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시간 관리 방법을 찾아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있는 커피하우스는 17세기부터 현재까지 유명하다. 300년 전에는 ‘페니 대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전국의 모든 정보와 뉴스를 수집해서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지금은 커피 전문점으로 더 유명하다. 오늘날 거리에서 흔히 보는 카페의 옛 모습이다. 그 옛날처럼 카페에서 일장 연설을 하거나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시작하면 민폐라고 쫓겨날 수도 있지만, 그때는 한 잔 커피를 마시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고급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토론과 논쟁을 시작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수준이 높아지는 것 같은 괜한 착각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커피하우스였다.

18세기 독일에서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커피 칸타타’를 작곡해서 공연할 정도였으니, 그때부터 이미 커피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전 세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커피값으로 1페니를 내면 하루 종일 머물 수 있었다.

평민, 귀족, 대학생, 교수가 어울려서 토론하는 모습은 커피하우스의 자랑이었다. 커피하우스에서 발행하는 소식지는 그래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전국의 모든 소식이 오고 갔다. 1페니는 가장 작은 화폐 단위였고, 현재 시세로 계산하면 골드 코인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존 웨슬리도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셨을 것으로 추정한다. 18세기 중반부터 존 웨슬리는 커피보다 차를 좋아하였지만, ‘커피하우스’라는 선명한 기록이 그의 초창기 일기에 남아있다. 웨슬리 당시 옥스퍼드 대학교 커피하우스는 그래서 유명하다.

어느 날 어머니 수산나에게 보낸 편지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커피하우스 앞에서 일어난 이야기였다. 값비싼 가발을 소매치기 당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적어 놓았다. 본인은 가난해서 가발을 쓸 수 없으니 소매치기 당할 염려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감사하는 편지였다.

18세기 가발과 멋진 초상화

당시 유행은 가발을 쓰고 멋을 부리는 것이었다. 대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신분을 뽐내며 최고의 지식을 자랑스러워 하였다. 그래서 웨슬리의 아버지는 귀족이 아닌 평민으로서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의 종신교수로 임명받은 아들을 더더욱 자랑스러워 하였다.

시간 관리가 필요했다
웨슬리가 가난한 환경 때문에 괴로워하였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지만, 다양한 학문과 주제에 두루 열정을 기울이는 웨슬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느 곳에서도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었다.

귀족 문화가 당연한 사회에서 살았으니 그들과 함께 항상 어울리며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계급사회가 자연스러웠던 그곳 18세기 영국에서 평민으로 귀족 사회에서 최고의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과였다. 당시 귀족들의 사교춤을 가르치는 전문가에게 정중한 인사법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당구도 치고, 체스도 하고, 테니스도 함께 하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불편하였다. 생각없이 가볍게 결정하고 행동하는 때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였다. 쓸데없는 말을 듣고, 필요없는 책을 읽고, 계획없이 시간을 낭비한다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불필요한 만남을 피할 수는 없을까? 내 인생에 가치있는 일을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방종으로 치닫는 만남을 피하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에 욕심내고 싶지 않았다.

나쁜 습관을 시작부터 없앨 수는 없을까? 무익한 논쟁을 피하고, 생각없는 다툼을 피하고, 나쁜 것은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두려운 상황을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옥스퍼드에서 누리는 최고 수준의 환경과 학문 탐구가 오히려 그의 경건 생활을 방해하고 양심을 가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무렵에 읽은 책이 <거룩한 삶과 거룩한 죽음>이었다. 그 책의 저자 제레미 테일러는 첫머리에‘시간을 아끼라’고 조언하고 있었다. 웨슬리의 상황에 알맞는 조언이었다.

그때부터 웨슬리는 일기를 썼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일기였다. 작은 행동부터 사소한 모든 일까지 일상생활을 돌아보며 기록으로 남겼다. 행동에 따르는 마음가짐도 함께 점검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일기장은 가로 10cm 세로 16cm로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크기였다. 무엇 때문에 시간을 관리하는지 이유를 적고, 생활과 마음가짐을 반성하는 기록을 남겼다. 가지고 다니면서 시간마다 꺼내 보고 활용하는 용도로 사용하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일기장의 표지에는 튼튼한 가죽을 덧대어서 오랫동안 거칠게 사용해도 헤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시간 관리
한번 시작한 결심을 평생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시작한 방법이었다.

일기를 계속 쓰기 어려운 위기도 몇 번이나 찾아왔지만, 바다에서 폭풍우로 돛대가 부러지는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평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하고 뛰어든 현장에서 실패하고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나던 처참한 상황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다.

시간 관리를 목적으로 단순히 시작한 일기였지만 한 장 두 장 채워가던 그의 기록 방법이 습관이 되고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 일기 쓰기를 시작한 청년 시절부터 숨을 거두기까지 계속된 66년의 기록은 위기의 순간에서 그의 버팀목이 되었고, 방법쟁이(Methodist) 또는 규칙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역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암호일기에 사용한 방법을 풀어가는 여정은 그래서 흥미진진하다. 평생 흔들리지 않은 그의 믿음을 확인하는 순간, 그 암호 속에 그가 지켜낸 사랑과 희망이 무엇인지 그가 가슴에 품었던 희망이 그의 아픔과 절망까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옥스퍼드에서 최고의 학문과 환경을 누리던 웨슬리였다. 평생 아쉬울 것 하나 없이 종신 교수로서 모든 것을 누리던 그의 그 고민과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이제 그가 사용한 방법을 찾아서 사용할 준비가 되었다.

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Vig%C3%A9e-Lebrun,Elisabeth-LouiseCharles-Alexandre_de_Calonne(1734-1802)(cropped).jpg,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William_Hogarth-_The_Five_Orders_of_Perriwigs.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