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다운을 지내면서 가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들을 겪었다. 집에서 교회업무를 보다 보면 누나와 동생이 말싸움을 하다가 마지막에 콩하고 쥐어박은 꿀밤 한대에 동생이 울기 시작한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면 누나는 동생이 이런 잘못을 저질러서 그랬다 하고, 동생은 누나가 먼저 자기를 괴롭혔다고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
그런 싸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 아이 둘을 혼낸다. 그렇게 혼나서 우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쓰다듬어주고 서로 화해시키면 다시 집안이 조용해진다.
부부관계 속에서도 작은 일이 빌미가 되어 심하게 말다툼을 한다. 그 이후 서로 말을 안하고 투명인간 취급하며 아이들을 메신저 삼아 이야기 하다가 누군가 한 명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겠는데 그 자존심이 뭔지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그러면서도 성경은 읽어야 하겠기에 창세기를 펴본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인류가 먹은 사실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그 이후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보며 이런 부부싸움의 모습이 비단 우리 가정의 모습이 아니라 최초의 부부의 모습이었구나 라는 모습에 심심한 위로를 얻으며 웃음짓게 된다.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세기 2장 9절)
뱀의 꾀임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하와, 그리고 아내의 말을 듣고 역시 열매를 먹은 아담. 그 이후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입고,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두려워하여 숨는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물으신다.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하나님께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 만약 아담이 이렇게 대답했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네, 하나님! 제가 그 열매를 먹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저의 잘못입니다. 제 아내 하와는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하나님 말씀을 더 잘 경청하고 기억해서 이런 일이 없도록 했어야 했는데 모든 것이 저의 부주의로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하와 역시 이렇게 하나님께 대답했다면, 두 부부의 관계는 그 이후 어떻게 변했을까?
“아닙니다, 하나님. 제가 뱀에 꾀임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모든 것은 다 저의 잘못입니다. 아담도 제가 열매를 주어서 먹은 겁니다. 그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상상을 보태자면 아마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서로의 허물을 덮으려는 모습에 하나님도 다르게 반응하셨으리라.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아름답게 흘러가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다가 결국 생명나무의 열매를 맛보지 못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의 쓴맛을 맛보며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다.
아담과 하와 부부는 그 이후 계속 부부싸움을 했을까? 분명 엄청나게 많이 싸웠을 것 같다.
‘당신이 그때 뱀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에덴동산에서 계속 살수 있었을 텐데.’
‘당신이 나보고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며 왜 나를 이렇게 대해? 어쩜 그렇게 자기 잘못만 회피하려고 하냐 참 못 났다.’라는 등등의 말로 서로를 흠집 내고 상처주기에 바빴으리라.
코로나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고통 받는 지금, 작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조심스럽게 하며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말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상처 주는 말이 아닌 싸매주는 말로, 흠을 잡는 말이 아닌 덮어주는 말로, 그저 남의 잘못을 들추기보다는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라는 겸손한 태도로 치유를 흘려 보내는 모든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또한 사랑은 삶 속에 주어지는 계속적인 선택이기에 그저 감정에 이끌려 말과 태도를 내뱉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내 마음을 잘 전할 수 있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며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모든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