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사는 동안

“네평생 이렇게 더워 보긴 처음이네, 어휴 더워! 정말 덥네 더워~”

1994년 여름,
80년만에 오는 폭염이라고 연일 뉴스에서는
불 가마가 된 온 나라 상황들을 퍼 나르고
첫아이 만삭이었던 나는 그 폭염 속에 진땀을 흘리며
폭염과 땀과 배부름(?)과의 전쟁 중이었습니다.

“그런 소리 말라우. 나는야 내 평생 사는 동안
이렇게 더워 보긴 첨이라우!”

‘내 평생 처음 맞는 더위’라 했더니
우리 어머니 역정을 내시듯
‘나는 칠십 평생 처음인데 이제 30년 좀 더 살아온 네가
뭘 그러느냐’는 듯이 한 말씀 하십니다.

그랬습니다.
1994년 그 해 여름은
정말 온 나라를 불 가마로 만들었습니다.

2020년!
지구촌 곳곳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와
염려들이 전파를 타고 연일 들려 오던 어느 날!

2020년 3월 26일,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강제 가택연금(?)이
이 땅에서도 시작되었습니다.
꼼짝없이 4주 28일이라는 기간 동안 집에만 있어야 합니다.

“아이고, 언제 이렇게 강제로 꼼짝없이 쉬어 보겠어.”

강제로 주어진 휴가 아닌 긴 휴가를 처음으로
받아 보면서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모두가 긴 휴가를 이렇게 시작했을 겁니다.

밀려 있던 잠도 실컷 자 보고,
그 동안 못 보았던 영화도 실컷 보고,
자꾸 뒤로 밀려가던 책들도 맘놓고 읽고,
집 안 정리도 좀 하고……

이 참에 성경도 실컷 쓰기도 하고,
신구약성경통독도 하고,
금식도,
철야도……
아, 할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동안 누가 하지 말라고 말린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하지 못하고 지난 것들이 많이 있는지
4주 동안 할일 들을 빼곡하게 적어 보았습니다.
매일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첫 날, 그릇 정리
둘째 날, 옷장 정리
셋째 날, 양념통 정리
넷째 날…다섯 째날…여섯 째 날…
매일같이 내가 하는 일들을 일기 쓰듯 적어 내려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 기록장에는
아침에 뭐 먹고,
점심에 뭐 먹고,
저녁에 뭐 먹고,
매일 뭘 먹었는지 먹는 것만 적혀 있습니다.

처음에 록다운이 시작될 때 여기저기서 오던 카톡들도,
여기저기 보내던 카톡들도 시들해졌습니다.
모두가 일상이 똑같다 보니 별로 할 말들이 없는 거지요.

그래도 이렇게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성도들에게 매일 큐티 보내, 영어성경공부 보내,
말씀 보내, 성경쓰기하라고 독촉해,
이러할 때 말씀과 기도에 힘써야 한다고 협박(?)해…

어찌하던 우리들은 하나님 은혜로
레벨 4, 레벨 3, 레벨 2의 긴 휴가를 끝내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전처럼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하나님 안에서 다시금 예배를 회복하며
나에게 주어진 일터, 내 자리로 모두가 돌아갔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상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나에게 하찮은 날, 하찮은 일은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감사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엄마, 내 평생에 이런 일은 처음이네요.”
“야, 이눔아! 엄마도 내 평생 사는 동안 이런 일은 첨이라우.”

1994년 여름,
우리 엄마랑 했던 말을

1994년생,
우리 아들이랑 지금 똑같이 말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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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애
크리스천라이프 대표,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사모, 협동 목사. 라이프에세이를 통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잔잔한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 와 '은밀히 거래된 나의 인생 그 길을 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