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

박천순 목사<크라이스트처치새소망교회>

현재의 나의 생활하는 삶과 신앙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증명해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타락과 함께 오해와 착각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에 이 관계보다 봉사나 헌신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교회에 도움이 되기에 이것을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세속문화에 물들어 있는 모습이 너무도 만연해서 더더욱 점검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 가지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사실을 함께 나눔으로 현재의 나는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점검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나 중심적인 신앙생활입니다
나의 편의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나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입니다. 나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이익이나 명예나 인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섬김 그리고 그분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인 자신을 중심으로 나의 이익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고 있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너무나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여기서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를 사랑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해야 합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더욱 풍성한 그분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신 것은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모르는 이들에게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말로만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말을 너무나 잘합니다. 말로 잘 도와주고, 말로는 선교도 잘하고, 말로는 사랑하고, 말로는 선을 베풀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여러 가지로 말을 잘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의 진실의 여부는 따지지 않습니다. 그 말이 진실이 되고 신뢰가 되려면 행동이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말만 무성하고 행동이 없습니다.

마치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꼴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책망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고보 기자는 2장 26절에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자세하게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대한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음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고 하십니다. 둘 다 집은 그럴싸하게 지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가 오고 태풍이 오고 홍수가 날 때가 되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려운 고난이 닥치거나 심판의 때에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구원이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신앙은 믿음도 신앙도 아닌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너희는 제자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말씀은 그와 같은 역할을 하라는 것입니다.

즉, 빛처럼 어두운 세상에 생명이 빛을 비취어야 하고, 소금처럼 썩어져 가는 세상에 방부제의 역할로 썩어짐을 막아내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빛이 어떻게 비취게 될까요? 빛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장에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만이 “참 빛”이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빛의 근본이 되시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 빛을 증거하러 왔고 그 또한 작은 빛으로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며 살았습니다. 참 빛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을 십자가의 형틀에서 처절하게 버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인류에게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친히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십니다.

이처럼 빛은 자신을 버릴 때 빛이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참회의 모습으로 자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의 자격을 말씀하실 때 첫 번째의 조건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제 소금을 생각해 봅시다. 소금이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크게 두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는 바다의 물로 만들어집니다. 바다의 물을 모아서 햇빛에 바닷물이 증발하고 남은 것을 불순물을 제거하고 정제해서 소금이라는 결정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천일제염을 얻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그 당시에 소금을 얻는 방법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로 사해 부근에서 채취되는 암염을 사용했습니다. 암염의 원석 덩어리를 물에 담가서 소금기를 추출합니다. 소금물이 진한 용액이 되면 또 다른 물에서 녹이는 것을 반복한 후 최종적으로 이를 농축시켜서 사용했습니다.

원래 암염 덩어리에서 소금기가 다 빠져나가면 구멍이 숭숭 뚫리고 삐쭉하고 흉측하게 생긴 마치 골다공증이 생긴 뼈다귀처럼 되어 버립니다.

이것은 찌꺼기로 아무 쓸모가 없기에 밖에 버려지고 사람과 가축의 발에 밟히는 신세가 되어 버립니다. 이것을 “맛을 잃은 소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짠맛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모르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겉 사람을 다 벗어 버려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나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주인 삼을 때 비로소 짠맛을 낼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그분의 사상과 그분의 뜻을 추구하며 행동으로 살아내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반드시 “믿음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는 제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신앙생활,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고, 말만 아니라 말씀을 순종하는 삶, 그리고 빛과 소금의 역할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