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로 아기 낳기

2011년 3월의 따뜻한 한국의 봄날, 사랑하는 딸이 엄마의 뱃속에서 나올 준비를 한다. 부모님들의 응원과 기도 속에서 산모의 고통 속에 끊어질 듯한 신음과 함께 마음을 졸이며 세상에 나올 아이를 기다린다.

마침내 울리는 울음소리, “아버님 들어오세요”라는 간호사의 나지막한 목소리. 모든 과정을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엄마 뱃속에서 갓 나온 핏덩이에게 붙은 탯줄을 잘라낸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016년 뉴질랜드에서 맞는 9월의 어느 날, 둘째가 태어났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다고 하나 막상 같은 일이지만 타국 땅에서 이민자가 되어 그 일을 겪다 보면 같은 것이 같은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이번 글은 필자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 생명을 맞이했던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한다.

참고로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기에 일반화할 수 없고, 이미 지금으로부터 3년이 지난 상황임을 독자들에게 알려드린다.

보통 임신을 하면 축하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2015년, 아직 신분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은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 기쁜 소식이지만 또한 더불어 큰 근심이기도 했다.‘한국에서 낳을 것인가, 아니면 뉴질랜드에서 낳을 것인가, 뉴질랜드에서 낳게 된다면 의료비용은 얼마나 들 것인가, 그것을 감당할 재정은 있는가, 미드와이프는 누구를 만날 것인가, 한번 CT촬영을 할 때마다 들어가는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등등의 새 생명을 맞이하는 이민 1세대의 경험의 무게는 고국에서의 경험했던 무게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뉴질랜드의 의료혜택은 2년 이상의 워크 비자, 혹은 영주권자들이나 시민권자들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방문비자, 혹은 학생비자, 그리고 1년 워크비자 소지자들은 비싼 의료비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 학생들이나 1년 워크비자 소지자들은 보험을 가입한다. 하지만 임신은 보험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보험적용을 받을 수 없다. 임신 후 출산 과정 속에 의료사고가 일어나거나 문제가 일어나면 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아기가 태어나는 그 자체의 의료과정에 대해서는 모두 본인이 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뉴질랜드는 미드와이프가 있다. 한국에서는 산부인과 의사가 피검사를 해주고, 초음파를 찍어주며, 체중관리를 해주고, 때와 시에 따라서 산모에게 엽산을 먹어라 철분을 먹어라 이야기를 해주지만, 뉴질랜드는 임신과 관련된 사항은 미드와이프를 통해 이루어진다. 처음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미드와이프를 찾는 일이었다.

하지만 비자신분이 1년 오픈워크비자 소지자인지라 미드와이프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차라리 GP(가정의)를 만나 진료를 받거나 형편이 되면 사설 산부인과(Private Obstetrics)에 가서 직접 진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비싼 의료비용으로 인해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GP 만나기를 주저하며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혹은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염려와 근심 속에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더불어 검증되지 않은 네이버 카페의 의료지식과 예전 한국에서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의사가 어떻게 진료했는지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리고 집에 있는 체중계로 한 주 한 주 뱃속에서 커가는 아이의 몸무게를 체크하면서 스스로 아내를 돌봐야 했다. GP 한번 만나 진료를 보는데 $70, CT촬영 한 번 하는데 $200, 그리고 피검사하는데 $200. 그나마 두 번의 초음파 검사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내일 일을 모르는 우리 부부에게 큰 위로와 소망이 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감사하게도 영주권이 승인되었고, 이민성으로부터 승인 메일을 받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이민성 홈페이지의 승인란을 캡처하여 병원에 보내 예비 영주권자로서 미드와이프를 배정받을 수 있도록 요청하는 것이었다. 상황이 급박한 것을 알게 된 관계자는 바로 미드와이프를 배정해주었고, 아직 여권에 스티커가 부착되기 전이었지만 감사하게도 미드와이프를 만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손으로 아내의 배를 몇 번 만져보며 줄자로 재어보더니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미드와이프의 한마디, 초음파 없이 단지 손의 감각만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는 뉴질랜드 미드와이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경의를 표한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영주권 스티커가 붙은 여권을 받은 후에 피검사와 초음파, 그리고 처방된 약을 무료로 누릴 수 있었다. 그때 얼마나 크게 감격하며 감동하였는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감사가 솟아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38주가 되었고 아내의 배가 아기를 출산할 만큼 커졌을 때 가 진통이 왔다. 맛있는 것을 제대로 먹어줘야 확실히 아기가 나올까 하여 그날 저녁 한식당에 가서 원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은 후, 하루가 지난 후에 정말로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양수가 터지진 않았지만 느낌이 이상해서 바로 병원으로 향했고, 검사를 위해 바로 입원을 했다. 의사가 하는 말이 ‘건강한 몸이고, 아이도 잘 나올 것 같다. 지금은 아기 문이 2-3cm 열렸으니 앞으로 6-7cm 열릴 때까지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응? 지금 진통으로 몸부림치고 있는데 돌아가라고?’ 이해가 안 되었지만 아무튼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진통은 멈추질 않았고, 정말 아기가 나올 것 같은 징후가 있어서 큰아이를 교회 친구 집에 맡기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외로운 이민생활, 갑자기 급한 일이 있을 때 내 자녀를 맡길 수 있는 신뢰할 만한 가족을 만나는 것도 큰 복이다.

병원에 도착해서 진통에 몸부림치는 아내를 미드와이프가 보더니, 우리를 분만실로 인도했다. 본격적으로 아내가 진통을 하기 시작하면서 옆에서 남편으로서 첫째 출산 때 연습했던 라마즈 호흡법으로 아내의 숨쉬기를 도왔다. 무통주사가 안 맞는 10분의 1에 해당하는 아내는 모든 고통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야 했지만, 스마일 가스를 들이마시면서 그래도 고통이 누그러졌다.

그렇게 4시간이 지난 후, 스마일 가스도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며 고통에 몸부림칠 때, 10cm의 문을 박차고 새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 광경을 온몸으로 느끼며 두 눈으로 분명히 보고, 두 귀로 분명히 들었다. 한국에서는 탯줄만 자르러 분만실에 들어갔는데 뉴질랜드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내와 함께 할 수 있고, 그 과정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뉴질랜드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산모와 아기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출산의 기쁨도 잠시, 바로 아이를 우리 부부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길러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래도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이 계시기에 목회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아내와 내가 다 해결해야 했다.

누가 아이는 낳아 놓으면 저절로 큰다고 했던가? 절대 그렇지 않다. 젖을 먹여야 하고, 옷을 입혀주어야 하고, 씻겨주어야 하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 부모님도 나를 이렇게 키우셨구나’라는 깨달음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게 되는 귀한 기회가 되었다.

산후조리원 대신 Birthing Unit을 들어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아이 양육의 기본인 젖 물리기, 기저귀 갈기, 육아 중 스트레스를 받을 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과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네이버와 구글을 동원해 끓어보지 않았던 미역국을 끓이고, 만들어보지 않았던 한국음식들을 아내를 위해 만들면서 요리실력이 많이 늘었다.

이 산을 넘어가는 데 있어서 가장 감사를 드리고 싶은 분들은 바로 교회 식구들이었다. 우리에게 김치를 담가주고, 감자탕을 끓여주고, 미역국을 배달해준 그분들의 사랑을 통해, 어디를 가도 결국은 ‘사람은 누군가의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이 되리라고 결심하며 오늘도 하루도 사랑하며 살려고 노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