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예배 공동체

송성한 목사<웰링턴 주은혜교회>

한국 통계청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의 비율은 2000년 15.5%에서 2020년 31.7%로 16.2%p 증가했다. 3가구 중 1가구는 나 홀로 사는 1인 가구이다. 이에 따라 각종 미디어는 1인 가족을 조명한다. ‘나혼자산다’라는 프로그램이 히트를 쳤다. 점차 늘어나는 1인 가구에 대한 선교적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적 가르침에서 교회라는 공동체의 기원을 가정에 두고 있다. 교회는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룰지니”라는 의미를 통해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우리의 연합에 기초한다.

본 글에서는 구약 출애굽기의 여정 속에서 나타난 교회의 그림자를 소개한다. 교회의 시작을 가정의 연합으로 그려낸 모습과 그 가정 공동체의 사명은 곧 예배였음을 살펴본다. 이제 막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예비부부와 사랑하는 가정들에게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교회의 시작은 곧 가정의 연합으로부터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전개를 살펴보자. 약 430년간 종으로 살아온 이스라엘은 부름 받은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다. 출애굽 여정은 심란하다. 홍해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광야에서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출애굽기 14장),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며(출애굽기 16장),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출애굽기 17장) 하셨다.

출애굽기를 읽은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이렇게 설교한다.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린도전서 10장 2절~4절).

바울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성례전(세례와 성찬)으로 설명한다. 그 후, 등장한 출애굽기 18장의 이야기는 글의 전개상 전혀 다른 이야기 같다. 출애굽기 18장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출애굽기 4장) 하나님의 산(시내산)에 진치고 있는 모세에게 찾아온다,

이드로는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게르솜, 엘리에셀)과 함께 온다. 모세의 가족이 연합되는 순간이다.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에 모세의 가족 공동체는 연합되었을까?

시간적 흐름 속에서 구약의 출애굽과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천, 성령강림 역사의 시간을 비교해보자. 출애굽은 10번째 재앙(장자의 죽음)이 임하는 그날부터 시작한다. 출애굽기 12장의 명령대로 그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달의 시작이다.

첫 달 열나흗날(1월 14일)에 유월절은 시작되었다. 유월절에 이동하기 시작해 하나님의 산(시내산)에 도착한 날은 삼월 초하루(3월 1일) 되던 날(출애굽기 19장)이다. 대략 47일이 소요되었다. 그날 모세의 가족은 연합되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그날이 유월절이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이후 사십일 간 이 땅에서 친히 살아나심을 많은 제자들 앞에 보이시고 승천하셨다. 이후 몇 날이 못 되어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이 오순절에 임하였다. 이 역시 대략 50일이 지났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는 바로 교회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유월절이 지나고 약 50일이 지난 시점에 ‘교회’의 시작을 알리고 싶으셨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고, 우리는 그의 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랑이고 우리는 그의 정결한 신부이다. 신랑과 신부의 연합을 교회로 그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에게 그의 아내 십보라를 데려오는 그림(출애굽기 18장)은 신랑과 신부의 연합, 즉 교회를 완성하는 그림이다. 그렇게 이스라엘 공동체에 ‘교회 공동체’가 생긴 것이다.

가정의 사명은 곧 예배
모세는 이곳 시내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광야를 떠돌다 이드로의 집에 거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십보라를 만나 결혼을 하였다. 신혼부부였던 당시 모세는 여느 날과 같이 이드로의 양을 치고 있었다. 그러다 시내산에 기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떨기나무 가운데 불꽃 안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로부터 말씀이 임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애굽기 3장 12절).

모세의 사명은 백성을 인도하여 낸 후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라”이다. 여기 ‘섬긴다’라는 말은 ‘예배하다’이다. 모세에게 주신 약속은 출애굽기 18장에서 성취되었다. 그곳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성경 퍼즐이 완성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제 세례와 성찬에 참여한 선택받은 백성이다. 가정의 연합으로 교회 공동체가 시작되었다. 미디안 사람이었던 이드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다. 그저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의 신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드로는 들었다.

“이드로가 하나님이 모세에게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모든 일을 들으니라”(출애굽기 18장 1절). 믿음은 들음에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들었다. 이드로에게 믿음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이드로는 가정을 연합하게 한다. 모세에게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을 데리고 오는 일이다.

이후 가정의 연합을 본 이드로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드로가 이르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아래에서 건지셨도다”(출애굽기 18장 10절).

여기 “찬송하리로다”에 해당하는 단어는 ‘무릎을 꿇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하나님께 경배, 찬양 그리고 영광을 드렸다. 이것이 연합된 모세 가정의 첫 모습이다.

성경에서 보았듯, 가정은 교회의 기초이다. 그 기초가 단단히 서 있어야 교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 가정이란 곳은 ‘나’라는 삶의 현장이 드러나는 곳이다. 믿음 생활은 예수님을 닮아가고, 이 땅에서 사셨던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때문에 가족들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 삶의 현장인 가정이 신앙생활의 중심이어야 한다. 온전한 신앙은 결국 가정을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고, 신앙생활의 훈련도 가정에서 먼저 실천되어야 한다.

즐겁게 산다는 것은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지혜자가 말한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전도서 9장 9절).

이 지혜자는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과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라고 조언한다. “즐겁다”는 말은 단순한 ‘재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 그 이상이다.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 안에 있다. 때문에 가정에서 하나님을 높이며 살 때에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결혼은 알다시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이다. 어떤 이는 우스갯소리로 약속을 “약간씩 속이며 사는 것이라” 말한다. 가정은 하나님이 언약하시고 세우셨다. 그렇기에 부부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가정사역자인 월터 트로비쉬(Walter Trobish)는 그의 글 「나는 너와 결혼하였다」라는 책에서 가정을 가장 안정적인 도형인 삼각형으로 비유했다. 꼭짓점이 하나님이고, 나머지 두 점을 각각 남편과 아내로 표현한다.

이 도형에 따르면 “남편과 아내가 점차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꼭짓점이신 하나님이 높아져야만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가정에서 부부가 하나님을 높이면 높일수록 부부는 점점 가까워지며, 건강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가정에서 예배의 훈련이 되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가정으로 살아간다면 능히 하나님이 태초부터 계획하신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다. 교회가 예배 공동체이기에, 작은 교회인 가정도 당연히 예배드리는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