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의 관계

우리의 인생살이와 신앙생활에 있어서 관계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도 당신의 백성들을 연단하시고 성숙시키신다.

파푸아뉴기니는 멜라네시안 문화이기에 우리나라 사람들과 성향이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아주 비슷했다.

특히 부족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므로 자기들이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잘 열고 친절하게 대한다. 그렇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어느 특정한 부족에 들어갈 경우에는 잘 받아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경계를 한다. 그러므로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 지혜가 필요하다.

부족 사람들과 관계 맺기
우리가 처음 도우라 부족에 들어갈 때도 우리는 그 부족으로 쉽게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파푸아뉴기니에서 30년 가까이 선교를 하고 있었고 성경번역 선교회의 그 지역 리더로 사역하였던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은 그 지역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와 함께 도우라 부족으로 들어갈 때는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먼저 그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는 부족의 사람을 통해서 도우라 부족의 추장과 연락을 했다. 그가 추장을 데리고 직접 도시로 나와서 우리를 만났고 그 추장은 우리를 데리고 마을로 들어갔다. 아주 절차가 복잡했다.

나와 아내는 추장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다른 마을로 들어가 또 며칠을 보낸 후, 그 부족의 가장 표준어를 사용한다고 볼 수 있는 마을로 다시 갔다. 거기서도 역시 그 마을 지도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의 집에서 며칠을 보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옮겨 다닐 때도 항상 추장과 함께 다니면서 우리의 방문에 대해 소개하고 알렸다. 그런 후에 비로소 도우라 부족 사람들은 우리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것이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시기 전에 오랫동안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알리셨고 수시로 나타나셔서 당신을 계시해 주셨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 땅에 오시기 직전에는 세례 요한을 보내셔서 미리 알리셨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치신 것은 바로 우리를 배려하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깊은 감사가 나왔다.

신뢰 관계
나중에 우리의 존재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할 때쯤, 우리는 각 마을을 방문하여 기독교 영화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도우라 부족에 온 이유를 말하고 각 마을 사람들과 사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장례식이 있으면 비록 내가 거주하는 마을이 아니더라도 방문해서 함께 있어 주기도 했다.

그 후로는 우리가 탄 자동차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항상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반겨 주었다. 우리도 역시 그들을 향해서 소리 지르면서 인사를 하곤 했다. 그리고 도시로 나오는 길에 경찰들이 우리를 검문할 때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그들은 선교사들이야~! 보내줘~” 하면서 경찰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할 때는 매일 마을의 집들을 방문하여 교제하고 노래를 하면서 그들에게서 도우라 부족의 말을 배웠다. 그들은 기타의 키도 모르고 악보도 볼 줄 모르지만 기타를 아주 잘 치고 어떤 사람들은 직접 작곡 작사를 해서 아주 훌륭한 노래도 만들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 밭으로 따라가서 함께 타로와 고구마도 심고 바나나 밭을 정리하는 일도 하면서 그들의 삶을 함께 체험하며 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내가 어릴 때 농촌에서 자라서 농사일에 대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어떤 사람은 농담으로 나에게 성경번역 하지 말고 자기들과 함께 농사짓자고 말을 하기도 했다.

방학을 이용하여 우리 아이들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을 배에 태우고 강 하구까지 가서 물고기와 자라, 그리고 새우를 잡아 주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종종 밤에 사냥을 나갈 때가 있는데 그때도 따라가려고 몇 번이나 함께 가자고 부탁을 했지만 불러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밤중에 가야 하고 위험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아픈 사람이 있으면 자주 가서 기도도 해 주고 말벗도 되어 주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성경번역 선교사로 갔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말과 삶을 배우고 함께 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이었다. 이런 관계들을 형성해 가면서 그들은 나에게 진실로 의미 있는 사람들이 되었고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의 언어
무엇보다 그들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었다. 비록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자기들 말로 대화를 하면 아주 좋아했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국어를 배워서 말하는 것이 처음이었던 터라 다른 부족 사람들과 있을 때 내가 어눌한 도우라 부족 말을 하고 있어도 나를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다른 부족 사람들도 나를 아주 신기하게 여기면서 외부인이 도우라 부족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부러워하기도 했다.

우리가 사역하는 도우라 부족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약 2,000명 정도가 되었는데, 주위 부족들에 비해서 그리 큰 부족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늘 열등감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부족 사람들은 도우라 부족이 그 옆의 큰 부족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이웃 부족 사람들과 말이 약간 비슷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늘 격려해 주었다. 그들 부족의 말은 옆의 큰 부족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언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사람이 만든 말(그 나라의 공용어인 톡피진어는 사람이 만든 무역어이다)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해 주면서 그들의 자존감을 심어주려고 노력을 했다.

관계의 위기
그런 가운데 관계에 있어서 약간의 위기도 있었다. 우리 집을 지어주는 일이 너무 오래 걸려서 우리가 텐트에서 생활을 해야 했는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 중에 다른 마을에 빈집이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우리 집을 짓는 동안 우리가 있던 마을에서 떠나 얼마간 다른 마을의 집에 머물기로 했었다.

나는 그 뜻을 우리 마을의 지도자에게 전달했고 그 집 주인에게도 허락을 받았다. 그런데 서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의도치 않게 우리 때문에 그들 서로의 감정이 상했다. 자초지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너희들 왜 다른 마을로 갔어?” 하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 후로 다시 우리가 원래 있던 마을을 방문했을 때에는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사람들은 우리의 진심을 알고는 다시 관계가 회복되었고 우리 집을 짓는 속도가 조금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우라 부족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주셨고 그들을 품는 훈련을 하게 해 주셨다.

그리고 나중에 아내의 병으로 더 이상 사역을 할 수 없어 철수하기 위해서 도우라 부족을 다시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올 때는 모두가 너무나도 아쉬워하였고 눈물을 그치지 못하기도 했다.

관계를 통한 성숙
지난 호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하나님은 선교사를 통해서 선교지에서의 사역을 하시기도 하지만 선교사를 성숙시키는 도구로 현지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가 관계를 통해서 참 많이 성숙해지는 것 같다. 믿음의 형제자매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리고 선교지에서 현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성숙시키신다. 선교지에서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또는 내가 잘하거나 잘못하거나 상관없이 항상 관계를 통해서 우리를 더 다듬으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도록 하시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신다.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파푸아뉴기니의 초목은 빨리빨리 자라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에 비해서 그리 빨리 성숙하지 않아 조급한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예수님을 아는 만큼 그분을 더 닮아갈 수 있음을 믿으면서 우리의 성품이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 가기를 소망한다.

이전 기사더 많이 놀게 하고 더 많이 안아주라
다음 기사<나의 멜로디> 노래 이야기
황보 현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2007년도에 뉴질랜드로 건너와서 한우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다. 선교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고 한국의 고신(예장)교단(KPM) 및 성경번역 선교회(GBT) 소속 선교사로 파푸아 뉴기니에서 성경번역 사역을 하였다. 2020년 2월부터 해밀턴 주사랑교회에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