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중략)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이 시는 한국의 대표적 시인 한용운이 쓴 ‘님의 침묵’(1926)의 일부입니다. 사랑하는 님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지만, 되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났기에 이제 그리운 님의 침묵은 시인에게 절망만 안겨 주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고도 나가사키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유명한 바위가 있습니다. 바위엔 ‘침묵의 비’라고 쓰여 있고, ‘인간은 이렇게도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 푸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이 기념 바위는 일본의 여류 기독 작가 엔도우 슈사쿠가 쓴 유명한 ‘침묵’이라는 소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오래전 읽었던 이 소설이 주는 감명을 나는 잊을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을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든 ‘Silence’를 보면서도, 소설을 읽을 때만큼 그 감동이 못했음을 기억합니다.

17세기 일본의 막부시대, 불교의 온상이던 나가사키 지역을 중심으로 일본에 처음 천주교가 전래 될 당시의 선교와 박해, 그리고 배교에 관한 이야기로서 한 인간의 깊은 곳에 감추어진 내면세계를 다룬, 사실에 기초한 기독 소설입니다.

포르투갈의 예수회 소속 퍼레이라 신부가 포교를 위해 일본으로 파송된 후 배교해서 중이 되었다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소문이 선교회 본부에 들려옵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로드리고라는 젊은 신부가 중국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에 잠입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퍼레이라 신부의 발자취를 숨어서 추적해 가던 중 천신만고 끝에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소문대로 배교해서 불승이 된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 엄청난 사실에 로드리고는 충격에 빠집니다.

그리고 이를 파헤쳐가던 자신도 결국 붙들리게 되고 견딜 수 없는 극한적인 고문을 당하며, 선배 신부가 배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땅속 깊게 판 구멍 속에 거꾸로 매달려 입, 코, 그리고 귀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 견딜 수 없는 ‘구멍 매달기’ 고문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임을 느낍니다. 누가 감히 배교치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순교자 로드리고의 절규 속에서 이 소설은 끝을 맺고 있습니다. “주여, 당신은 침묵하고 계십니까!” 그때 어디선가 미세한 음성이 그의 귀에 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지 않다. 너와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 전염병에 감염된 환자가 8월 들어 총 2천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가 백만 명에 가깝습니다. 실제 이보다 훨씬 더 많을 지도 모릅니다.

나라마다 방역 수위를 상향조정하고 있고, 한국의 휴대폰들은 긴급재난 문자 수신하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정말 놀랍고 두려운 세상입니다. 들려오는 지구촌 곳곳의 소식들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로 인한 각종 재난들, 각국의 경제 파탄과 실직자의 증가,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 이념대립으로 인한 갈등과 끊임없는 전쟁 공포 등, “주여 당신은 이대로 지구를 멸하시나이까.”하고 하늘을 우러러보기도 합니다.

인간이 받을 고통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끊임없음을 다시금 일깨우는 것 같습니다. 신체적 고통, 경제적 고통, 정신적 고통은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찾아와 우리를 괴롭히며 두렵게 합니다.

우리는 울부짖습니다. “하나님 정말 이렇게 내버려 두시렵니까. 저희의 기도 소리가 들리지 않으신가요. 왜 당신은 내게 응답지 않으십니까, 때로는 하나님은 내게 침묵하신다고 낙심하고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오늘도 못난 저희는 당신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마치 시편 기자의 노래처럼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불러도 대답 없는, 결코 우리 곁으로 되돌아올 수 없는 죽은 님의 침묵이 아님을 저희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시며, 하나님은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 아니며, 우리를 모른 체 외면하실 분이 아니심을 저희는 압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나의 고통을 알고 계시며, 우리들의 절규를 듣고 계신 것을 믿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침묵하신다고 여겨진단 말입니까. 누구나 명백한 해답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잘 알려진 영성 신학자 헨리 나우웬이 쓴 책, ‘Letters to Marc About Jesus’(헨리 나우웬의 영성편지)에서 ‘예수님, 숨어 계신 하나님’ 이란 글을 읽으며 새삼 큰 위로를 받습니다.

‘기독교가 세계의 유수한 종교가 되어 무수히 많은 사람이 매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다 보니 우리는 예수님이 은밀하게 숨어 하나님을 계시하셨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지 못한다. 예수님의 삶도, 죽음도, 부활도, 사실은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를 경악에 빠트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낮은 곳으로 숨어들어 거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되셨다. 예수님의 복음이 열매 맺는 곳마다 우리는 이 은밀함을 만난다. 나는 이 사실에 매번 놀란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의 은밀한 곳에서 우리를 만나 거기서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기 원하신다.‘

‘예수님은 숨어 계신 하나님.’- 바로 하나님의 침묵이 갖는 의미를 이제야 새삼 깨닫습니다. 은밀한 가운데 일하시며 미세한 음성으로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건만 내가 듣지 못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죽었소? 하나님이 진짜 살아 있다면 왜 이렇게 무심할 수 있단 말이오!” 그러나 분명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요,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결국 나의 믿음에 관한 문제였음을 깨닫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 내가 지금 너와 함께 있음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교만했기에 내가 가진 고통의 참뜻을 알지 못했고, 내가 미련했기에 계시되고 선포된 말씀의 깊이를 깨닫지 못했고, 내가 어리석고 연약했기에 세상의 유혹에 귀가 솔깃했었고, 내가 영력을 잃었었기에 주의 음성에 내 마음의 귀를 닫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환난과 고통의 때에 이제는 나를 돌아볼 때입니다. 재난의 징조들도 다가올 큰 환난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으로 우리는 들어야 할 때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통의 때를 지나면 더욱 강해질 수 있고, 환난의 때 더 큰 소망을 품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린도후서 4: 17-18)

‘나는 침묵하고 있지 않다 지금 너와 함께 하고 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