대에 위치한 비소카(Vysoka)라는 산골에 작은 별장을 마련했습니다.

여름이면 이곳에 머물면서 드보르자크는 이 지역의 자연과 보헤미안적인 아름다움에 심취했습니다. 영국으로부터 위촉 받은 교향곡을 이곳에서 완성했는데 그 곡이 교향곡 8번입니다.

‘체코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단순한 서정시’
“이 곡은 다른 교향곡들과는 좀 다를 것입니다. 각각의 아이디어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작곡되었습니다,”라고 드보르자크가 말했듯이 교향곡 8번은 그때까지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작품으로 보헤미아의 색채가 강합니다.

고향의 풍경과 소리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했기에 드보르자크는 작품을 구상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이 교향곡을 완성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작곡했기에 드보르자크는 기악적으로 복잡한 부분은 피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곡은 ‘교향시 혹은 랩소디’에 가까우며 형식보다 내용으로 인해 ‘체코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단순한 서정시’라는 평을 듣습니다.

이 곡은 프라하에서 1890년 2월 2일에 드보르자크의 지휘로 성공리에 초연이 이루어졌고 같은 해 4월 런던에서 연주되어 호평을 받은 이 곡은 6월에는 영국 케임브리지에서도 연주되었습니다.

이 곡은 영국이 사랑하는 교향곡이 되었고 케임브리지대학은 드보르자크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습니다. 이 곡이 영국에서 출판되었기에 한때는 ‘영국 교향곡’이라고 불린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곡의 구성과 내용
모두 4악장으로 되어있습니다.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
첼로, 클라리넷, 바순, 혼이 아름다운 멜로디로 곡을 시작합니다. 보헤미아의 우수가 흐르는 주제 선율입니다. 이어서 비올라와 첼로로 연주되는 시원한 리듬으로 바뀝니다.

2악장 아다지오
숲 속의 시원함과 한적한 시골을 연상케 하는 현의 부드러운 선율과 새처럼 노래하는 플루트와 오보에의 연주를 들으면 런던 타임스가 이 곡에 ‘전원 교향곡’이라는 별명을 붙인 이유가 수긍이 갑니다.

3악장 알레그레토 그라치오소
처음에 나오는 바이올린 연주가 우선 우리의 마음을 빼앗습니다. 우수와 동경을 아울러 머금은 보헤미아의 민속 선율과 왈츠 리듬이 아주 인상적인 악장입니다.

4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씩씩하고 시원한 행진곡풍으로 시작하는 트럼펫의 팡파르를 들으면 흥이 날 뿐더러 여름의 더위가 싹 가시는 느낌입니다. 이 교향곡을 여름에 들으면 좋다고 한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이어서 첼로가 나오고 현악기가 합세하여 변주에 변주가 꼬리를 물다가 마지막에 쏟아져 내리는 계곡물처럼 끝을 맺습니다.

바츨라프 노이만(Vaclav Neumann)이 지휘하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화요음악회에서는 노이만이 지휘한 체코 관현악단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체코의 지휘자인 노이만은 누구보다 조국 체코를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지휘한 이 연주에서는 보헤미아 냄새와 작곡가의 나라 사랑이 잘 묻어 나왔습니다.

정이정(淨耳亭)의 창밖에 달이 뜨고
곡이 끝났을 때 음악 감상실 정이정의 창밖엔 여름 밤의 어둠이 내려앉았고 하늘엔 초승달이 떠 있었습니다. 문득 그 옛날 고국 한국에서의 여름 저녁이 생각났습니다.

무더운 한낮이 지나 저녁때가 되면 식구가 모여 저녁을 먹고 대청마루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어린 시절이 흑백 영화의 장면처럼 떠오릅니다. 벌써 오래전 돌아가신 그리운 부모님 얼굴도…… 이럴 때 추억의 뒤안길을 좇아 살그머니 다가오는 시(詩)가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여름 밤’입니다.

들깻잎에 초승달을 싸서 어머님께 드린다
어머니는 맛있다고 자꾸 잡수신다
내일 밤엔 상추잎에 별을 싸서 드려야지

시원한 바람이 한여름 더위를 씻어주는 여름 밤 식구들이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울 때 이웃집 지붕 너머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을 보고 시인은 문득 달을 들깻잎에 싸 어머님께 드릴 생각을 합니다. 이 시(詩)가 묘사하는 정겨운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우리는 모두 두고 온 고국과 지난날을 향한 향수를 느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벌써 2022년 1월이 반도 더 지나갔지만 음(音)으로 표현한 서정시와 같은 8번 교향곡과 ‘여름 밤’의 시를 읽으면서 남국의 더운 여름을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이날 본 하나님 말씀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고린도후서 5:1-2)

뉴질랜드에 있든 한국에 있든 이 땅에 있는 처소는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아닙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습니다. 드보르자크가 평생 고국 보헤미아를 향한 향수를 갖고 살았듯이 우리는 항상 하늘에 있는 집을 사모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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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