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번 우한 폐렴의 원인을 따지는 것은 뒤로하려 한다. 중국 우한이 근원지인지? 누군가의 고의적인 유출인지? 어떠한 음모론도 은폐론도 그냥 지나쳐야 할 것 같다.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이 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낯빛을 살피기에 바쁜 까닭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냥 어쩌다 생긴 일로 치부하며 이 위기가 잘 지나가기만을 바라겠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확인해봐야 할 게 있다. 바로 우리 신앙인의 최고 권위인 성경이 이 역병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는가 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역병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에게 사인을 보내신다(마태복음 10:29, 출애굽기 5:3, 민수기 14; 12). 성경에는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대략 45회 정도(번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역병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신약은 마지막 때를 묘사하며 “민족이 민족을 왕국이 왕국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곳곳에 기근과 역병과 지진이 있으리니이 모든 것은 고통의 시작이니라”(마태복음 24:7-8)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역병이 하나님의 경고일수도 단순한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이 역병이 만약 우연이 아니라면, 그리고 이것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엎드려야 한다. 그분 앞에 회개해야 한다. 보이는 현실과 고군분투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우리 기독교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이 부분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 역병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할 때 나의 골방의 기도는 회개이다. 회개밖에 할 게 없다. 나의 사랑하고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로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방법 외에 다른 것을 찾지를 못하겠다. 이 시대를 향한 주님의 사인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회개해야 하며 왜 회개해야 할까?
전 세계적인 역병은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레위기 26:25)
일부러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것은 아니지만, 전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그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마태복음 10:29). 하나님은 왜 이런 역병을 허락하셨을까? 그 이유는 죄와 관련이 있다.
특히, 지도자들의 죄와 무관하지 않다. 다윗이 자신의 병력의 수를 세고자 인구조사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병을 보내셨다.“이에 주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이스라엘 위에 역병을 보내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백성 중에서 칠만 명이 죽으니라”(사무엘하 24; 15).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목회자로부터 온 성도들이 다 회개해야 한다. 세상과 타협하며 초대교회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살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신앙생활을 회개해야 한다.
뉴질랜드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 나라의 죄악을 놓고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죄를 회개해야 한다. 동성애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 이에 대해 강단에서 강력하게 외치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한다.
낙태법이 통과된 것을 회개해야 한다. 안락사법안을 놓고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가 생명 존중의 기본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안일함을 회개해야 한다. 다음 세대로의 신앙의 전수를 제대로 전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회개해야 한다. 교회 내에 가득한 기복신앙, 신비주의, 물질주의를 회개해야 한다. ‘오직 예수’를 버리고 다원주의(예수도 석가도 마호메트도)를 외치고 있는 배교의 첫 단추인 WCC와 슬금슬금 이를 타협해 들어가는 WEA에 대해 회개하고 또 돌이켜야 한다.
성경 말씀을 기준 삼지 못하고 자유신학에 흔들려 좌로나 우로 치우치고 있는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라는 말이 불편한가? 미안하지만 그 사람은 참으로 교만한 사람이다. 느헤미야는 고국 성벽이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회개했다. “우리가 주께 그 죄들을 지었나이다. 나와 내 아버지 집이 죄를 지었나이다”(느헤미야 1:6).
진정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의 죄라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기독교인은 이 땅의 유일한 소금이요 유일한 빛이기 때문이다(마태복음 5:13-14). 바로 우리가 짠맛을 안 내서 우리가 빛을 비추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우리가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이유는 지금이 바로 마지막 때이기 때문이다(누가복음 21:11)
이런 초유의 역병은 하나님의 강력한 사인이다. 마태복음에 나온 것처럼 마지막 때에 임하는 고통의 시작과 같다. 실로 주의 날이 멀지 않았다는 사인이다. 마치 해산을 앞둔 여인에게 진통이 시작되듯이 하나님의 사인이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죄뿐만이 아니라, 믿지 않는 부모 형제자매들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노아와 롯의 때와 같은 이 시대를 놓고 회개해야 한다.
끝까지 우리가 회개하며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앞에 나아가야 한다. 특히, 우리 목회자들은 이런 상황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용기 있게 외쳐야 한다. 가라앉고 있는 배를 보며 다 함께 살기를 외치는 선장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성경이 분명 마지막 때의 모습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음에도, 눈을 감고 ‘평안하다, 다 지나간다’라고 하면서,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면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마지막 때를 준비할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된다.
지금은 회개할 때다. 마지막 때임을 알리고 다같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나도 살고 내 가족도 살게 된다(민수기 25:7-9). 이 상황이 지나가기 만을 고대하고 육신의 안녕만을 바라며 복을 구하는 기도만 하고 있다면, 이때를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철부지 아이와 다를 바가 없다. 이미 성경에 세상의 처음과 끝을 다 알려주시고 또 기록해 주신 알파와 오메가 되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회개해야 할까? 우리의 자녀들 때문이다(누가복음 23:28)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의 태도와 반응을 보고 그대로 배운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가 이 초유의 재앙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하고 있는지 유심히 보고 있다. 이 상황을 기도로 해결하는지? 기도할 때는 도대체 무슨 제목으로 기도하는지? 작금의 사태에 대한 문제 앞에 그 답을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는지? 우리 아이들은 자신들이 본 그대로를 답습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상대로 이 험준한 시대를 살아갈 줄 아는 자녀들로 양육하지 못한 것을 눈물로 회개해야 한다. 아이들 스스로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할 줄 알고, 스스로 개인 기도시간을 가질 줄 알고, 스스로 자기 하나님 앞에서 매 순간을 경외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 ‘마지막 때가 다가오고 있다’라고. 아니다. 이 말은 엄연히 말하면 틀린 말이다. 지금이 마지막 때다. 오늘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때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 회개만이 살길이다. 주님 오실 날이 날마다 점점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