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팅(Roasting)을 잘하는 법

로스팅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단골 카페 사장님께 묻자 쉽고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각 원두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특성에 맞게 장점은 살려주고 단점은 보완하면 됩니다.”

공식화된 로스팅 방법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답은 예상과 달랐다. 커피나무가 자라는 지역마다 토양과 기후가 다르고, 그렇게 다른 환경에서 자란 원두의 개성이 모두 달라서,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원두를 구워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각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장점은 극대화시키고 단점은 최소화 시켜 주는 것, 그것이 로스팅 기술이라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원두를 굽는 방법이 이처럼 성경적일 줄이야……

오늘 아침 SNS에서 악플을 하나 받았다. 그림을 하나씩 올리는 공식 계정이었는데, 예수님이 커피를 내리는 모습의 그림을 본 한 성도가 내 그림이 너무 ‘인본주의 (人本主義 humanism)’적이라고 지적하며 복음을 제대로 알고 전하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분은 예수님이 등장하는 그림이라면 고대 근동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거나 우리가 흔히 봐온 ‘성화’의 느낌을 재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전히 내 그림이 하나님을 믿는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니…

첫 ‘악플’은 12년 전이었다. 당시 한 대형교회의 청소년 수련회 포스터 작업을 했는데, 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 유명한 대사 ‘포스가 함께하길!(May the Force be with you!)’을 ‘성령이 함께 하길!’이라는 대사로 바꿔서. 포스터가 공개된 다음날 교회의 장로님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비 성경적인 SF 영화가 우리 아이들 수련회 포스터 소재로 사용된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결국 그 포스터는 다른 포스터로 대체되고 말았다.

나는 일상 속에 계신 하나님, 문화 속에 계신 예수님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좋다. 바리스타로 오신 예수님이나 스케이트보드를 타시는 예수님. 멀리 계신 하나님, 거리감이 느껴지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리고 싶지 않다. 왜 나는 이런 작업을 고집하는 것일까? 때론 주님 안의 형제자매들을 불편케 하면서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영화나 음악을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은 오십을 훌쩍 넘긴 큰 누님이 즐겨 읽던 영화 잡지들을 어깨너머로 훔쳐 읽었고 둘째 누님이 듣던 팝 음악을 귀동냥으로 찾아 들었다. 누가 가르쳐주거나 소개해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그렇게 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끌렸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에도 대중문화에 대한 나의 관심과 애정은 변하지 않았는데, 당시 나는 보수적인 교단의 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대중문화를 사탄의 도구로 인식하고 배척하던 교회의 분위기와 문화를 향한 나의 개인적 관심은 늘 충돌을 일으키기 일쑤였고, 결국 오랜 충돌 끝에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끊기로 결단했다.

그렇게 결단을 내린 지 얼마 안되었을 때, 뜬금없는 기도 응답 하나가 주어졌다. 그 응답은 ‘본질적으로 문화를 사랑하는 나의 이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내게 형성된 이 문화적 기호를 활용하여 기독교 문화 사역자로 사용하실 것’이라는 응답이었다. 이후로 나는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나 자신과 화해하게 되었고 더 이상 내적으로도 충돌하지 않게 되었다. 내게 주신 영감을 최선을 다해 표현하고 그렸으며 악플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보수적인 교단에 소속된 한 교회의 교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내 그림이 기독교 미술의 기준은 아니지만 기독교 미술의 일부임은 분명하다. 나는 나대로 그렇게 영감을 받으며 살아왔고 지금의 작업 방향으로 인도받아왔다. 그리고 동일하게 내게 악플을 다신 그 성도도, 전화로 항의하신 장로님도 모두 같은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다른 인도 하심으로 살아온 분들일 게다. 결국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이니까.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원두를 굽기 전 평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묶는 예수님의 모습.
저 분 안에서 당신은 어떤 원두인가? 산미가 강한 원두인가? 풍미가 강한 원두인가? 당신의 신앙에서는 어떤 향기가 나고 있을까? 과일향? 아니면 초콜렛향?
잘 모르겠다고? 걱정할 것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여전히 ‘로스팅 중’ 이라는 것이니.

이전 기사1.5세대의 고민, 추구하는 교회
다음 기사냄새! 냄새!
석용욱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기독교 출판작가, 예술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커피’와‘예수님’으로 기독교적 사색을 담은 글을 연재하고 있다. 글쓰기를 배운 적도, 신학 학위를 받은 적도 없는데 12년 째 신앙서적 내고 있는 이상한 평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