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되어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권리가 참 다양하다.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해 본다. 하나는 일반적인 권리이다. 의(衣:입는 것), 식(食:먹는 것), 주(住: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신자나 불신자나 공평하게 주셨기에 일반적이다. 다른 하나는 특별한 권리이다. 이것은 제한된 권리이다. 믿는 자에게만 주시는 특권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마태복음 6;33).

인간의 삶이 세월 따라 점점 편해진다. 삶의 질도 높아진다. 일반적인 권리(의, 식, 주)도 업그레이드된다. 그런데 그레이드가 낮아지는 권리가 있다. 바로 식(食)이다.

시인들은 식(食) 권리를 시로 이렇게 표현한다.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아아, 나는 가룟 유다가 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한다. 밥 한 그릇에 나를 팔지 않기 위하여(장석주의 시에서), 장 시인은 개 다리 소반 위에 밥 한 그릇을 받아 놓고 자신과의 담판 승부를 벌린다.

설 시인은 뜨신 밥 앞에서는 흉악한 도적도 몽둥이를 내려놓는다. 밥이라는 말만 들어도 뇌세포가 들썩인다. 밥을 능가하는 언어는 없다. 밥을 차려 주는 사람만큼 숭고한 성자도 없다. 저승길 떠나는 망자 입에는 물 적신 쌀 한 숟가락, 이승 저승 다 합해도 밥보다 힘센 것은 없다(설태수의 시에서).

저 유모차는 밥그릇이다. 기역 자로 꺾인 할멈의 허리가 미는 밥그릇에 삐뚤삐뚤 쌓인 종이박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출렁이는 생계 흔들리는 밥알이 흘러내릴까 느린 걸음은 조심스럽다(박복영의 시에서). 박 시인은 삶의 처절한 현장에서 구하는 밥을 애잔하게 표현한다.

밥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자양분이다. 밥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힘이다. 밥을 진정한 밥이 되게 한 많은 이들이 있다. 전통시장에서 수십 년 간을 힘겹게 번 모든 재산을 모 대학에다가 기증한 할머니도 있다. 수십 년 간 모아온 돈을 나라를 위하여 기부한 군인도 있다. 자연재해가 있을 때마다 현장을 찾아가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후원하는 할아버지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이다. 자신들이 기꺼이 밥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 밥그릇을 아예 다 내어놓겠다는 것이다. 배포도 엄청난 분들이다. 이분들을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밥이 되는 달란트를 가진 분들이다. 밥은 다른 뜻으로도 사용된다. 남에게 눌려 지내는 사람을 지칭할 때도 사용된다. 남에게 이용만을 당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밥이라고 한다. “내가 네 밥이냐?” “내가 제 밥이다” 이렇게도 사용된다.

김수환 추기경(2009년 2월 선종)이 생전에 남기신 귀한 말씀이 있다. “사랑은 내어 주는 것이다. 서로에게 밥이 되어 주라” 밥이 되는 것은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밥이 된다는 것은 진정한 사랑과 자기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밥은 자양분이고 힘이다. 좋은 식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렇게 좋은 밥이 임자를 잘못 만나면 설익은 밥이 된다. 무른 밥이 되기도 한다. 된 밥이 되기도 한다. 반은 밥이고 반은 죽이 되기도 한다. 밥도 죽도 아닐 때도 있다. 이럴 때의 맛은 내 맛도 네 맛도 아니다.

밥 고수가 되면 먹는 사람의 취향에 맞게 밥을 짓는다. 먹는 사람 취향에 맞게 지어 올리는 밥을 먹으면 왕후장상이 따로 없다. 잡곡도 적당히 섞고 흰쌀의 양도 조절하여 짓는 밥은 천하일품이다. 밥 한 숟가락에 곰삭은 김치를 얹어서 먹는 그 맛은 고향의 맛이다.

뉴질랜드는 주식(主食)이 빵이다. 이곳에도 하루 세끼 빵을 못 먹는 어린이(결식아)들이 많다고 한다. 복지 천국이라는 뉴질랜드도 실정이 이렇다. 뉴질랜드에서 세상을 향한 적당한 말은 “여러분은 빵이 되시오”이다.

금년 4월에 캄보디아 프놈펜시 보레이게일라에서 쌀 나눔 잔치를 했다. 마을 어귀에 쌀 포대가 수북이 쌓인다.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그날 벌어서 근근이 살아가는 어려운 사람들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몇 달 동안 수입이 없다. 당장에 밥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청소년 공부방 사역을 하는 ㅊ 선교사가 진두지휘한다. 마을 이장도 서포터스로 나선다. 청년들이 길게 줄지어 선 이들에게 쌀 한 자루씩을 건넨다. 쌀을 받아 들고 지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며칠간은 양식 걱정을 안 해도 된다. 한 끼라도 든든히 먹을 수 있다. 10불짜리 쌀 한 포가 그들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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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만
춘천교대와 단국대 사범대 졸업. 26년 간 교사. 예장(합동)에서 뉴질랜드 선교사로 파송 받아 밀알선교단 4-6대 단장으로 13년째 섬기며, 월드 사랑의선물나눔운동에서 정부의 보조와 지원이 닿지 않는 가정 및 작은 공동체에 후원의 손길 펴면서 지난해 1월부터 5메콩.어린이돕기로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후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