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 기도 쪽지가 발견되면 사형감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받아

우리 팀은 주님의 은혜를 부르면서 세밀하게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동하며 버스 안에서 은밀히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또한 버스 안에 있는 모두가 평양의 이곳, 저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Amazing Grac’를 부르며 다니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버스 안에 우리 모두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느꼈고, 모두의 얼굴빛이 밝아져 보였다.
미국 친구들도 더듬거리는 한국말이라도 더 사용하면서 대화를 하니깐 진짜 정말 친한 가족 여행하는 분위기가 돼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이제 곧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이 무겁고 마음이 아파졌다.

왠지 나의 소중한 가족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힘들었다. 이제 이 나라와 나의 소중한 가족 같은 형제들을 온전히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 드리고 떠나야 하는 날이 돌아왔다.

마지막 날 버스에서 우리 팀 모두는 아침에 짐을 싸고 버스에 탔다. 유난히 오늘따라 더 춥게 느껴졌다. 늘 그랬던 것처럼, 형님은 내 옆에 조용히 앉았고 한숨을 내 쉬었다. 나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하여 노력하자 형님은 미소를 지었지만 곧 다시 한숨을 내 쉬었다.

나는 형의 감정 상태를 느낄 수가 있었고, 나 역시 헤어져야 하는 슬픔 때문에 먼저 말을 걸기가 힘들었지만 “형, 왜 이렇게 우울해요?”라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을 건넸다. 형은 곧 고개를 떨구며 “우리 언제 또다시 볼 수 있을까?” 무겁고, 불가능할 거라는 마음으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억누르고 있었던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았다, 다시 억누르지만 눈물을 감출 수가 없어 나는 창문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우리 잠시 동안 서로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형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형! 아, 그러지 마. 왜 이렇게 우울해?” 형도 다시 웃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사실 난 이 회사에서 선택권이 없이 일한다.”

형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내가 다음에 온다고 해도 자기가 다시 이 팀을 만나거나 담당할지는 모른다고 하였다. 나는 다시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고, 이런 우울한 마음으로 마지막 추억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형, 다음에 내가 돈을 더 내던가 해서라도 형을 꼭 가이드로 부탁할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형은 다시 미소를 보여 주었다. 그러자 다시 분위기가 좀 따뜻해졌다.
“찬양아, 넌 여기 있으면서 뭐가 제일 맛있었냐?”
“평양냉면이요”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나면 네 부모님이랑, 네 누나랑 다같이 내 가족이랑 평양냉면 먹자”라며, 이렇게라도 다시 만날 수 있는 희망을 품어야 서로 웃으면서 헤어질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형이 서리가 껴있던 창문에다가 나에게 내 이름을 써달라고 했다. 나는 “왜, 형?”이라고 묻자 “네가 비행기 타고 떠나면 난 다시 이 자리로 와서 네가 써놓은 이름을 보면서 너와 그 동안 같이 시간 보냈던 순간들을 기억하면서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었다.

나는 또다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창문유리에 서린 살얼음 위에 나의 이름을 썼다. 너무 슬프고 너무 힘들었다. 마음껏 하고 싶은 말도 해서는 안 되는 관계이고, 자유롭게 오고 갈 수도 없는 나라, 바로 우리나라, 우리 가족들이 아닌가.

나누어진 한 나라의 비극적인 아픔을 실제로 체험한 나의 감정을 무엇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었던 그때를 나는 지금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더 안타까운 건 나는 형한테 무언가 주고 싶었지만 줄 수가 없었고 편지나 또는 같이 찍은 사진이든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줄 수 있었던 건 오직 기도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도가 제일 싫다고 말했던 이 북한 형에게 난 이렇게 말했다.
“형, 형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형이 싫든 좋든 상관없이 난 형을 위해서, 형수님과 형의 딸을 위해서, 이 나라를 위해 난 기도할 거야.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고 사랑의 행동이야.”라고 나는 말했다.

그렇게 말 한 후, 형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다시 조용해졌다. 아… 내가 말을 실수했나? 괜히 말했나? 형이 우리 크리스천에 대하여 싫어한 것 중의 하나가 기도였는데, 아…7초가 10분 같았다.
근데 갑자기 형이 내 귀에 가까이 와서 영어로 말했다.
“I Bless you, and I also bless JESUS.”

나는 지금도 이 순간을 기억하면 눈물이 나온다. 형님은 예수님이나 복음의 의미를 충분히 알지는 못했지만, 우리 팀을 향한 사랑만큼은 “I bless JESUS.”를 말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되었다. 그리고 바로 형이 나한테 진지하게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찬양아, 꼭 훌륭한 사람이 돼라”
“네, 형!”
“그리고 꼭 이 형 기억해줘라, 너 보러 나갈 수 있게” 우린 이렇게 눈물을 참아 가며 한마디 말을 하고 침묵하고, 한숨 깊게 쉬고, 또다시 한마디를 반복하면서 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공항에 도착. 공항의 출국장은 큰 하나의 창고처럼 출국 심사부터 탑승 문까지 한눈에 다 보였다. 우리 팀과 나는 형하고 체크인할 때부터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뒤돌아보니 그 형은 끝까지 안 가고 문 앞에 서서 우리를 계속 보고 있었다. 다른 가이드들은 다 돌아갔는데.
그리고 마지막으로 형이 크게 “찬양아” 부르는 것이었다. 나도 다시 형을 보고 “형님~!”하고 소리쳤다. 서로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9개월 후. 나는 다시 하와이에 있는 코나 본부 선교센터로 돌아왔고 다시 선교사로 예수제자훈련학교에서 섬기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선교사가 나한테 와서 말하기를 지난 학기 다른 선교훈련학교에서 북한으로 선교팀들이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팀 리더가 날 찾고 있다고 했다.

하와이 캠퍼스는 너무 크고, 스쿨도 많아서 팀들을 다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한 학기마다 선교 훈련을 받으러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이 1,000명이 넘곤 한다. 바로 지난 텀 선교팀 중에 북한으로 다녀온 팀의 리더를 만났다.

그 친구는 자기의 팀들이 박형을 만났다는 사실을 내게 전하고 싶어서 그 친구 역시 흥분된 얼굴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우리 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나게 해 주신 친형과 같은 박형에 대해 감동하며, 다시 눈시울을 붉히며 감사하면서 그리운 박형님에 대해서 우리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 팀들도 박형님이 가이드를 했고, 이 팀들이 하와이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 형이 자기한테 와서 혹시 찬양이를 아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 형과 이 팀들이 빨리 친해졌고, 시간이 갈수록 예수님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상황을 살피며 틈이 있을 때마다 믿음에 대해서 질문을 해 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도 이제 이별할 날이 다가오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고 그 형의 마음이 많이 열리자 혹시 주님을 인격적으로 본인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겠냐고 질문을 하면서 준비해 놓은 영접기도 쪽지를 건네주었다고 한다.

그 형에게 이 영접 기도를 입으로 시인하면서 읽고, 불로 태우던지, 화장실에서 없애든지 하라고 전달해 주자 그 형이 그 쪽지를 받고 하는 말이 그것 아냐고, 내가 이 쪽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나는 바로 사형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런 말을 하면서 그 형은 그 쪽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드디어 주님이 하셨다는 생각이 들어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를 드렸다.

나보다 더 그 형을 더욱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께서 그를 구원하실 것과 그를 보호하시며, 그의 사랑하는 가족들까지 책임 져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무거운 짐이 벗어진 듯이 그저 주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드렸다.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보고 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리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북한에서의 있었던 이 놀라운 간증들은 우리 팀이 특별해서도 아니었고, 나의 리더십이 더 뛰어나서도 아니었고, 우리가 영적으로 훌륭해서도 아니었고,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단순히 순종만 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버지가 그 모든 것을 더 하시는 기적을 우리는 체험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형님에 대한 간증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우리 팀에게 주신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겸손, 배려, 인내, 용서와 담대함, 그리고 사랑이라는 작은 순종들이 모여서 이 간증을 기록하게 된 것이라고 믿는다. 이 또한 누구든지 할 수 있는 단순한 순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후로, 나는 순종할 때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당장 열매가 안 보일지라도 이 작은 순종의 씨앗을 통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열매를 맺을 것에 대하여 주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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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양
2010년 호주 YWAM(Youth With A Mission)에서 훈련 받고, YWAM 하와이 코나에서 2017년까지 예수 제자훈련학교의 간사와 학교 책임자로 섬겼다. 2018년 후반 뉴질랜드에 돌아와 빅토리처치의 청소년부 담당자로 있고, M28의 책임 간사로 세상 끝까지 전하는 세대가 일어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