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과의 사투
결혼 전 참 부러운 장면이 있었다. 바로 엄마들이 한낮에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유유자적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한창 사회생활을 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던 때라 그랬나 보다. 그런데 아이를 낳아보니 세상에! 결코 그것은 유유자적한 장면이 아니었다.
가장 힘든 것은 수면 부족이었다. 난 잠이 별로 없는 편이고 낮잠 같은 것은 거의 자본 적이 없다. 대학 졸업반 때는 방과 후 오후 네 시부터 열한 시까지 학원에서 매일 일했다. 집에 와 밤새 리포트를 쓰고 한숨도 자지 않은 채 다시 학교로 가 수업을 들었다.
그 상태로 또 학원을 가면 거의 제정신이 아닌 날도 많았다. 영어 듣기평가 문제가 나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며 꿈을 꾸기도 했다. 칠판 앞에서 졸은 적도 있다. 계산해보니 나는 하루에 네 시간이 아닌 이틀에 네다섯 시간씩 자는 삶을 살고 있었다.
복수 전공을 위해 학점을 더 듣다 보니 마지막 학기는 공부량도 많았다. 땅으로 꺼질 것 같은 몸을 일으켜 학교로 가던 날도 많았다.
그만큼 잠에 관한 한 자신이 있었다. ‘안 되면 잠 안 자고 하면 된다.’라는 깡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며 잠을 못 자는 삶에 완전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되었다. 네 시간씩 자고도 버텼는데 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수면시간을 내 맘대로 컨트롤하지 못한다는데 있었다.
짧은 시간이라도 내가 정한 시간에 잘 수 있는 것과 달리 아이가 원하는 시간에 무조건 일어나야 하는 패턴은 내게 차원이 다른 고통을 안겨 주었다.
은율이는 잠을 정말 자지 않으려는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호기심 많고 영재성이 있는 아이가 잠이 별로 없다는 것을 책에서 읽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안 이후로 더더욱 억지로 아이를 재울 수가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엄마들 중에 “어? 우리 애도 꼭 밤에 책 읽어달라고 하는데? 밤에 꼭 덜 놀았다고 하는데?”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내 친구도 아이에게 “너 자기 싫어서 책 읽어달라는 거지!”라는 말을 종종 한다고 한다.
모든 아이는 날 때부터 호기심이 충만하며 똑똑해서 잠을 자기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이 좌절되기보다 충족될수록 더더욱 앎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새는 것 같지만, 밤에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은 건강한 욕구이고 한동안은 힘들지만, 그 시간을 엄마가 꼭 선물해 주었으면 한다.
어릴 때는 두 시간마다 배가 고파서 우니까 일어나야 했고 조금 커서는 밤새워 책을 읽어달라고 해서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밤새워 불을 켜둬야 하니 남편이 자는 안방에서 읽어주지 못하고 거실에서 읽어주었다.
새벽에 추위에 눈을 떠보면 은율이와 내 옆에 수많은 책이 널브러져 있었다. 출근 준비하러 나온 남편이 나를 깨우고 은율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다시 돌아간다 해도…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더 자주 더 많은 책을 밤새워 읽어줄 거라고 대답하고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불필요했던 데 썼던 시간과 에너지를 책을 읽어주는 데 쓰고 싶다.
똑같이 잠이 들었는데도 은율이는 늘 먼저 이른 아침에 땡! 하며 눈을 떴다. “엄마 나가자~ 거실에 나가자~”라며 졸랐다. 그러면 그때부터 또 잠을 못 자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온종일 재미있는 것, 호기심을 채울 것이 없나 하는 아이를 내 저질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남편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싶건만 오늘도 부스스한 나. 놀이터에서 실컷 놀고도 덜 놀았다고 하는 너. 백 번을 달렸는데 또 “나 잡아봐! 엄마!” 하는 너.
아이들의 앎의 욕구와 무한 체력 앞에서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그때쯤 친정 언니가 휴직을 하며 많이 도와주었다. 친정이 지방이라 늘 친정이 가까운 친구들이 부러웠다. 졸리고 힘들 때 잠시 친정에 가서 눈을 붙이고 오거나 저녁 한 끼를 친정에 가서 해결하고 오는 그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참 야속했던 말이 있다. “낮에 아이 잘 때 같이 자라”라는 말이었다. 심지어 책에도 그런 말이 있었다. 애 잘 때 청소도 해야 하고 애 깨면 먹일 것도 만들어야 하고 물티슈 등 주문할 것도 많은데 속도 모르는 소리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은율이가 다섯 살이 된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청소해야 하고, 반찬을 만들어야 하고, 아이 물건도 내가 주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정도 먼 데다 살림 재주도 없던 내가 그것을 다 하려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그때 마침 언니가 휴직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언니가 아니었으면 그 시간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운전을 못하는 나를 대신해 은율이와 나를 데리고 어린이 대공원, 놀이동산, 박물관, 공연장, 바닷가 등 어디든 가주었다. 은율이와 나의 사진을 가장 많이 남겨준 것도 언니이다. 덕분에 허겁지겁 먹던 밥 대신 모처럼 ‘인간다운’ 식사를 하기도 했다.
남편 퇴근 시간을 재촉하지 않아도 되었다. 눈꺼풀이 내려앉을 정도로 고단할 때 잠시 눈을 붙일 수도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척 힘든 일이다. 엄마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다.
뉴질랜드 가족 상담학교에서 육아의 시기와 남자들이 사회에서 가장 왕성히 활동해야 할 시기가 정확히 맞물리기에 반드시 이모 또는 조부모님 같은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양 사람들도 육아기에 친인척의 도움을 받는 것은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은율이가 아빠랑 단둘이 나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는 쉬고 있어~ 아빠랑 놀다 올게.” 하기도 한다. 전에는 나들이를 갈 때도 꼭 엄마가 함께 갔어야만 했는데 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서 종일 놀다 오기도 한다.
미술을 전공한 고모와 그리기와 만들기를 하고 할머니와 둘레길 산책을 한다. 그러면 나는 잠을 몰아서 자기도 하고 미루어둔 집안일을 하기도 한다. 늘 사랑으로 은율이를 보살펴준 고모와 이모,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