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일이든 남다른 집중력과 재치를 발휘해서 기대를 넘는 결과를 만들곤 하는 손아래 처남이 하나 있다. 흔한 표현으로 일을 똑소리 나게 하는 친구다. 이삼 년 전에 한국에 나갔을 때 이 친구가 당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이제 나이가 환갑에 이른 이 처남이 한창 젊었을 때 그 당시 많은 사람이 그랬던 대로 친구들과 어울려 자주 당구를 쳤단다. 그때는 뭐 그리 대단한 실력을 가진 고수는 아니었다. 그리고 한 집 건너 보이던 당구장이 서서히 사라졌듯 그도 당구를 잊은 지 오래되었다. 이후로 그가 당구를 접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한물간 듯싶던 이 당구가 한국에서 다시 유행을 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당구장은 담배 연기로 늘 매캐하고 적어도 내 눈에는 그리 건전한 장소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범생이 소리를 듣던 내가 별로 당구에 관심이 없었던 이유였다.
이랬던 당구가 최근에 좀 더 클래식하고 귀족적인 스포츠로 새로 각광을 받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한국의 유선방송 중에 당구 채널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처남이 이 당구에 다시 맛을 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당구 채널도 열심히 보고 유튜브를 통해 새로 배우는 당구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런 데에 등장하는 당구 장면은 그야말로 고수 중의 고수, 국가대표나 국제적으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가들이 벌이는 시합이다. 그 세계적 고수들이 여러 미디어를 활용해 제대로 당구치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런 기회를 통해 확실히 배우게 된다면 돈 한 푼 안 내고 세계적 톱클래스 기법을 얻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한동안 혼자서 당대의 세계적 고수들한테 레슨을 받고(?) 실력을 연마한 처남이 마침내 옛날에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친구들과 시합을 벌여 모조리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것도 월등한 차이로. 친구들이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며 혀를 내두르더란다.
세상이 바뀌어 새로운 매체가 요즘 우리 삶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사회관계망(SNS), 유튜브 등으로 온갖 정보가 떠돌고 쉽게 접할 수 있다. 뭔가 궁금한 것, 혹은 무슨 일을 하다 막히는 경우 손에 들고 있는 휴대전화로 검색하면 다 나온다. 우리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에 가지 않아도 언제든 원하는 목사나 유명인의 설교, 혹은 신앙강의를 거의 무한대로 들을 수 있다.특히 작년 이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비대면으로의 변화는 이런 양상을 더욱 심화시켰다. 일을 하며 하루 종일 설교를 틀어 놓고 듣는 경우도 흔하다.
그것도 유명하다는 목사의 명 설교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중요 내용만 쏙 뽑아 듣기 간편하게 짤막한 형태로 편집해 놓은 것도 허다하다. 그야말로 설교편의점에서 간편하게 듣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것도 무료로.
여기서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것이 있다. 그렇게 흔하게, 또 많이 듣고 접하는 설교가 우리의 삶을 과연 얼마나 변화시키고 있는가? 수많은 그 설교의 내용이 실제 삶에서 얼마나 실천되고 있는가? 그런 설교자들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 아니 주님께서 그런 전달자들을 통해 우리보고 실천하라고 주시는 말씀이 얼마나 생명력 있게 살아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많이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오히려 흔한 싸구려 물건 대하듯 그렇게 흘려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듣고 아는 것을 실천해야 제대로 된 믿음인데, 그러지를 못해 머리만 커진 기형아가 되어 세상에서 나도 모르게 손가락질 받는 그리스도인 중의 하나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처남이 새로 당구를 배우는 과정을 설명하며 한 말이 있다. 티브이에서 대가들이 치는 것을 몰입해서 보고 있으면 나중에는 마치 자기가 직접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티브이나 유튜브의 장면에서 뛰고 있는 선수가 자기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공을 치는 길을 그리게 되거나 팔이 막 움직인다고 했다.
그렇게 머리에 남아있는 착각을 연습으로 강화하다 보면 실전에서도 그대로 실력 발휘가 된다는 것이다. 하물며 당구가 이런데 그렇게 흔하게 접하는 설교를 통해 우리는 얼마나 믿음의 고수로 변모하고 있는지……
온갖 여러 매체를 통해 수시로 들을 수 있는 이런저런 설교를 우리는 얼마나 몰입해서 경청하고 있나? 내가 처한 오늘 이 삶터에서, 마치 복음과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어느 인물처럼 살고 있는 착각을 느끼는 경우가 있던가? 그렇게 많이 듣게 되는 설교의 내용이 우리 삶의 어떤 영역에서 실제 산 복음으로 드러나고 있나?
그러기는커녕, 스쳐 지나는 노랫소리처럼 귀에 와 닿는 몇 마디를 그날 신앙생활의 만족거리로 삼고 있지나 않은지? 아니 오히려, 그렇게 들은 것을 밑천 삼아 자기가 몸담고 있는 교회나 공동체를 비판하고 비난하며 흔드는 무기로 써먹고 있지는 않은지?
오스왈드 챔버스는 “우리 영적 삶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온라인 설교와 신앙강의를 간절한 마음으로 듣고 연습한다면 이를 통해서도 주님과 하나가 되는 삶을 경험하고 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잘 선택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경청해 듣고 실천하면 신앙의 고수가 되게 만드는 만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연습 없는 당구로는 실력 발휘가 안 되는 것처럼,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그 명설교들은 거리에 흩어지는 소음과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을까?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서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