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가에 흐르는 검은 물

“이거 한번 드셔보셔요. 위염에 좋아요.”

위염으로 오랫동안 고생한 나는
한국에 다녀 올 때면
다른 약은 안 챙겨도 위장 약만은 꼭 챙겨 들고 옵니다.

어느 날, 한국에 다녀 온 성도가 숯이라며 찰랑찰랑 소리나는 큼직한 병 하나를 줍니다.

“숯을 먹어요? 까만 숯이요?”
“네, 먹는 숯인데요. 이게 그렇게 염증에도 좋고 독소 제거하는데 그만이라네요. 한번 드셔보셔요”

그렇게 해서 받아 논 먹는 숯을 뚜껑도 열어 보지 않고 오육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숯을 먹자니 가뜩이나 시커먼 내 속이
숯처럼 까맣게 물들 것 같아 먹지도 못하고,
안 먹자니 성도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고,
버리자니 아깝고…

이래저래 먹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
부엌 서랍장 한 귀퉁이에
오육년을 훌쩍 넘게 자리하고 있던 숯!

12시가 넘은 어느 날 밤,
양치질을 하던 아들 녀석이
차콜로 양치질을 하면 누런 이가 하얗게 된다며
새로 사온 차콜 치약으로 열심히 양치질을 합니다.

“뭐? 차콜로 양치질을 하면 이가 하얗게 된다고?”

요즘에 잇몸이 좋지 않아
잇몸에 좋다는 치약을 쓰고 있는데
약 성분 때문인지 이가 누렇게 되는 것 같아
가뜩이나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습니다.

귀가 번쩍!
눈이 번쩍!

“우리 집에 먹는 차콜 있어. 그걸로 이 닦아도 될까?”
“그럼요, 차콜 치약보다 더 좋죠.”
“그래? 그럼 우리 그걸루 양치질 함 해볼까?”

드디어, 서랍 귀퉁이에 오육년을 자리하고 있던 차콜이
이제 제 구실을 할 때가 왔나 봅니다.

처음으로 열어 본 차콜 통에는
정말 먹보다 더 더 검은 새까만 숯으로 만든
몽글몽글한 숯덩어리들이
숯가루와 함께 가득 차 있습니다.
누런 이가 하얗게 된다는데 뭘 못하겠습니까?

암흑보다 더 까만 숯가루를 칫솔에 듬뿍 묻혀
조심스레 양치를 하는 순간,
입은 완전히 까만 피를 토하듯
징그럽도록 시커먼 숯으로 가득찼습니다.

12시가 넘은 오밤중에
요괴인간도 아닌 것이
시커먼 피를 토하듯
온 입안 가득히 검은 물을 품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란

전설의 고향에서 등장하던 그 여인!
하얀 소복 입고 긴 생머리 풀고
입 가에 흐르는…

내가 나를 봐도 시커먼 입술에
시커멓게 물든 이에
입 가에 흐르는 검은 물…

얼른 정신없이 물로 헹구어 냅니다.
괜히 내가 나를 보고 무섭습니다.

먹어도 상관없는 차콜임에도
실수라도 목구멍으로 넘어 갈까 봐
헹구고 헹구고 또 헹구어 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내 속까지 시커멓게 될 거 같아서요
내 맘까지 시커멓게 될 거 같아서요
내 생각까지도 시커멓게 될 거 같아서요.

헹구고 또 헹구고 또 헹구어 내자
원래의 내 이가 하얗게 드러납니다.

찬송이 절로 나옵니다.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이 마음
흰 눈 보다 더 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주의 보혈 흐르는데 믿고 뛰어 나아 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차콜보다 더 시커멓고 까만 내 속의 가득한 죄악들이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헹굼 받고
흰 눈 보다 더 희게 씻김 받았으면 좋겠다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던 오밤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