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있어 주어 고맙습니다

김기오 목사<타우랑가샘물교회>

아주 오래 전 30년도 더 전에 강원도 철원의 대한수도원을 찾아 기도했던 적이 있다. 기도원 주변은 한탄강이 흐르고 그 강물 옆에는 크고 작은 많은 바위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자체로 비경이었다. 지금도 또렷하게 생각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낮에 기도하러 가다가 본 소나무였다.

올라가 보니 약간 높은 바위의 깨진 틈을 비집고 들어가 온몸을 비틀며 뿌리를 내린 그 소나무에서 생명의 신비와 간절한 힘이 느껴졌다. 다른 하나는 밤에 기도하러 가다가 그 바위 위 소나무 곁에서 흐느껴 슬피 울며 하늘의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로 기도했던 어떤 분의 간절한 기도 소리였다.

그 두 개의 장면이 겹쳐지면서 그 여성도의 기도 제목은 마치 뚫릴 것 같지 않은 바위같이 여겨졌으며, 눈물로 호소하는 그 기도는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바로 그 소나무와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그날 밤 하나님께 집중하여 마음속 깊이 기도할 수 있었다.

크리스천라이프 신문 측으로부터 2019년 올해의 마지막 호에 담을 목회 칼럼을 부탁 받고 어떤 내용의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심하다가 크리스천라이프 신문의 존재와 발행을 위해 힘쓰고 애쓰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목회적 심정에서 말하는 것이 좋겠다고 방향을 정했다.

하나님의 자연법칙에 따라 생겨나는 모든 것은 자생과 심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자생은 스스로 씨가 떨어지거나 또는 뿌리에서 번식하여 생겨나는 것이고, 심음은 누군가 뜻한 바가 있어 씨앗을 뿌리거나 또는 나무를 식목한 것이다.

복음이시며 또한 복음을 위하여 스스로 한 알의 씨앗이 되어 떨어져 썩어 죽으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종들에게 복음의 역사를 위한 또 하나의 씨앗이 되기를 명하셨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응한 모든 종들은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처럼“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또 어린 사무엘의 고백처럼“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엎드려 순종하여 각처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고 있다. 누구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자로, 누구는 복음의 농사를 짓는 자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매 회마다 바위를 뚫는 심정으로
크리스천라이프 신문 역시 뉴질랜드 땅에 복음 전파의 사명을 부여 받고, 주님의 교회들을 세상에 알리며, 교회와 성도들을 연결하며 연합시키는 복음 소식지로 태동한 지 벌써 15년이다.

복음과 신앙적인 내용들, 그리고 여러 소식들을 담아 뉴질랜드 전국의 여러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주 안에서 교제할 수 있도록 묶어주는‘끈, 징검다리, 다리 놓는 ’귀한 역할을 감당해 오고 있다. 어떤 일을 15년 이상 놓치지 않고 붙든다는 것은 귀한 일이다.

맑고 좋은 날보다 비바람 치는 날이 더 많았을 것은 목회자의 심정으로 볼 때 자명하다. 주님의 뜻을 품고 시작했지만 때로 떠나고 싶고, 손에서 내려놓고 싶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주님의 모든 종들이 사명을 감당하는 현장에서 겪는 공통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도 붙들고 있다. 이유가 뭔가? 그렇게 힘이 드는데, 황량한 광야를 홀로 걷는 것 같은데, 숨이 턱턱 막히는데, 누구 하나 마음 써 주는 이 없는 것 같은데, 돈이 안 되는데, 돈은 계속 들어가는데……

죽을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모든 일은 꿈과 함께 시작하고 꿈이 없어지면 일도 사라진다. 꿈이 일을 만들어내고, 일하게 하고, 일을 이루게 한다. 그 주님께서 심으신 꿈이 신문 발행의 일을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한 회의 신문을 발행할 때마다‘이번 호도 발행될 수 있을까?’하는 눌림 속에 마음을 졸이고, 속이 까맣게 타 들어가고, 애간장이 녹는 노심초사와 읍소 없이 신문이 발행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교회를 섬기며 목양을 하는 목회자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너무 춥고, 때로는 너무 뜨거워서 온도 조절이 안 되는 상황을 인내와 참음과 끈기와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내디디며 지난 15년 동안 한길을 걸어온 것은 밥이 아닌 사명 때문이라고 믿는다.

언젠가 한국으로 귀국한 교인에게 “목사님과 사모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변함없이, 흔들림 없이 마치 큰 나무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것 같아 감사하고 마음이 든든합니다”라는 마음이 담긴 글을 받은 적이 있다.
‘큰 나무는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또한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이 글귀는 주님의 종으로서 가지는 목회자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모든 교인들에게 강조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언제나 같은 마음이지만 열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인내와 끈기 그리고 성실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없이는 한 자리를 계속해서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열정이 불타오를 때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열정은 어느 날 식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는 차갑게 식은 재만 바람에 날리고 자신의 무력함과 무능함을 자조하는 잡초가 빨리도 얼굴을 내민다. 식은 재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는다. 그러나 잿더미 속에 불씨를 품을 수는 있다. 인내와 끈기, 그리고 성실이 다시 열정에 불을 지필 수 있는 불씨를 보존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크리스천라이프의 사역도, 목회자의 목회도, 곳곳에서 펼쳐지는 모든 주님의 사역도 그렇게 지속되고 지탱되어 왔다고 믿는다.

단단한 바위 같은 현실 위에 떨어져 작은 실뿌리를 내리며 때마다 주시는 주님의 은혜의 단비를 소중하게 머금고 뿌리를 내려가는 크리스천라이프 신문과 그 사역자들을 축복한다. 모든 것에는 평가가 따르듯이 크리스천라이프 신문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평가는 있겠지만 분명한 것 한가지는 뉴질랜드의 한인교회들과 성도들을 위해서 크리스천라이프 신문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없으면 좋겠다는 교회나 교인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살 자리가 아닌 죽을 자리를 파고 들어가 거기에서 나오지 않고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내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크리스천라이프 신문이 매 회마다 해산의 산고를 겪으며 신문을 발행하는 이 일을 모든 이민 교회와 성도들이 격려해주어야 한다. 크리스천라이프 신문이 풍상을 겪으며 지금까지 우리 곁에 서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소중한 것은 지켜야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