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2014년 9월, 나는 코나 열방대학 제자 훈련 학교에서 선교사로 섬기고 있었을 때였다. 그 당시 학교는 학생 50명에 한국 학생반, 영어를 사용하는 학생반으로 구성된 이중언어 학교였다.

내가 맡은 사역은 태국과 인도로 선교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교 준비와 훈련, 상담과 말씀 강의, 더불어 여러 주제를 포함한 학교와 대학 캠퍼스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3시간 이상 강의 통역을 맡았었다.

강의 통역이 다 끝나면 그날 하루는 아무 말도 하기 싫을 정도로 영어가 더 편한 나에게는 정신적인 체력이 많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매일 기도로 준비하며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사와 한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할 수 없었던 사역이었다.

그런 어느 날 나에게 최고의 고비가 찾아왔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대에서 무너진 날을 잊을 수 없다. 매일 통역한 지 한 10주가 지나갈 때쯤, 금요일 강의를 통역하는데 엄청 힘들었다. 그날 초대받은 강사는 강의를 하기보다는 부흥에 대한 기사를 읽어주는 것이었다. 오디오 북처럼 말이다.

학생들의 얼굴을 보는데 이미 눈 감고 조는 학생들도 있고, 생각이 다른 곳으로 가버린 학생들이 태반이었다. 특히 통역이 들어가니 진행은 두 배나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그렇게 통역 1시간이 지날 때쯤, 나는 통역으로 힘이 들었고, 에너지도 탈진되었고, 동시에 나의 내면의 여러 생각과 함께 감정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은 그 전날, 나는 내 안에 교만을 발견하고 너무 낙심이 되었다. 성숙하지 못한 나의 자아 때문에 괴로웠었다.

그 가운데 이날 아침부터 나는 오디오 북처럼 즉석에서 강의를 부흥 기사로 대신 읽는 강사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제자 훈련 학교 10주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변화가 없는 몇 학생들을 바라보면, 특히 통역은 한국 학생들을 위해 하는 것인데 오히려 졸고 있는 몇 한국 학생들의 얼굴, 강사님 앞에서 핸드폰하고 있는 학생들 등, 앞에서 보고 있자니 너무나 마음이 어렵고, 실망이 되고, 곧 내 마음은 판단과 함께 상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진 내가 또다시 실망스럽고 화가 났다. 학생들을 향한 사랑과 은혜가 없고, 이런 상황에서도 일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이렇게 나의 판단하는 연약한 감정으로 무너져 있으니 말이다.

주어진 책자를 읽는 게 다 끝날 때쯤 나는 이제 강의를 하겠지 생각했지만, 곧 강사는 또 다른 부흥 책자를 꺼내어 나에게 주었다. 하얀 종이에 검정 무늬들… 더 이상 내 눈엔 글이 아닌 그림처럼 보여졌었다.

그렇게 책자를 받고 “Here it goes~”라며 으싸으싸 했는데, 몇 학생들과 간사들이 응원을 해주는 소리가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나의 귀에는 그들의 응원이 마치 천사들의 목소리처럼 들려졌고, 그 상황을 통해 낙심되고 나 스스로 정죄했던 나의 마음을 주님께서는 “파이팅, 찬미야 잘하고 있어”라며 응원해 주시는 것 같았다.

순간 내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여 다시 마음을 붙잡고 정신 차리면서 읽으려고 했을 때, 내 앞에 앉아 있던 나와 같이 학교를 섬기고 있던 나의 남동생 찬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나도 모르게 참고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그것을 본 동생은 앞으로 바로 달려와 나를 꽉 안아주며 같이 울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내 동생의 마음을 충분히 느꼈었다.

그동안 집을 떠나 선교지에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로 같이 사역하게 된 나와 내 동생은 때론 뉴질랜드에 계신 부모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었을 격려와 말을 서로에게 대신해주며 서로를 응원해주고, 힘들 때마다 서로를 위로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동생 찬양이를 통해 이 상황에서 똑같이 해주었을 우리 아빠가 생각나면서, 늘 우리를 사랑과 용납으로 응원해주신 부모님의 마음을 느끼며 위로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졌다.

하나님도 이런 나를 보시며 나를 정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나를 안아주시며 “찬미야, 잘하고 있어. 힘들지? 나는 이해해. 고맙다, 나의 딸아. 나는 네가 참 자랑스럽단다.”라며 격려해주시는 것 같았다.

비록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들이지만, 나는 충분히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느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 있는 내가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솔직하게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강사에게 양해와 허락을 받은 다음 다시 마이크를 손에 들고 강의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사랑이 없었던 나의 태도와 판단과 상한 마음을 갖고 사역한 나의 태도를 모두에게 고백하며 진심으로 회개하며 낮아지고 깨어진 마음으로 눈물과 회개로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다시 주님을 향한 충성을 고백했다:

“주님, 제가 주님께 항복합니다, 주님, 다 내려놓습니다! 저의 기준, 저의 소원, 저의 방법들… 부족하고 연약한 저를 이대로 주님께 드립니다. 저는 십자가를 선택할 것입니다! 십자가에 저의 자아를 못 박습니다!”

그리고 한국말로 한국 학생들을 위한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었을 때 어느 순간 강의실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단단한 마음을 가진 학생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쳐다보았고, 이미 몇 명의 학생들은 손을 들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강사가 뜻밖의 질문을 하였다.“혹시 여러분 가운데 찬미 자매의 기도에 공감이 된다면 지금 바닥에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반응해주실 수 있으세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강의실에 있던 모든 학생들과 간사들이 곧바로 무릎을 꿇기 시작했었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들 각자 회개의 기도가 나오며, 울부짖음과 동시에 찬양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졸거나 집중하지 않던 학생들이 각자 주님 앞에 엎드려 눈물을 쏟으며 반응하고 있었고, 손을 들며 주님을 찾기 시작했다.

정말로 신기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얼마큼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강의실에는 서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이 학생들은 물론 학교를 섬기러 온 선교사들과 심지어 강사도 다 바닥에 엎드려 성령님의 임재 속에 반응하며 주님을 만나고 있었다.

회개의 기도가 흘러나가면서 우리 학교는 그 순간 부흥에 대해 들었던 그 기사의 일들을 각자의 마음 안에서 현실로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이 상황을 통해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 사도 바울의 고백이 떠올랐다. “나는 내 약한 것들에 대해 크게 기뻐하며 자랑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연약함을 주님의 능력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나의 연약함은 오히려 주님의 능력으로 채워져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연약함으로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원수의 거짓말에 속아 정죄하는 구덩이에 나를 가두어 두지 않는다면, 오히려 나의 연약함을 가지고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주님께 올려드릴 때 주님은 나의 연약함을 그분의 능력으로 채워 사용하신다.

그 이후로 나는 나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로 다짐했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어야 하는 사회에서 내가 먼저 가면을 벗고 조금 더 인간적인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 애썼다.

특히 선교사라는 직분과 무대 위에 보여주는 모습 때문에 더욱더 인간적인 찬미로 사람들과 다가가기를 노력했었다. 그랬을 때 그들이 보는 선교사의 모습, 기름 부으심 속에 사용되는 모습을 통해 자격 없는 나를 사용하시는 주님을 더 쉽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행복한 모습, 능력 있는 모습, 예쁜 각도 등 사람들이 부러워할 모습만 각색해서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주님 앞에서 배운 것은, 나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나눌 때 오히려 서로가 위로 받고, 공감을 얻으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숨기고 싶은 연약함을 통해서 나오는 겸손으로 인하여 오히려 주님은 영광 받고 싶어 하신다. 성경 속 내내 하나님은 오히려 자격이 없는 자들을 들어 사용하시는 것처럼 말이다.

완벽하고 좋은 모습만 담아있는 소셜미디어가 아닌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정체성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담는, 겸손과 순종을 겸비한 크리스천들의 소셜미디어가 더 발전해 나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