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캠프

김민수 목사님은 조명으로 사역하는 사역자이다. 하루는 김목사님이 어느 미자립교회에 조명으로 섬기러 갔는데 학생들 몇 명이 밴드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른 악기는 그래도 제 음을 내고 있었는데 유독 키보드만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에 키보드나 피아노가 없어 종이에다 건반 모양을 그려놓고 소리 나지 않는 건반에서만 연습했기 때문에 실제 키보드에서 쳤을 때 이상한 소리가 난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미자립교회의 슬픈 현실에 마음이 아린 김목사님은 미자립교회 청소년을 위한 문화 캠프를 열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일회성의 문화 사역으로 은혜를 끼치는 것도 필요한 사역이지만 무엇보다 캠프의 중요성을 깨달은 아트 코리아는 김목사님이 개최하는 캠프에 전적으로 가담하기로 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라디아서 6: 17)

위 성구를 토대로 캠프를 통하여 예수의 흔적을 남기자는 의미로 ‘흔적 캠프’가 시작됐다.

김목사님이 일 년 동안 조명 사역을 하면서 낸 수익으로 캠프 경비를 전면 부담하여 참가자들에겐 회비를 받지 않는 무료캠프로 진행했다. 특정한 기준을 세워 미자립 교회만 엄선해서 신청서를 받았다.

김목사님과 및 아트 코리아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기도하며 회의를 통하여 프로그램을 짜고, 행정적인 준비도 다 함께했다. 2박 3일 동안 문화 사역자가 선생님이 되어 각기 다른 아카데미 반을 진행하는 게 흔적 캠프의 특색이다. 보컬 반, 블랙 가스펠 반, 밴드 악기 반, 랩 반, 워십댄스 반, 비보이 반, 가스펠 매직 반 등 캠퍼들이 배우기를 원하는 분야에 지원하여 캠프 기간 배우고, 각자 교회에서 예배를 위해 섬기는 것이 목적이다.

사역자들 또한 준비 기간부터 캠프 기간까지 무보수로 섬긴다. 캠프 성수기 시즌에 다른 스케줄을 제쳐두고 4, 5일 동안 흔적 캠프를 전적으로 섬기기 쉽지 않지만 마지막 날 캠퍼들이 변화된 모습을 보면 그만큼 값진 것이 없기에 매해 섬기게 된다.

밴드와 보컬 팀은 찬양팀으로 섬기고, 댄스팀은 찬양에 맞춰 율동으로 직접 예배의 자리에 선다. CCM 콘서트 시간엔 여러 팀이 연합한 콜라보 무대를 준비하여 더욱더 화려하고 은혜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직접 주방에서 요리하거나 배식으로 섬기는 사역자도 있다.

집회 뒤에 기도회 때는 아카데미 반별로 모여 선생님인 사역자가 직접 기도회를 인도하여 반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울며 기도한다. 마지막 날 밤엔 애찬을 통해 캠퍼와 사역자가 서로 돌아다니며 떡을 떼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축복의 기도를 한다.

폐회 예배 때는 화려한 밴드 없이 각자 교회로 돌아가서 실질적으로 찬양할 수 있게 최소한의 악기로 찬양한다. 이때가 되면 첫날 어색한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모두 목소리만으로도 신나게 찬양할 수 있게 되고, 또 프리스타일 랩으로도 주님을 높인다. 이런 프로그램으로 사역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캠프는 국내 유일하다.

한번은 흔적 캠프 시작 전날 미리 캠프장에 내려가 있었는데 그날 밤 예상치 못한 폭설이 쏟아진 것이다. 그다음 날 캠퍼들이 전국에서 모여야 하는데 고속도로를 비롯해 모든 도로가 마비 상태에 가까웠다.

몇 개의 교회가 캠프에 불참할 수밖에 없다는 전화가 왔다. 그래도 천천히라도 오고 있는 참가 교회를 위해 계속 기다렸다. 나를 비롯한 몇 명의 자매 사역자는 캠프장에서 꽤 높이 올라간 산 중턱에 숙소가 마련되어 폭설 때문에 꼼짝없이 갇히게 됐다. 온종일 숙소에서 굶으며 눈이 조금이라도 녹아 내리길 기다렸다. 캠프 시작 7~8시간이 지난 뒤에야 캠퍼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고 개미 기어가듯 한 도로 상황을 견디며 캠프장에 도착한 이들이 너무 귀했다. 그래서 더욱더 은혜가 있는 캠프였던 것 같다.

캠프가 끝나고 사역자들이 함께 제대로 씻고 쉬며 피드백하러 찜질방에 갔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올라가려는데 체기가 온 듯 구토가 나고 몸이 너무 힘들어 라커룸에 드러누웠다. 땀이 뻘뻘 나면서 구토와 설사 증상이 같이 왔다. 신음이 절로 나면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같이 있던 자매들이 급히 김목사님을 불러 나를 업고 응급실로 데려갔다.

흔적 캠프 전부터 하루에 몇 번씩 전국을 다니며 캠프 사역을 하다가 폭설로 인해 온종일 음식도 못 먹고 바로 캠프를 진행해 면역력이 떨어져서 온 장염 증상이었다.

특히 나는 찬양팀과 아카데미 반, 리더십을 모두 맡고 있어서 쉴 틈과 잘새 없이 계속 강행군을 펼쳤기 때문에 병이 난 것이다. 응급실 화장실로 먼저 뛰어가 구토와 설사를 쉴새 없이 했다. 이렇게 괴로운 적은 처음이었다. 수액과 주사를 맞고 조금 가라앉아서 수 시간 후 퇴원했는데, 집에 가는 길에도 계속 구토해 견디기 힘들었다. 며칠 동안 물만 마시며 누워서 쉬며 회복했다.

덕분에 흔적 캠프의 룰이 하나 생겼다. 찬양팀이든 아카데미 반이든 둘 다 맡는 것을 금하고 둘 중 하나만 집중하여 섬기는 것이다. 사역자들이 체력 안배를 잘하여 나같이 병나지 않고 잘 마무리 하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캠프는 참으로 귀하다. 하지만 방학 기간도 짧아지고 부모들이 학원에 보내느라 캠프를 못 가게 해서 문 닫는 캠프가 속속들이 늘어간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인생이 변화되어 구원받는 것임을 부모와 자녀가 깨닫길 기도한다.

COVID-19이 주님이 계획하신 때에 종식되어 다시금 캠프 사역이 활성화되어 현재 미전도 종족의 수치로 전락한 청소년 선교가 확장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