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톤 여행기 <1>

픽톤으로 가는 페리를 타려고 비행기 타고 웰링턴에 왔습니다. 웰링턴 기차역에서 페리 터미널까지 셔틀이 운행된다고 해서 기차역까지 왔습니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곧 출발하는 셔틀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자가 띵 하고 왔습니다. 2시 15분에 출발할 예정이었던 그 배가 안전상의 문제로 딜레이가 돼서 무려 세 시간이나 늦게 출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페리 터미널까지 가는 셔틀도 당연히 뒤로 미뤄졌어요. 캐리어를 끌고 돌아다니고 싶진 않고, 기차역에서 기다리느니 페리 선착장에서 바다를 보면서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어플 택시를 불러서 일단 페리 터미널로 갔습니다. 그래도 거기 앉아 기다리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아서요.

몇 년 전에 기차 타고 와서 여행한 적이 있어서 오늘은 그냥 페리 터미널에 가서 바다 구경을 실컷 하자하고 그리로 갔습니다. 다섯 시 삼십 분에 출발하겠다는 페리는 더 늦어져서 거의 여섯 시나 돼서 출발한 것 같아요. 3시간 삼십 분 걸리는 페리는, 픽톤에 도착할 때쯤 근사한 야경을 볼 수 있겠다 했더니 웰링턴 야경을 보고 출발하게 된 셈이지요.

터미널 의자에 앉아서 몇 시간 기다리는 건 몹시 지루한 일이었지만 그 터미널에 비치돼 있는 각종 지도와 액티비티에 관련된 책자들을 많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픽톤에 가기 전에 이미 그 도시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페리를 탑승하고 이제 배가 출발을 합니다. 페리는 정해진 좌석이 없어요. 앉고 싶은 자리에 가서 앉으면 됩니다. 그 안엔 무지 무지하게 넓어서 식당도 많고 카페도 있고 아이들 놀이터도 있고 영화관도 있습니다. 터미널 대합실에서 기다릴 때 사실 손님이 별로 없어서 이렇게 승객이 없어도 되나, 이 사람들만 페리를 타고 가나 했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페리는 차를 가지고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배 안에 주차할 수 있는 데크에 차를 세워두고 객실로 들어오는 승객들로 페리는 제법 북적입니다. 일정이 늦어져서 다들 피곤한 승객들은 근처에 있는 소파를 붙이고 이어서 다리를 뻗고, 눕기도 하고 벌써 잠을 자기도 합니다.

바다를 볼 요량으로 데크를 찾는데, 바다는 너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그저 암흑 속에 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늦은 시간이 아니라 저녁 시간일 뿐인데 배 안에선 아주 한밤중인 듯 합니다. 식당에 가서 저녁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나도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가며 앉아 봅니다. 그래도 식당 카페가 있는 장소가 제일 밝아서 거기서 책도 읽고 핸드폰도 갖고 놀며 시간을 보냅니다.

페리를 타기 전에, 비행기 타는 것처럼 캐리어는 받아 주기 때문에, 배 안에선 핸드백만 들고 다닐 수 있어서 어디든 쉽게 다닐 수 있습니다. 쿡 해협을 운행하는 페리 회사가 하나가 아니어서 다른 페리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탄 이 배는 남섬이나 북섬 종단, 또는 횡단하는 기차를 운행하는 회사에서 운행하는 페리입니다.

세 척의 페리가 하루에 세 번 움직이는데 세 척의 배가 조금씩 다 달라서 골라 타는 재미도 있습니다. 드디어 픽톤에 곧 도착한다는 선장의 안내방송이 나오자 자동차를 타고 여행하는 승객은 다 주차장 데크로 가고 객실은 다시 썰렁할 정도로 비워집니다. 천천히 하버에 들어가 배를 돌려 뒤로 정박하기 위해 한 바퀴를 돈 후에 정박합니다.

밤 9시 40분경에 도착하니 픽톤은 깜깜합니다. 묵기로 한 숙소는 핸드폰 지도에서 도보로 십오분 걸린다고 나옵니다. 길에는 사람도 없고 어두워서 겁이 나긴 했지만, 아주 조그만 마을이고, 페리에서 쏟아져 나온 많은 차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져 달리느라 길에는 차들은 많고, 자동차들이 내는 불빛으로 제법 환해집니다.

숙소에 올라가니까 현관에 불이 켜져 있더라고요. 페리가 연착이 되어 늦어지면서 통화를 한 그 숙소 주인이 불을 켜 놓은 거죠. 숙소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계단을 올라서면 보이는 그 픽톤 작은 마을 전망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숙소도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침실이 2개 딸린 작은 아파트 같은 그런 집이었는데 주방도 잘 정리되어있고 침실도 호텔처럼 다듬어져 있습니다. 주인이 미리 켜둔 히터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주 따뜻한 곳입니다.

기분 좋은 숙소에 들어오니 오늘 밤 쉬는 건 너무 행복합니다. 옷장 옷걸이에 점퍼를 걸고 화장실에 세면도구 내어놓으니 이제 3일은 내 집입니다. 냉장고에는 작은 우유도 하나 있고 welcome 쿠키도 있습니다. 인스탄트 커피랑 찬장엔 각종 양념과 누군가 놓고 간 쌀도 조금 있습니다. 가방에 챙겨 넣은 라면이랑 백설기 한 덩이도 있어 아무 걱정 없이 침대에 몸을 누입니다. 새벽에 집을 나와 하루종일 이동하느라 피곤해진 다리도 쉬고 눈도 쉽니다.

다음 날 아침, 날이 너무 좋았는데 이 집은 거실 창문에서도, 부엌 창문에서도 너무 멋진 마을이 보입니다. 어젯밤 야경과는 다른 분위기예요. 뷰가 너무 예뻐요. 사실 처음 그 집을 정할 때 바다 뷰가 있다고 해서 골랐는데, 바다 뷰도 물론 멀리 보이긴 하지만 그 산자락 밑에 야트막이 자리 잡은 마을은 너무너무 마음에 드는 장면입니다.

앉으면 산 능선이 가운데를 가로지른 하늘이 보이고, 일어서면 산자락에 오붓하게 자리 잡은 마을이 보입니다. 터미널에서 가져온 픽톤 지도를 펼쳐놓고 어느 루트로 트레킹을 할지, 어디에서 커피를 마시고 올지, 어디에서 시장을 볼지 작전을 세웁니다.

그리곤 가볍게 산책을 나섭니다. 길게는 왕복 3시간짜리 트레킹 코스도 있지만, 난 조금 짧고 바다가 잘 보이는 루트를 정해 하버쪽으로 나가봅니다. 집에서 내려가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서 골목을 싹 돌면 그 골목 끝에 바다가 보여요. 픽톤은 남섬 제일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로, 남섬 맨 아래쪽에 있는 웰링턴과 페리로 연결되어있는 곳입니다.

유럽인이 뉴질랜드를 발견해 상륙한 곳도, 그 훨씬 전에 마오리들이 이 땅을 발견하고 정착해 살기 시작한 곳도 이쪽 말보로 사운드입니다. 이름처럼 해안선이 굉장히 꼬불꼬불하게 되어있는데 깊숙이 바다가 들어와 닿은 곳에 배를 대고 있는 곳입니다.

배를 타고 요트를 타고 크루즈를 타는 하버가 있는 바다 마을이에요. 바다 가까이 가면 나란히 세워져 있는 수십 척의 요트를 볼 수 있어요. 코트행어 브릿지라고 부르는 다리가 있습니다.

타운에서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는 걸어서 산 쪽으로 건너가게 되는 다리인데요. 다리를 건널 때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세워진 많은 요트들과 또 바다를 항해하는 많은 종류의 배들, 그리고 햇살 부서지는 잔잔한 바다 모두 장관입니다. 광활한 바다라는 느낌보다는 좀 호수 같은 바다입니다.

양쪽 옆으로는 큰 산들이 있고 또 정면에는 작은 섬도 있어서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서 꼭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호수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바닷가를 끼고 걸으면서 산책하다 보면 그래도 그만큼 나갔다고 조금 넓은 바다가 보입니다. 하루에 3차례 움직이는 커다란 페리가 정박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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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소영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졸업, 은총교회 권사. 리테일 숍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으며. 마음에 품은 소원 잊지 않기와 여행이나 소소한 일상에서 작지만 반짝이는 걸 찾아 내 글로 쓰고 싶은 보통 사람, 아님 보통 아줌마로 이젠 할머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