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깨끗한 핸드드립(Hand Drip) 처럼

로스팅 핸드드립 커피가 끌리는 날이 있다. 나는 주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한 커피를 즐겨 마시는 편이지만, 핸드드립 커피가 강하게 끌리는 날이 있다.

수고한 나에게 상을 주고 싶을 때, 혹은 머신으로 내린 커피가 식상하게 다가올 때, 그럴 때면 집 앞 카페로 냉큼 달려가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한다. 그리고는 천천히 기다린다. 핸드드립은 바리스타가 손수 내리는 방식이기에 오래 걸리고 그래서 가격도 비싸다. 하지만 괜찮다. 특별한 날에만 허용되는 유일한 사치니까.

커피는 그 추출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메뉴얼 드립(Manual Drip)’과 ‘오토 드립’(Auto Drip). ‘메뉴얼 드립’은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추출하는 방식, 즉 우리가 흔히 아는 핸드드립(Hand Drip)을 말하고 ‘오토 드립’은 기계를 이용해 추출하는 방식을 말한다.

메뉴얼 드립, 즉 ‘핸드드립’은 일반적으로 ‘페이퍼 필터 드립(Paper Filter Drip)‘이라는 말로도 통용되는데, 말 그대로 ‘종이 여과지로 걸러내는 커피’라는 뜻이다.

서구권에서는 일반적으로 ‘필터 커피’라는 표현으로 더 많이 쓰이는 반면, 한국과 일본 등의 아시아권에서는 ‘핸드드립‘ 이라는 표현이 더 많이 쓰인다. 그렇다면 종이 필터를 통해 추출한 커피는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한 커피와 어떻게 맛이 다를까?

핸드드립은 원두가 담긴 드리퍼에 물은 부은 뒤 천천히 뜸을 들이며 커피를 우려낸 후, 그 우려낸 커피를 종이 필터(여과지)로 한 번 더 걸러내는 방식이다. 종이 필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불순물과 기름 등이 깔끔하게 걸러지는데, 그렇게 되면 ‘원두 본연의 맑고 깨끗한 맛’ 만이 남게 된다. 그것도 향을 잃지 않은 상태로.

이 커피를 즐기는 분들의 말에 의하면 바로 그 맑고 깨끗한 원두 본연의 맛이 핸드드립의 가장 큰 장점이라나. 오래 두고 마실 수 있고 자주 마셔도 질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순수한 ‘차(Tea)‘ 본연으로써 커피.

반면에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커피는 찌꺼기와 불순물 등을 완전히 걸러내진 못한다. 특히나 기름을 걸러내지 못하는데, 오히려 그 기름진 커피 맛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맛을 즐기는 사람들은 에스프레소 방식을 더 선호하고 반대로 깔끔한 맛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핸드드립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어떤 추출방식이 더 맛있다 맛없다의 문제는 아니다).

신앙 생활을 해나갈 수록 풀리지 않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과연 영적 성장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 흔히 사용하는 스마트 폰 조차도 운영체계를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해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새로 개발된 앱들과 스마트 폰 운영체계가 충돌을 일으켜 작동이 더뎌지고 심지어 작동 불능상태까지 이른다.

인간이 만든 스마트 폰 조차도 정체되면 망가지게 되는데 하물며 우리의 영혼은 어떨까? 영혼의 체력인 ‘영성’도 때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야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 즉 영성의 업그레이드란 과연 무엇일까?

미련한 나는 이 부분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스펙이나 경력을 쌓듯 뭔가를 자꾸 더하는(+) 것, 덧붙여 나가는 것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길이라 착각했다. 그래서 지식과 경험을 더 쌓기 위해 일을 찾아 헤맸고, 책을 찾아 공부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럴 수록 점점 교만해지기만 했다. 지식이 많아질 수록 주변 사람들을 낮게 여기고 경험이 많아질 수록 사람들을 쉽게 내쳤다. 복음서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되어갔다. 점점 ‘낮은 자리’로 내려 가는 것이 버거워지기만 했고 영적으로 오히려 퇴보하는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뜨일 만한 사건 사고를 겪으며 깨달은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의 순전함’이 가장 중요하고 고결하며 전부라는 것.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지식도 중요하고 경험도 중요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은 모두 하나의 도구일 뿐, 진정한 ‘영적 성장(Upgrade)’ 이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 그 마음의 순전함만을 남기고 모두 ‘걸러내는(Filtering) 것’에 가깝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고난이라는 여과지를 통과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마치 모든 과정을 다 통과해 낸 완성된 영혼인양 떠들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오해들 마시길. 나는 여전히 ‘걸러지는 중(Filtering)’이다. 어제는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필터링했다면 오늘은 다른 부분을 다시 필터링 한다.

세상의 성공, 명예, 사회적 성취들이 얼마나 탐이 나는지… 여전히 나는 그런 것들에 마음이 간다. 태생이 야곱이라 그럴까?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고 싶다. 그렇기에 나의 영성은 평생을 걸쳐 걸러져야 할 것이다. 마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만 남을 때까지.

당신은 드립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여과중인가? 종이 필터를 통과한 순전한 상태인가? 아니면 아직 뜸 들이며 우려내는 중인가? 스스로 점검해보면 좋겠다. 혹시나 힘겹게 여과지를 통과하는 중이시라면…화이팅! 끝까지 힘내십시오!

실컷 반성하고 나니 피곤이 몰려온다. 카페인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말 나온 김에 집 앞 카페로 가서 핸드드립을 주문해야겠다. 핸드드립이 마시고 싶어 이런 글을 쓰는 건지 글을 쓰다 보니 그 커피가 마시고 싶어진 건진 알 수 없지만.

이전 기사다양한 성격장애와 EAP상담 접근
다음 기사내 평생 사는 동안
석용욱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기독교 출판작가, 예술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커피’와‘예수님’으로 기독교적 사색을 담은 글을 연재하고 있다. 글쓰기를 배운 적도, 신학 학위를 받은 적도 없는데 12년 째 신앙서적 내고 있는 이상한 평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