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끌리는 눈길

사람은 보는 대로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관찰자의 눈길로 사물이나 사람을 다양하게 훑어본다. 같은 사물이나 사람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눈길이 머무는 시간이 다르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삶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경험에 따라 판단한다.

사람의 원초적인 물질, 이성, 명예에 관한 욕구를 넘어서 욕망과 욕심은 눈길이 머무는 동안의 차이로 알 수 있다. 사람은 사물과 사람에 대한 관심의 차이를 겉으로는 감추고 숨기고 속일 수 있다고 여기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에는 시선이 더 머물게 마련이다. 관심을 가지고 눈길이 머무는 것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숨기려고 하지만 은밀한 탐심은 상대의 주목을 받는다. 마음속에서 보내는 신호를 감지한다.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눈을 들어보면 눈길이 마주치게 된다. 그럼 눈을 떼지 못하게 되고 따뜻한 눈길이 차가운 눈빛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도 남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마음의 탐심이 들켰는데도 무반응이거나 외면한다. 서로 이해와 소통의 접점을 찾기보다는 서로 불신의 눈길을 보낸다. 인간의 탐심은 가지고 챙겨도 ‘조금만 더’하면서 만족할 줄 모른다.

깊고 깊은 마음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머물고 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보라. 드러내지 않는 마음의 욕심을 품고 겸손한 척하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셈이니 결국 잘못 사는 것이다. 말로는 그럴듯하게 말해도 생각의 정체는 감출 수 없다.

자신을 숨기고 감추는 사람을 만나면 이해하고 공감하기 힘이 든다. 제대로 반응하고 소통하기가 어렵다. 교감이 되지를 않아 관계를 갖기가 버겁다. 말의 소통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감정으로 호감을 느낄 수 없다. 이는 만날 때마다 다르게 응시하는 시선을 느끼기 때문이다.

반대로 마음을 속이고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면서 사는 것은 아까운 삶을 허비하는 것과 같다. 사람은 어디에 시선을 두고 집중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지금까지 생각의 시선을 물질, 이성, 명예에 두고 있다면 이제부터는 마음의 시선을 예수님께 맞추고 끊임없이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세상의 허망한 것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시선을 세상에 강탈당하지 않으려면 시선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을 향한 차가운 시선에서 천국을 향한 따스한 시선으로 바뀌게 된다.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한다.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느낄 때 세상은 주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