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 암호의 시작, 생각하는 방법찾기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싶어서 암호까지 썼다. 왜? 암호를 쓸 수밖에 없었을까? 암호는 그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존 웨슬리는 대략 나이 21세에 암호 쓰기를 시작하였다.

옥스퍼드 대학 종신교수로 임명 받은 나이는 22세였다. 처음 가르친 과목은 논리학이었다. 치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논리학은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문이었다. 웨슬리가 펴낸 논리학 교재도 현존한다. 그 학생들이 졸업하면 정치 경제 의료 법률 분야를 주도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웨슬리는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자유롭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주일에 6번씩 진행하던 토론은 라틴어로 진행했다고 한다. 그의 저술은 다양했다. 성경, 의학, 과학, 경제, 정치 등 사람의 일상생활과 관련 있는 모든 분야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특히 언어에 관해서는 다양한 문법책을 펴냈다. 영어, 불어,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을 포함한다.

대학 교수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학생들을 지도하려면, 스스로도 부끄럽지 않도록 공부해야 했다. 당대 최고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다웠다. 그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교수였다. 주변에서 동료들이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하고 물으면,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전기(electricity)”에 관한 연구
사진기, 전화기, 모르스 부호, 유선통신기, 전구, 자동차, 비행기, 어느 것 하나도 발명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전기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그때였다. 연(kite)를 하늘에 띄워서 번개도 전기라는 것을 밝혀냈다는 그때, 지구 반대편에서 존 웨슬리도 전기 연구에 몰두해 있었다.

웨슬리 방에 있는 전기 발생장치

사람들은 웨슬리에게 “(쓸모 없는) 전기를 연구하냐?” 하며 놀렸지만, 웨슬리는 멈추지 않았다. 250년이 훨씬 지난 오늘, 영국 런던에 있는 웨슬리의 방을 방문해 보면 그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정체를 알기 힘든 기계가 아직도 잘 보존되어 책상 위에 놓여있다. “전기 발생 장치”이다.

전문 과학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전기에 몰두하던 존 웨슬리를 만나면, 그가 관심을 기울였던 암호에 대한 비밀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다. 놀림을 받으면서도 “쓸모 없는” 일에 열정을 쏟던 웨슬리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존 웨슬리는 아주 독특한 인물이다. 대부분 모든 사람들이 이해 못하던 아주 사소한 일에 관심을 기울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감리교 신학대학교 작은 탁자에 두 세명의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던 때였다. 교수님 한 분이 지나가다가 “정환군!”하면서 어깨를 툭 치셨다. “논문 주제가 히브리어와 한국어라며? 히브리어로 밥 먹고 살기 힘들 껄? 한국어는 또 뭔가?” 하면서 껄껄 웃으셨다. 하지만 나의 논문은 대한성서공회 성경번역실에서 일하는 계기가 되었고, <성경전서 표준 새번역>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이라는 열매로 이어졌다. 기초 과학과 학문을 모두가 소홀히 하더라도 누군가의 열정으로 기초가 하나씩 놓이는 것은 틀림없다.

웨슬리의 전기연구는 계속 이어갈 동료나 후배를 만나지 못해서 빛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의학분야에서 보면 “전기 자극 치료 선구자”였다. 21세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두뇌 전기 활용” 분야에는 인체전기를 자극하는 창의적 상상력을 보탠 것도 사실이다. 그가 자기 몸에 실험한 실험 결과와 실제 치료에서 성공한 데이터는 모두 역사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의 암호 만큼이나 주목받지 못했다.

하나씩 드러나는 의도
이제라도 그가 몰두한 열정의 이유가 드러나고, 그 치열한 상상력을 이어갈 기독교인이 있으면 좋겠다. 그가 평생을 지속한 전기 연구는 가난한 사람들 때문이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그저 죽어가던 시대였다. 병원을 갈 수도 없고, 약을 살 수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라서, 슬퍼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공짜로 살 길을 열어 주고 싶었다.

교수 생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사로서의 삶이었다. 스스로 “한 책의 사람”이라고 고백하며, 오직 성경 말씀으로 살고 싶은 웨슬리였다. 그가 얻은 “방법쟁이” 또는“규칙쟁이”라는 별명도, “성경벌레”라는 별명도, “홀리클럽”이라는 별명도 모두 그의 독특한 열정을 놀리고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별명이었다. 그의 열정은 오직 예수를 향해 있었다.

평소에도 그리스도인이지만 진심으로 그리스도인 답게 살고 싶었다. 특히 목사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주변 친구들과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지 않았다. 성경 기도 예배 성만찬 가난한 사람을 향한 열정, 그 모두가 놀림의 대상이었다.

치열한 열정은 왕따를 만들었다. 그의 대학 시절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고, 암호를 쓰기 시작한 뒤로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의 개인 생활을 짐작할 수 있게 할 뿐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껍데기 모양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 진짜 그리스도인을 꿈꾸기 시작한 1725년부터 1777년까지 52년 동안의 기록을 “완전한 그리스도인에 관한 평이한 해설”이라는 소책자에 담아서 남겨 놓은 것은 그의 치열한 열정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행운이다.

짧은 기록이어서 모든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평생 이루어 놓은 다양한 저작과 편지와 일기와 단편들을 연결해서 살펴보면 그의 마음 속 생각과 평생의 노력과 암호를 하나씩 풀어낼 수 있다.

사진 출처: 웨슬리가 저술한 논리학 교재
John Wesley. A Compendium of Logic. [s.n.], 1756. Internet Archive, http://archive.org/details/acompendiumlogi00weslgoog.
존 웨슬리가 사용한 전기 발생 장치
-컬러사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ohn_Wesley%27s_Electric_Machine.png
존 웨슬리의“그리스도인의 완전에 관한 평이한 해설”
Wesley, John. 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 : As Believed and Taught by the Rev. Mr. John Wesley, from the Year 1725 to the Year 1777. London : Printed by J. Paramore, 1785. Internet Archive, http://archive.org/details/plainch00wesl.