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토루아 목회 마치고 티마루로 선원 선교 떠나

선원 선교센터 사역을 하면서 주일예배와 심방 그리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로토루아에서 성도들을 만나다가 로토루아로 이사를 하니 많은 성도들이 따뜻하게 환영하며 반겨 주었다.

그 동안은 이태효 전도사가 로토루아에 거주하면서 성도들에게 제자훈련을 비롯하여 체계적인 성경 공부로 성도들의 믿음 생활에 큰 몫을 감당하였다. 이 전도사는 선교에 필요한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2년 동안 자비량으로 공부하며 교회에 헌신하였다. 귀국 후 목사 임직받고 중국으로 파송 나가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서 주님의 제자양성 사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로토루아 갈릴리교회에서 목회할 때도 처음 설립 예배 시에 설교한‘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돼라’ 는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였다. 그리고 시간을 정하여 주기적으로 타우랑가 항구에 방선하여 선원들을 만나 전도지를 나누어주며 신앙상담을 하는 사역을 병행 하였다.

로토루아에도 교민의 수가 늘어나고 교인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민 와서 열심히들 살아가는 이민자에게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자녀들에겐 믿음과 더불어 한글을 가르치며 한인의 얼을 지킬 수 있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고등학교 유학생들이 한글 교사가 되고 지도교사 집사의 헌신으로 일주일에 두 시간씩 한글 교육을 하던 중 로토루아에 정식 한글학교가 등록되면서 한글학교에 인계해 주었다.

다른 한가지는 갈릴리교회 소유의 건물을 가져야 한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교인 중에는 건축가로 일하는 분이 있어 마음만 모이면 저렴한 경비로 예배당을 건축할 수 있는 이점도 있었기에 건축가 박집사와 다른 집사들과 예배당 구조 설계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언젠가는 실현될 수 있을 예배당 건축을 놓고 기도하면서 건축 헌금을 별도로 비축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선원 선교 당시 오션미션 은행 계좌에 남아있던 전액 8천 불을 예배당 건축헌금 종잣돈으로 넣고 주님이 계획한 어느 시점에 갈릴리 한인교회 소유의 예배당이 세워지고 그곳에서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녀들도 마음껏 뛰어 놀며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을 꿈꾸게 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뉴질랜드에서는 정년퇴직한다는 65세의 나이가 다 되어갈 때 앞으로의 진로를 놓고 기도한 후 로토루아 갈릴리한인교회에 적합한 후임자를 찾기로 하였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이제 어느 정도 선원 선교와 교민 목회의 기반을 다져놓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주위에서도 나보고 계속 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흔히 있는 일이고 생각하고 말하는, 내가 개척한 교회뿐 아니라 내가 시무하는 교회는 내 소유라는 착각으로 빠지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었다. 특히 나의 경우엔 입항하는 선원들과의 만남과 짧은 시간 교제 후 늘 바다로 떠나 보내고 텅 빈 자리에서 아내와 같이 눈물로 기도하던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원 선교와는 다르게 주일 예배 시간에 교회의 좌석을 가득 채우는 많은 교인을 볼 때 풍족한 마음 그리고 조금 더 교회의 체계를 내가 잡아놓고 안정시킨 후에 떠나야 하지 않겠나 하는 자만감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떠나야 할 시간에 순종하기로 하고 개척한 교회에 대한 인간적 욕심을 갖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한인교회는 65세에 후임 목사에게 인계하고 선원 선교해
예수님의 제자로 로토루아지역에 말씀의 씨를 뿌렸으니 다음 후임자가 와서 물을 주고 잘 가꿀 때 주님이 키우시고 열매 맺게 해 주실 것을 믿었다. 마오리 토속신앙이 깊이 뿌리내려져 있고 마약과 알코올로 인한 범죄율이 높은 영적으로 암울한 이 로토루아지역에서 갈릴리교회의 표어인 “세상의 빛이 돼라” 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갈릴리교회로 굳건히 서 있을 것을 믿었다.

아내와 기도한 후 이렇게 결정하고나니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감동과 소망으로 감사 할 수 있었다. 후임자를 구하기 위해 광고를 하였는데 대한 예수교 장로회 이름을 쓰는 이단 종파로 알려진 곳에서도 추천이 들어 온 적이 있었다.

로토루아 갈릴리한인교회는 뉴질랜드 장로교회소속이었었는데 뉴질랜드 장로교단의 동성애 찬반 문제로 말이 많을 때 미주 한인 예수교장로회로 교단을 바꾸었다. 당시 노회 임원이었던 조동원 목사의 소개로 후임자 나명균 목사를 알게 되었다. 2001년 11월 마지막 주에 처음 주일 설교를 갈릴리교회에서 나 목사가 하면서 성도들과 처음 만남을 갖게 되었다.

공동의회를 통해 나 목사가 후임 목사로 결정된 뒤 나는 후임 목사가 성도들과 잘 융화하는 시간을 갖기를 기도하며 2002년 5월19일에 파송 예배를 드리고 남섬의 작은 항구도시 티마루로 향하였다.

갈릴리교회에서의 파송은 물질적인 지원은 없었다. 피지로 파송한 윤 선교사도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었고 내가 향하는 티마루 선교지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사역을 12년 동안 하면서도 본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은 것은 교회를 떠나기 전 3개월 동안 천 불씩 받은 게 전부로 기억된다. 세상적으로 볼 땐 얼마나 바보스러운 삶인가 하겠지만 이 금전적인 것을 통하여 나는 주님의 힘을 느끼는 기적을 많이 체험하였고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적절한 것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을 늘 느끼며 살았다.

다행히 티마루에 갈 때부터는 연금을 수령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정부에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 되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 하게 되었다. 그리고 7개월 후인 2002년 12월21일에 로토루아 세인트 앤드류교회에서 나명균 목사에게 담임 목사직을 인계해주는 이취임 예배를 드리고 로토루아 갈릴리교회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