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파타야 HIV 재활센터

가장 화려하게 꾸민 트랜스젠더를 볼 수 있는 곳은 태국 파타야의 워킹스트릿인 것 같다.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로 옷을 과하게 입고 과도한 화장과 높은 힐을 신고 워킹스트릿을 활보하고 다니는 이들이 파타야의 주인인듯싶다. 방콕에서도 여장 남자나 성전환자를 많이 봤지만, 관광지인 파타야에서는 급이 달랐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몸을 파는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타이 마사지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이곳 워킹스트릿의 마사지샵엔 특별한 옵션이 추가되어있는 곳이 많다고 한다. 어린 안마사가 많이 있는 곳일수록 퇴폐업소에 가깝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대부분의 어린 안마사의 고향이 시골인데, 돈을 단기간에 많이 벌어 고향 식구들한테 보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이런 곳에서 일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할 말을 잃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성姓이 아무렇지도 않게 상품화되어 쾌락만을 위해 존재하듯 타락한 이 땅을 보며 원통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동행하신 파타야 선교사님이 이곳 워킹스트릿에서 해나리가 전자 바이올린으로 찬양 연주를 꼭 한번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워킹스트릿을 벗어났다.

파타야에 있는 한 한인교회는 아주 작은 공간을 빌려 예배드리고 있었다. 20명 들어가면 꽉 찰만한 공간이었다. 많지 않은 교인들 사이의 철칙은 서로의 가족사에 관해 묻지 않는 것이다. 가족 또는 친한 사람끼리 사기 치고, 다투고, 이혼하고, 재혼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상하고 찢겨 파타야에 와서 사는 것이다.

뉴질랜드에 이민자로 살면서 이러한 가정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간증과 연주를 나눌 때 성령님께서 목사님 내외와 교인들의 마음을 만져주셨다. 집회 시간 내내 눈물을 훔치는 성도도 있었는데, 특별히 파타야 생활과 목회가 너무 힘들어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 중에 다시 힘을 얻었다는 목사님 내외의 고백에 내 마음이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찼다.

예배가 마친 후 교인들이 음식 대접을 하겠다고 해서 해산물 뷔페로 갔다. 파타야는 해안 도시이니만큼 싱싱한 해산물이 풍부했다. 현지 식당으로 가서 굴과 랍스터, 생선 등 한국에서는 값이 꽤 나가는 요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약한 위장은 그 맛있는 음식을 버텨내지 못하고 토해내기 시작했다. 해산물이 문제인지 해산물을 씻은 현지 수돗물이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밤새도록 구토와 설사로 시달려 급기야 파타야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수액과 구토 증상을 진정시키는 링거를 맞았다. 그런데 조금 지나서부터 온몸이 굳어지는 것 같고 혈관을 통해 들어가는 링거 성분이 몸을 가만히 안 있게 만들었다. 괴로움을 못 이겨 주먹으로 내 몸을 치고 머리를 벽에 박는 등 자해증상을 보이자 태국 의료진이 달려와 내 손을 붙잡고 링거를 빼냈다.

조금 뒤에 수액을 통해 주사 성분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몸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투약한 메토클로프라마이드 성분의 부작용이 온 것이다. 10만 명 중 한 명의 극소수에게만 나타나는 부작용이 나한테 생길 줄이야! 그렇게 응급실에서 더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약을 처방받고 숙소로 돌아갔다.

장염 증상이 남아있어 괴로웠지만 태국 유치원, 초등학교, 재활병원에서의 공연 스케줄이 남아있어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하고 다시 달렸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에너지와 힘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사역을 잘 감당하고 마지막 남은 HIV 재활병원으로 향했다.

가톨릭 단체에서 운영하는 이 병원의 환자는 대부분이 어린이였다. 수혈이나 성 접촉을 통해서만 감염이 되는 HIV가 왜 어린이한테 감염됐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 아이들은 HIV 보균자 부모에게 뱃속에서 감염되어 태어날 때부터 HIV 보균자가 되었다고 한다.

주님께서 결혼한 부부에게만 허락하신 아름다운 성이 사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쾌락으로 전락하여 특히나 성적으로 타락한 태국 땅에 이런 어린이 환자가 많은 것이었다. 피부 접촉이나 공기 등으로는 감염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내심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하나님, 이 두려운 마음을 거두어주시고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대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병원에 갔다. 도착해보니 어린아이들이 대다수였지만 40~50대 어른들도 있었다. 환자 중엔 두 눈동자가 양옆으로 돌아가 있는 어린아이도 있었고 온 몸에 두드러기가 두둘두둘 나 있는 어린이도 있었다. 말을 제대로 못 하는 환자, 가만히 앉지도 서 있지도 못하는 환자 등 갖가지 증상을 동반한 환자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보균자 어린이들은 13살을 못 넘기고 죽는다고 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아이들을 신앙으로 성장시키고 최대한의 치료를 제공해 최대 수명 13살에서 한 해씩 연장해나가는 거라고 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초등학교에 열심히 다니며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

‘하나님, 이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나요? 태어날 때부터 시한부 인생을 사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주세요.’

진흙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환자들이 앉았다. 우리가 가져온 음향기기를 설치하고 돗자리 앞쪽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고 듣는 전자 바이올린 연주에 환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 피웠다. 일어나서 신나게 춤도 추고, 흥에 겨워 소리도 지르며 공연에 빠져들었다.

영화 타이타닉 OST인 ‘My Heart Will Go On’을 연주하는 순서가 됐다. 마지막 소절을 남기고는 항상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관객 한 명을 초청해 영화에서처럼 남주인공이 양팔을 벌린 여주인공 옆구리를 잡는 퍼포먼스를 한다. 순간 가장 어린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앞으로 불러내 양팔을 벌리고 그 아이의 옆구리를 잡았다.

그런데 하필 그 아이가 바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잔뜩 나 있는 아이였다! 성령님이 일부러 그 아이를 선택해서 잡게 하신 것 같다. 병원 방문 전 내 마음을 가득 채웠던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아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 올려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자 관객도, 그 아이도 너무 좋아하면서 웃었고, 내 안에도 크나큰 기쁨이 임했다. 성령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도 동일하게 전달되어 인간적인 마음보다는 성령님의 큰 사랑이 내게 임한 것 같아 그저 감사했다.

내 공연순서가 끝나고 원장으로 계신 신부님이 “해나리씨, 우리 아이들도 해나리씨한테 보여줄 답가를 준비했어요. 크리스마스 때 할 퍼포먼스인데 해나리씨한테 미리 선보이는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핸드벨을 들고 캐롤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불러줬다.

그 광경을 보는 나는 마치 천국에 있는 듯했다. 눈물이 마구 흘러나와 이를 악물고 참느라 혼났다. 그리고는 한 명이 나와 나에게 장미꽃을 전달해주면서 “God bless you….”하며 축복해줬다. ‘하나님, 제가 다음에 방문할 때도 이 아이들이 살아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기도하며 그곳을 떠났다.

그 병원 환자 중에 백발의 50대 초반의 독일 남성이 있었다. 내가 공연하는 내내 멀찌감치 앉아서 계속 흐느껴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선교사님을 통해 들은 소식은, 그 남자분이 아직까지 살아있고 머리색도 돌아왔으며 작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DJ 일을 하며 활발하게 산다는 것이다!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최초로 그 병원에서 14살까지 살고 있는 환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천국의 소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살아나가는 덕에 수명이 연장되고 치유가 안 되는 병이지만 기적과 같은 치유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정말 놀라웠다.

모든 생명은 주님께 달렸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내 생명도 주님께 온전히 맡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