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월 첫째 주 찬송/1월 둘째 주 찬송

1월 첫째 주 찬송/421장(통일 210장) 내가 예수 믿고서

이 찬송의 작사자는 시빌라 더피 마틴(Civilla Durfee Martin, 1868-1948)이고, 작곡자는 월터 스틸만 마틴(Walter Stillman Martin, 1862-1935)목사입니다. 이들은 부부 사이이지요.

여류시인인 마틴은 캐나다의 노바 스코티아(Nova Scotia)의 조든 태생인데요, 사범학교를 나와 교사 생활을 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시를 써서 시집을 내기도 했고, 남편인 마틴 목사를 만난 이 후 부터는 자신의 시에 곡을 붙이게 하여 영감 있는 많은 찬송가를 탄생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찬송가에서도 보면 그가 지은 찬송가인 ‘외롭게 사는 이 그 누군가’(291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382장), ‘내가 예수 믿고서’(421장), ‘예수의 이름 힘입어서’(통392장) 모두가 남편이 곡을 붙인 부부 작품입니다.

작곡자인 마틴 목사님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이섹스에 있는 로우리(Lowley) 태생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한 후 침례교 목사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후에는 그리스도교회로 교단을 옮겼습니다. 54세 때는 애틀랜타(Atlanta)의 그리스도교대학의 성경교수가 되었고, 그 해에 결혼을 했습니다. 좀 늦었지요? 그럼에도 이들 부부로부터 이토록 아름다운 찬송이 나올 수 있다니… 마틴 목사는 사경회와 부흥회 강사로 많은 집회를 인도했는데,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부흥사였다고 합니다.

찬송 시 ‘내가 예수 믿고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는 말씀을 근거로 지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의 변화된 삶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죠. 성경 본문의 키워드는‘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이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새로운 삶을 누리는 새 사람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에서도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배소서 4;24)라고 일컫지 않았습니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었고, 의롭다 함을 받았으며(로마서 6;5-7), 자기중심의 생활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로 바뀌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자들, 이들이 새로운 피조물, 곧 의화(義化)된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이 찬송은 처음부터 춤을 춥니다. 반음계로 오르내리는 점 팔분음표의 경쾌한 리듬이 죄 짐 벗고 의롭다 함을 받은 기쁨을 표현하지요. 이 리듬은 영어 찬송의 원문에서“모든 것이 변했도다”(Everything is changed)로 노래됩니다.

바로 이 가사 “모든 것이 변 했도다”는 우리말 찬송엔 세 번쯤 나오지만 영어 찬송가에는 일곱 번이나 연거푸 반복됩니다. 그리고 후렴에선 더 활기를 띠죠. 3도나 높게 변형되어 노래하는가 하면 “변하고”(미도솔)에선 높이 노래하죠. 이 부분도 영어찬송에선 “주님 찬양”(praise the Lord!)입니다.

그 뿐인 줄 아세요? 13마디에서 “하나님은 나의”(솔솔도레미솔)가 2도 상승 모방하여 “구원 되시오니”(라라레미파라)라며 껑충껑충 뛰어 오르죠? 마치 용암이 분출되어 터져 나오듯, 우리의 기쁨이 솟아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God is my salvation)하며 높이 자랑하며 간증합니다.

이 찬송을 부르노라면 “지금 나의 가는 길 천국 길이요”라는 가사가 제일 마음에 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을 만난 이 후, 세상이 달리 보이죠, 하늘도 맑고, 나무도 신선하고, 새들도 찬양하는 것 같고, 모든 이들이 행복해 보이고, 무엇이든지 감사하고,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님께서 죄를 기억도 아니 하시죠(1절), 어둠(2절)과 공포(3절) 물리쳐 주시죠, 그리고 성령 충만케(3절) 해주시며 앞길 밝혀 주시니 천국 길(1절) 맞죠. 우리나라에는 1930년에 출간된 성결교 찬송가인 ‘부흥성가’에 처음 소개된 이후 널리 애창되고 있습니다.

1월 둘째 주 찬송/19장(통일 44장) 찬송하는 소리 있어

이 찬송은 우리나라 교인들에겐 퍽 뜻 깊습니다. 작사자인 스왈론(William Swallen, 1859-1954)목사는 미국 오하이오주 패리스(Paris)태생으로 개화 이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48년간 봉사한 소안론(蘇安論)이란 한국이름의 선교사입니다.
그는 외국인 중에 우리말을 가장 잘했다고 하는데요, 우리말로 성경통신강좌와 성경공과교재도 편찬하고, 우리말로 찬송시도 여러 편 작사하였습니다.

이 찬송은 아일랜드의 켈리(Thomas Kelley, 1769-1854)목사 작시로 표기된 찬송도 볼 수 있는데요, 그것은 스왈론 목사가 켈리 목사가 1806년에 쓴 찬송인 ‘들어라 천만의 비파와 찬송소리를’(Hark, ten thousand harps and voices)에 영감을 받아 순전한 우리말로 작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양 선교사가 작사한 것이기에 어딘가가 어색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워낙 입에 붙어 있어 정감 있는 노래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찬송가에는 스왈론 목사의 찬송이 ‘찬송하는 소리 있어(19장, 통44장)와 ‘내 죄를 회개하고’(326장, 통368장)등 두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찬송은 몇 부분에 있어 틀리게 부르는 데요, 8째 마디 “거룩 거룩합니다” 다음에 사분쉼표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 쉼표를 생략하고 서둘러 “천하사람 찬양하자”로 당겨 부르고 있는데 이를 조심해야 합니다.

원래 못 갖춤 마디로 시작되는 노래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1-4마디와 5-8마디가 같은 멜로디이기 때문에 더욱 틀리기 쉬운 것이죠. 첫째 단 마지막과 둘째 단 마지막 마디가 똑 같은 악보 같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둘째 단 마지막 마디에 사분쉼표가 더 있죠? 그리고 작은 음표로 베이스 파트가 그려져 있고… 그것은 팀파니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틀리지 않게 부르려면 “거룩 거룩합니다”의 “다”를 세 박자라고 생각하고 길게 불러야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 기뻐하도다”는 짧게, “거룩 거룩합니다”는 길게 불러야하는 것이죠. 그 다음 셋째 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천하사람 찬양하자” 다음에도 사분쉼표가 있죠? “거룩하신 하나님께”에는 쉼표가 없이 “할렐루야”로 당겨지고… 그래서 이 부분은 “천하사람 찬양하자”는 길게,“거룩하신 하나님께”는 짧게 불러야겠지요. 쉼표를 살려서 정확히 부르면 더욱 좋고요.

이 찬송을 우리나라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요, 3박자 장단의 우리 민요를 닮은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찬송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구원받은 하늘의 천만 신도들이 기뻐 찬양하는 하늘의 소리 말입니다. 아니면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날 목자들에게 들려줬던 천군천사들의 빛나는 소리일 수도 있고요. 이를 듣고 지상의 천만 신도들이 기뻐 화답합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멘”이라고요.

후렴의 “할렐루야”가 아래 나(d)음에서 점점 상승하여 옥타브 위의 나(d)에 이르는 것을 보면 우리의 찬송소리가 보좌 위의 하나님께로 상달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 찬송에서 특히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죠? ‘거룩’이란 단어가 일곱 번이나 나오는데요, 이는 바로 하나님의 보좌 앞임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옷자락을 보았을 때 들었던 천사들의 그 노랫소리가 아니겠습니까?(이사야 4;8) 3절의 “주여 속히 임하셔서”는 성경의 마지막에 “마라나타” “주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주님 오시길 대망하는 사도 요한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 4주 전 대림절의 예배찬송으로 불려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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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엽
연세대 성악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서울시합창단 단장 겸 상임지휘자. 1960년부터 전국을 무대로 광범위하게 교회음악 활동을 하면서 김명엽의 찬송교실1-5을 예솔에서 출판했다. 이번 25회 연재를 통해 교회력에 맞추어 미리 2주씩 찬송가 두 곡씩을 편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